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기진 맘속을 채우는 입장권
라드유에 볶은 빨간 김치가 두부, 돼지고기 몇 조각과 함께 보글보글 끓고 있다. 잘 익은 김치찌개 위에 파 한 꼬집과 고춧가루 한 스푼을 솔솔 뿌린다.
“찌개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노부부가 주문한 찌개가 나왔다. 할아버지는 약간 저는 듯한 몸으로 천천히 일어서서 셀프바로 간다. 흔들리는 손으로 무한리필 밥 두공기와 콩나물 무침 한 접시를 테이블에 놓고 수저와 국자를 가지런히 놓는다. 할머니는 그런 할아버지를 기다리며 버너에서 끓고 있는 찌개를 바라본다. 적당히 끓고 난 찌개를 할머니 접시에 알맞게 덜어주며 함께 먹는다. 오가는 대화는 몇 마디뿐이지만 할머니를 아끼는 할아버지의 애정이 느껴진다. 점심 때 가끔 오시는 손님들이다. 팔팔한 젊은 이의 펄펄끓는 애정은 아니지만 은근하면서도 오랜 세월 서로를 배려하며 지켜온 아름다운 사이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삼천원 김치찌개는 노부부의 뱃속을 데운다.
매달 격주 월요일에 김치찌개 식당 <따뜻한 밥상>에 간다. 작은 밥상을 대하는 다양한 사람들, 집에 혼자 콕 박혀 있으면 볼 수 없는 우리 이웃들을 만나러 간다.
삼천원 김치찌개를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중년 남성 혼밥족은 서빙하는 나의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빠르고 단순하게 주문하고 급하게 먹는다. 중년 여성 혼밥족은 혼자와서 먹어도 되는지 조심스레 묻고 조용히 상을 차린 다음 천천히 먹는다. 젊은 혼밥족은 스마트 폰과 함께 밥을 먹고 노인들은 셀프 서비스에 익숙하지 못해 두리번거리거나 여러 번 왔다갔다 하기도 한다.
부부끼리 오는 손님도 있는데 앞서 소개한 노부부와는 달리 엉덩이에 본드를 붙여 놓은 것처럼 꼿꼿하게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남편을 위해 수저를 놓고 밥과 콩나물을 가져다 놓고 사이드 메뉴인 김과 계란 후라이를 차례로 차려 놓는 아내가 있다.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고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앉아있는 그들을 보면 나도 숨이 컥 막힌다. 저러다 체하면 어쩌나.
셋 이상의 단체 손님들은 김치찌개에 다양한 사리를 추가하고 김과 계란 후라이까지 주문한다. 그들의 기호일수도 있으나 이렇게 싸게 팔아서 뭐가 남겠느냐는 걱정과 식당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에서 그렇게 주문한 것일 게다.
빌런은 없냐고? 식당에 왜 빌런이 없겠는가
다 먹지 못할 만큼의 밥과 콩나물을 잔뜩 가져와서 몽땅 남기고 가는 사람들, 사리의 양이 적다고 불평하는 사람들, 서빙하는 사람을 하인 대하듯 무시하는 사람들, 식사하다 험악한 분위기로 말싸움을 하는 사람들, 짖궂은 농담을 지껄이는 사람들, 가짜 영수증을 발급해달라고 하는 사람들까지 빌런들은 다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사람들이 더 많다. 누구나 배불리 먹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따뜻한 지역공동체를 추구하는 식당의 취지에 맞게 대표님은 세심하게 손님들을 배려한다. 간혹 감사한줄 모르고 한 없이 바라기만 하는 손님들에 대해 볼멘소리를 하면 “여기는 따뜻한 밥상이잖아요. 저도 홍제점 <따뜻한 밥상> 목사님께 그렇게 배웠구요.” 라며 나를 부끄럽게 하신다. 따뜻한 밥상은 어린이와 청소년 손님들에게 후하다. 냉장고에 있는 탄산음료를 서비스로 받을 수 있는 행운아들이다. 이곳의 직원들은 자발적 봉사자들이다. 드물지만 손님으로 와서 취지에 감동해 자발적 봉사자가 되는 분들도 있다.
요즘 시대에 삼천원의 가치는 어느 정도 일까? 새우깡 한 봉지도 천원이 넘는다. 삼천원이면 김밥 한 줄은 못 사먹고 편의점 샌드위치나 삼각 김밥 두개 정도 사먹을 수 있겠지.
물건의 값은 돈으로 환산할 수 있겠지만 마음의 허기를 돈으로 채울 수는 없을 것이다. 삼천원은 음식의 값이 아니다. 자릿세도 아니다. 외로움과 공허함으로 텅 빈 뱃속과 맘속을 채우는 따뜻한 세계로 들어가는 입장권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