불현듯 마음에 찍힌 느낌표들
샤워를 한 뒤 몸을 닦다 보니 오른쪽 옆구리에 발간 발진이 돋아 있었다. 다른 곳은 괜찮은데 그곳만 이상해서 의아해하는 와중에 눈이 바디워시에 가닿았다. 사용 기한을 반년이나 훌쩍 넘긴 바디워시였다. 대용량 제품이라 그냥 버리기 아깝기도 했고, 얼굴도 아니라 몸에 쓰는 것이니 괜찮겠다 싶었다. 그런데 그게 문제였을까. '괜찮을 거라는 마음'이, '괜찮은 것'이 문제였을까. 괜찮음은 나쁨보다는 좋음에 가까운 개념처럼 보이지만 절대 좋음은 아니다. 괜찮은 것들은 아주 가끔이라는 빈도를 전제로 할 때 정당화되는 것이다. 매일 같이 반복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괜찮지 않다. 괜찮은 것들에는 분명 독소가 있으니까. 괜찮다는 마음 역시 쌓이고 쌓이면 유독할 수밖에 없다. 괜찮다는 안일한 마음을 버려야 하는 이유다.
모처럼 만난 친구가 실패한 연애담을 털어놓았다. 온 진심을 쏟았으나, 그 마음의 진가를 알아봐 주지 않는 사람과의 이야기였다. 처음엔 눈살을 찌푸리게 될 정도로 애달팠지만, 말미에 그것은 결코 실패한 연애담이 아니었다. "내가 그 사람에게 해줬던 것들을 똑같이 나에게 해봤어. 너무 좋더라. 나였으면 사귀었을 거라고 생각할 정도였어. 아쉬운 건 사랑할 사람을 잃은 내가 아니라, 사랑을 주는 나를 잃은 그 사람이지." 내 사랑이 무능하게 느껴질 땐, 사랑의 방향을 바꾸어 볼 것. 너무 상한 사람에게는 사랑을 소비하지 않을 것. 그리고 나 자신도 감화시키지 못하는 사랑이라면, 감히 사랑이라 부르지 않을 것.
퇴근길에 예기치 못한 비구름을 마주쳤다. 당연히 비상용 우산 같은 건 없었다. 역사의 편의점에서 우산을 살 수도 있었지만 천천히 걸어가 보기로 했다. 뛰지 않고 천천히, 느릿느릿.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비를 맞아보겠냐는 마음이었고, 비를 맞고 싶은 기분이기도 했다. 나는 아무런 의욕 없이 살았던 요 며칠간의 기억을 되새김질하며 비를 맞았다. 차가운 빗방울이 머리칼을 헤집고 들이치는 것을 내버려 두었고, 두 어깨가 하염없이 젖어가는 와중에도 개의치 않으려 했다. 하지만 고개를 꼿꼿이 들지는 못했다. 자꾸만 떨어지는 고개를 가누지 못하고, 바닥을 보며 걸었다. 내 마음의 멍든 부분과 독대하겠다는 용기는 반쪽짜리 용기였다. 그렇게 걷다 보니 이상하게 어반자카파의 '코끝에 겨울'이 생각났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여름이었다. 세상에 짙푸른 초록이 무성하고, 이따금 빗발을 매섭게 세우는 계절이 한창이었다. 나는 생에 처음으로 시를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시가 아니라면, 세상에 시는 존재하지 않으리라는 과신이 들었다.
뜨겁거나 차가운 것은 바로 알아챌 수 있다. 가까이만 있어도 느낌이 온다. 닿으면 소스라치며 깜짝 놀라게 된다. 어떻게 이렇게나 뜨거울 수 있지, 어떻게 이렇게나 차가울 수 있지. 괜히 신경이 쓰인다. 그러나 뜨뜻미지근한 것은, 따듯한 것은 바로 알아챌 수 없다. 오랜 시간 닿아 있어도 별다른 감각이 없다. 그러다 언젠가 사라지고 나면, 그 자리를 뜨겁거나 차가운 것이 대신하면, '아, 그게 정말 따사로운 것이었구나.' 뒤늦게 깨닫게 된다. 따듯한 사람이 되고 싶다. 곧장 눈길이 가진 않지만 긴 시간 함께할 때 그 가치가 드러나는 사람. 언젠가 불현듯 자리를 비울 때, 마음속으로 그 부재를 곰곰이 곱씹게 되는 사람. 조금 답답하고 미련해 보일지라도 시간으로 말하는 사람. 나는 지금껏 막연히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좋은 사람이란 대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는데, 이제야 그 답을 조금은 알 것 같다.
- 2023년 봄과 여름에 쓰인 일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