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림이다,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대화 (by 마틴 게이퍼드)
요즘 한창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전시를 풍부하게 감상하고자 먼저 읽은 책. 아직 전시를 보진 않았지만 읽기를 정말 잘했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가치관과 삶 그리고 예술 궤적에 대해 알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그가 너무나도 멋진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됐다. 질문과 대답 모두 기억에 담아두고 싶은 구절들이 가득해 손이 쉬지를 못했다. 아직 전시 안 보신 분들은 꼭 읽고 보시길.
1937년에 태어난 그는 운이 좋게도 어렸을 때부터 주목 받았다. 스물 네 살에 작품이 MOMA에 전시 됐으며, 서른 살에 UC 버클리에서 미술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의 미술 역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곳은 캘리포니아였다. 우중충한 영국에서 지내다가 캘리포니아의 햇살을 맛 본 순간, 그는 여기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풍부한 색채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빛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모네가 머물렀던 지베르니, 고흐의 아를 모두 햇살이 풍부한 남프랑스의 도시로, 그들의 입체적인 색감이 어떻게 등장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현존하는 화가의 작품 중 가장 비싸다는 <예술가의 초상, Portrait of an Artist>과 <더 큰 첨벙, A Bigger Splash> 등 수영장이 등장하는 그림이 모두 이 때 탄생됐다. 환경이 창작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알 수 있는 부분.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표현해냈다. 1980년 대의 복사기, 그 후에는 팩스 그리고 2009년의 아이폰과 2010년의 아이패드 등으로 작품을 만들어냈다. 2010년 그가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렸을 당시 나이는 73세다. 과연 그처럼 늙을 수 있을까? 라는 의문과 존경심이 공존한다.
책이 상당히 두꺼워보이나 사실상 250페이지도 되지 않는다. 평량(종이 무게)이 특별히 크기 때문인데, 아무래도 페이지 곳곳에 들어있는 그림이 반대쪽에 비치지 않게 하기 위함인 것 같다. 그러므로 부담없이 읽으면 된다.
#기억에 남기고 싶은 구절
런던에서 야심만만한 작품을 제작한지 꽤 오래되었습니다. 그곳은 충분한 공간도 없는 데다가 주의를 흐트러뜨리는 것들이 너무 많았지요. 하지만 여기서는 하루 24시간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내가 자유롭게 선택한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나를 사로잡지 않습니다. 그림 그리는 시간 외에는 독서를 합니다. 런던에서는 항상 손님이 있었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습니다. (중략) 나는 반사회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단지 비사회적일 뿐이죠. (p.16)
비는 제게 좋은 소재입니다. 그런 봄이야말로 사람들이 캘리포니아에서 그냥 놓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캘리포니아에서는 실제로 그런 봄을 맞을 수 없으니 말입니다. 만약 당신이 꽃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다면, 몇 송이의 꽃이 피는 것을 알아챌 수는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캘리포니아는 북유럽과 전혀 다릅니다. 북유럽에서는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이 바뀌는 것이 거대하고도 극적인 사건입니다. (p.24)
호크니는 풍경화와 음악 그리고 전원시가 끊임없이 반복해서 다루는 주제 중 하나에 몰두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계였다. (중략) 오랫동안 바라보기 그리고 열심히 바라보기는 호크니의 삶과 예술에서 핵심적인 행위이고, 또한 그의 가장 큰 두 가지 기쁨이라는 점이 드러났다. (p.27)
게이퍼드: 당신의 최근작에서 대부분 주연은 나무들인 셈이네요. 왜 그렇게 나무에 매력을 느끼는 겁니까?
호크니: 나무들은 우리가 볼 수 있는 생명력의 가장 큰 징후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나무도 두 그루가 서로 같지 않습니다. 사람들도 이와 같지요. (p.28 - 29)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계가 사진처럼 보인다고 여깁니다. 나는 사진이 대부분 맞지만, 그것이 놓치고 있는 약간의 차이 때문에 사진이 세계로부터 크게 빗나간다고 늘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 지점이 내가 찾고 있었던 바입니다. (p.47)
우리는 사진이 궁극적으로는 실제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카메라는 기하학적으로 대상을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보지 않습니다. 부분적으로는 기하학적으로 보지만 또한 심리적으로 보기도 합니다. 내가 저 벽에 걸린 요하네스 브람스의 사진을 본다면, 그 순간 브람스는 문보다 훨씬 더 크게 보일 겁니다. 그러므로 세계를 기하학적인 방식으로 측정하는 것은 사실이 없습니다 (중략) 피카소가 나폴리에 가서 ‘파르네제의 황소’를 보았을 때 형상들의 손이 실물보다 더 크다는 점을 알아챘습니다. 그 인물들의 행위 때문에 그렇게 표현된 것입니다. 피카소는 손이 거대한 발레 무용수들을 그렸는데, 매우 우아하고 가벼워 보입니다. 피카소는 무용수들이 그와 같이 움직일 때 보는 사람은 그들의 손을 좇아가게 되고, 따라서 보는 이들에게는 손이 더 커 보인다는 점을 이해했던 것입니다 (p.52 - 53)
제한이 있다는 것은 정말로 좋은 것입니다. 그것은 자극제가 됩니다. 만약 다섯 개의 선 또는 100개의 선을 사용해 튤립 한 송이를 그리라고 한다면, 다섯 개의 선을 사용할 때 당신은 훨씬 더 창의적이 될 것 입니다. 결국 드로잉 그 자체에는 항상 제약이 따릅니다. 그것은 검은색과 흰색 또는 선과 선이 아닌 것으로 이루어지고 목탄이나 연필, 펜으로 그려집니다. 약간의 색을 사용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만약 세 가지 색만 사용할 수 있다면 당신은 그 세 가지 색을 사용해 자신이 원하는 색으로 보이게끔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피카소가 뭐라고 했습니까? “만약 빨간색이 없으면, 파란색을 사용해라.” 파란색을 빨간색처럼 보이게 만들라는 뜻입니다. (p.99 - 100)
생각해보면 인간의 많은 경험은 층 쌓기이다. 층 위에 또 하나의 층을 쌓는 것처럼 우리는 과거와 비교하면서 현재를 이해하고 그 이후로 더 많은 층을 더해가며 현재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그에 따라서 우리의 관점은 변해간다. (p.115)
렘브란트와 피카소, 반 고흐의 드로잉이 보여주는 경제성은 숨이 막힐 정도입니다. 그것을 성취하는 것은 어렵지만 흥미로운 일이기도 합니다. 보고 있는 모든 것을 단 몇 개의 선, 즉 그 사이에 부피감을 포함하는 몇 개의 선으로 어떻게 함축적으로 줄일지 찾아내는 일 말입니다. (중략) 가장 유감스럽다고 여기는 일 중 하나가 미술학교들이 드로잉을 포기한 것입니다. 결국 모두가 독학을 해야 하지만, 그래도 가르쳐야 하는 것들이 여전히 상당히 많습니다. 누군가를 렘브란트처럼 드로잉하도록 가르칠 수는 없지만 꽤 능숙하게 그리도록 가르칠 수는 있습니다. 드로잉을 가르치는 것은 보는 법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p.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