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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경 Nov 19. 2016

발리 우붓 몽키 포레스트

모든 불량 여행자를 위하여

나는 불량한 여행자다. 세상 어디를 가도 "이곳에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처럼" 여행한다.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에만 집중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뒤로 하고 자는 낮잠은 얼마나 달콤한지. 사람들이 북적이는 노틀담 성당을 지나 작은 공원에서 친구와 바보같은 디비디비딥 게임을 하고 있는 우리 모습은 얼마나 웃긴지. 그리고 그런 순간들이 일상에 돌아온 내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그리하여 우붓에 머무는 짧은 3일동안 이틀의 시간은 원숭이숲, 몽키 포레스트에서 보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초록초록한, 원숭이들이 주인인 공간 속에서.

첫 날은 비가왔고, 원숭이도 나도 우산은 아무도 없었다. 입구부터 원숭이가 너무 많아 무서워져 5분만에 돌아 나왔다는 언니의 말이 무색하게 공원은 한산했다. 지나던 공원 관리인이 원숭이들도 비를 싫어한다고 설명해주었다. 야생에 사는 주제에 비를 싫어하다니. 웃기는 녀석들. 하지만, 어느 무리에나 독특한 '것'들이 있듯 분명 제 무리 사이에서도 특이한 놈으로 분류될만한 몇몇은 바닥에 고인 물을 손바닥으로 튕기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나도 옆에 앉아 놀다가 흙탕물로 옷이 더러워져도 괜찮다는 생각이들만큼 신나게. 비가 왔지만, 몇 백년은 족히 이 곳에 뿌리를 내렸을 큰 나무들이 내가 많지 젖지 않도록 적당히 비를 퉁겨내주고 있었다. 귀엽고 영리한 원숭이들은 비를 피하고 있는 손님들의 주머니를 털기 위해 노력하다 눈이 마주치면 재빠르게 딴청을 부렸고, 사이좋은 원숭이들은 서로 털을 골라주고 있었다. 아무도 나를 안아주지 않았지만, 나는 아주 크고 따뜻한 품에 안긴 기분이었다.

비석 밑에 묻혀있는 것이 사람인지, 원숭이인지 모를 무덤을 지나 조용한 사원앞에 다다랐다. 기도하는 사람들에게만 입장이 허락된 공간이어서 들어가지 못하고 앞에 있는 처마밑에 조용히 앉았다. 자리를 잡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새끼 원숭이 한마리가 내게 관심을 보였다. 처음엔 조금 멀찍이서, 그리고 내가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했는지 점차 가까이 다가오더니, 내 무릎위에 자리를 잡았다. 빙글빙글 돌며 뒤에서 내 허리를 껴안기도 하고, 앞에서 안기도 하며 내 옷을 잔뜩 더렵히며 애정공세를 펼쳤다. 공원 관리인이 내게 다가와 물었다. 혹시 무섭다면, 원숭이를 쫒아 주겠다고.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원숭이가 나를 매우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돌아온 그의 대답은 내 지난 관계들을 돌이켜보게했다.

"아니, 네가 먹을 것 갖고 있는지 체크하는거야"

그러기엔 조그만 원숭이의 손이 너무 다정했는걸! 이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꼬마 원숭이는 그 작은 손으로 내 지갑 지퍼를 열기 위해 낑낑거렸다. 귀여우면서도 괘씸한 녀석. 내 옷을 잔뜩 더럽힌 그는 먹을 것이 없는 내게 흥미가 떨어졌는지 쪼르르 나무 위로 사라졌다. 얼마나 많은 의도를 호의로 착각하며 살아왔는지, 그리고 그 뒷맛이 얼마나 씁쓸했는지가 잠시 머리를 스쳤다. 낯선 이의 친절에 의존하며 살아온 블랑쉬의 모습을 잊지말자고.

하지만 원숭이들은 너무도 귀여웠고. 내 허리춤을 꼭 안은 새끼원숭이는 더더욱 귀여웠으므로 다음날도 몽키 포레스트를 찾았다. 숙소로 돌아왔을 때 엉망진창인 내 꼬라지는 동행인을 기겁하게 해 난 또 다시 혼자였다. 날이 맑아서인지 원숭이들이 많았고, 압도적으로 활발했다. 길목에서 이빨을 드러내며 싸움하는 큰 원숭이들을 본 순간, 그제야 왜 언니가 왜 무서움을 느끼고 돌아섰는지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날도 하이라이트는 있었다. 바로, 나무에서 떨어진 원숭이. 조용한 골목 이리저리 나무를 타고 놀던 원숭이 한 마리가 나뭇가지를 놓치고 땅으로 뚝, 떨어졌다. 그리고 그 아이는 분명 머쓱해했다. 태연한척 했지만 흔들리는 눈빛을 나는 느꼈다. 재빨리 자리를 피해주었다. 혼자 웃으며 오늘은 이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내 무릎위로 올라온 귀여운 원숭이는 없었지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장면을 직접 보았으니.

나는 여행이 좋고, 여행할 때의 내가 좋다. 원하는 것보다 마땅히 해야하는 것을 '잘' 해내야 하는 업무의 연속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또렷하게 알 수 있는 시간들로의 이동. 우붓에서, 원숭이숲에서 나는 나랑 더 많이 친해지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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