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가족여행 (2023.5.28~31)
2월 어느 주말 광주에서 엄마와 세 자매가 오랜만에 모였다. 사촌 동생 결혼식으로 모두 모인 그날 공원에 앉아 따뜻한 햇살과 차를 즐기며 곧 찾아올 봄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러다 불쑥 우리 다 함께 여행 가본 적 없지? 봄에 여행 갑시다 ~ 갑작스레 분위기가 달아올랐고 코로나 끝자락이라 해도 해외는 좀 무섭고 제주도로 가자는 의견이 우세했다. 일산으로 천안으로 광주로 각자 돌아간 우리는 제주도 여행 일정을 짜고 경비를 모으고 숙소를 알아봤다. 남편들의 두둑한 후원으로 아이들과 세 자매와 엄마까지 10명의 멤버가 여행을 손꼽아 기다렸다. 이왕 가는 거 질러 보자는 마음에 숙소도 넓고 비싼 곳으로 정하고 편안한 여행을 위해 가이드도 섭외했다. 여름이 시작되는 5월 말 설레는 제주 여행이 시작되려는 전날 밤 둘째가 코로나에 걸린 것 같다고 전화를 했다. 둘째와 조카는 여행을 포기했고 코로나 증상은 없었지만 둘째와의 접촉이 있었던 엄마는 혹시 다른 딸들에게 옮길까 두려워 여행을 포기했다. 많이 안타깝고 속상했지만 모두가 기다렸고 체험학습도 신청해 놓은 상태라 두 가정이라도 여행을 가기로 했다.
첫째 날 : 이호해변 목마 등대- 애월 돈 파스타 정원- 한 담로- 협재 해수욕장- 하나로 마트- 고흐와 바흐 펜션
제주도 공항에는 50대 후반의 남자 가이드님이 우릴 반갑게 맞으셨다. 청주공항과 김포공항에서 제주로 모인 7명의 여행객들은 승합차를 타고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첫 번째 여행지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가까운 이호 해변이었다. 목놓아 제주 여행을 기다린 아이들은 비 소식과는 달리 맑고 따뜻한 날씨에 마음이 설레서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커다란 목마 등대가 이곳저곳에서 우리를 반겨 주었다.
이호 해변 목마 등대
이른 아침부터 서두느라 아침을 잘 챙겨 먹지 못해서인지 갑자기 허기가 찾아왔고 아이들의 의견을 존중해 스파게티와 피자를 먹으러 갔다. 동남아의 어느 해변가를 옮겨 놓은 듯한 인테리어가 인상적인 식당이었다. 실내보다 정원을 더 멋지게 꾸며놔서 사진 찍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밤에는 조명 아래서 공연도 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동남아 식당이라는 콘셉트라 그런지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틀지 않았다. 스파게티와 돈가스 정식, 피자를 먹는 동안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음식의 맛은 평범했고 손님이 많이 왔던 모양인지 주방과 홀서빙은 바빠 보였다. 찜질방에서 구운 계란을 까먹는 것처럼 덥고 습한 점심시간이 끝나고 다음 장소로 고고~
돈 파스타 정원
가이드는 제주도 구석구석으로 우릴 안내했는데 가이드 없이 가족끼리만 올 땐 두세 군데만 다녀서 인지 여러 곳으로 따라다니는 일은 신기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다.
여기는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애월의 한담로. 주변에 게스트 하우스, 카페, 바, 서핑 강습소 같은 것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한담로는 사진 찍으며 살살 걸으면 30~40분 정도 소요되는 걷기에 적당한 길이었다. 색색의 푸른 물빛을 즐기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길을 따라 걸었다. 물, 바위, 작은 해양 동물들, 들풀들, 야생화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특히 제주 바다 근처에서 어김없이 만나게 되는 갯강구들이 여행자들을 가장 격렬히 반겨 주는 듯했다. 생긴 건 바퀴벌레 같은데 바다에 사는 애라니.. 처음엔 징그러워서 피해 다니다가 여행 내내 만나게 되니 익숙해졌다. 따뜻한 초여름 날씨이긴 하지만 바람이 부는 제주도의 특성상 얇은 겉옷을 다 챙겨 입은 우리와는 달리 덩치 큰 외국인 여행자들은 짧은 쇼츠에 민소매 차림으로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확실히 대한민국이 글로벌 해졌구나. 가는 곳마다 각국에서 온 해외 여행자들이 눈에 띄는 걸 보면 말이다.
한담로
협재 해수욕장이다~~
몇 년 전 겨울에 왔을 때는 을씨년스럽고 강풍에 머리통이 떨어져 나갈 듯했는데 여름에 오니 좋긴 했다. 물빛이 예쁘고 넓은 백사장이 뛰어다니기에 좋았다. 아직은 초여름이라 바닷물이 찰 거라 생각하고 수영복을 챙겨 오지 않았는데 아이들은 바다를 보자마자 물속으로 돌진했다. 처음엔 차갑지만 놀다 보니 괜찮다고 하며 몇 시간을 그렇게 물놀이를 했다. 아이들이 그렇게 용감하게 물속으로 뛰어들 수 있었던 건 이미 많은 사람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었고 서핑을 배우는 사람들,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한 여름도 아닌데 벌써부터 해수욕하는 사람들이 많다니... 한 여름엔 사람 무지 많겠구나.
협재 해수욕장
해수욕은 즐거웠지만 아이들 옷 갈아입히고 물기를 닦아주는 일은 엄마들 몫이었다. 좁디좁은 주차장 승합차 안에서 겨우 옷을 갈아입고 나와 한림에 위치한 하나로 마트에 저녁 장을 보러 갔다. 저녁 메뉴는 목살 구이와 김치찌개.
우리의 숙소 고흐와 바흐 펜션은 한림읍에 있는 한적하고 넓은 펜션이었다. 바다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넓은 마당에 운동 기구들도 있고 트램펄린과 별을 볼 수 있는 전망대까지 갖춘 독채 펜션이었다. 한 마당에 같은 모양의 집이 4채가 있었지만 독립 공간처럼 느껴진 곳이었다.
내부의 시설들도 깔끔하고 편리했으며 웬만한 생활용품과 식자재들이 다 갖춰진 곳이었다. 특히 감동이었던 건 환영 선물들이었다. 한라봉, 수제 맥주, 즉석밥, 라면, 쌀, 유기농 양념들과 고급 진 식기들... 현관에 들어서면 큰 바구니에 엄청나게 많은 수건들이 차곡차곡 쌓여있고 탁구대와 그네, 탁자가 줄줄이 놓인 베란다가 있었다.
비싼 값을 하는 펜션이었다. 침대도 많아서 10명 안팎의 가족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고기를 굽고 찌개를 끓이고 과일과 음료를 먹으며 즐거운 수다가 펼쳐졌고 그렇게 제주의 밤은 깊어 갔다.
고흐와 바흐 펜션
둘째 날: 한림항- 비양도-보말보말 칼국수- 더마파크 공연 관람 및 승마- 금능석물원- 제주바다목장- 횟집 포장 (돔, 광어, 숙성 고등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부리나케 찾아간 곳은 한림항. 비양도로 향하는 배가 막 출발하려는 찰나 티켓을 겨우 사서 배에 오를 수 있었다. 이미 승차한 승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배를 놓치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감사했다. 15분을 달려 섬에 도착. 비양도는 작은 섬으로 느긋하게 산책하는데 1시간~1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배가 도착하면 제일 먼저 비양이라는 이름표를 목에 건 작고 노란 댕댕이가 반갑게 환영 인사를 한다. 이 섬의 마스코트인 듯하다.
또 한 명의 마스코트는 해설사님이었다. 비양도의 탄생과 식물들, 화산송이까지 재미있게 설명해 주셨다. 고려 시대에 화산 활동으로 갑작스럽게 생긴 섬이라니 그 시대 사람들은 얼마나 놀랬을까 싶다.
보슬비가 와서 바다 건너 섬들도 보이지 않고 물가에서 즐기기에도 적절한 날씨는 아니었지만 걷는 동안 작은 바다 생물들, 야생화들, 특이한 모양의 바위들, 해녀들의 쉼터, 잠수하는 해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섬의 특별한 공간, 펄랑못! 염습지라고 하는데 바닷물과 민물이 서로 왔다 갔다 하는 곳이라고 했다. 애들은 바닷물 맛이 나는지 확인하겠다며 살짝 찍어 먹어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무지 짜다고 했다ㅋㅋ
걷다 보니 중간에 팔각정이 있었다. 가이드님이 가져오신 콜라를 한 잔씩 하며 우연히 개량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전통춤을 연습하는 어머님들의 공연을 관람하게 되었다. 춤은 나이와 상관이 없다. 60-70대 분들인 것 같은데 하늘하늘 몸을 흔드시는 모습이 무척 아름다워 보였다.
비양도
제주에 왔으니 보말 칼국수는 꼭 먹어야지! 미리 찜해둔 칼국숫집에 갔더니 월요일은 휴무라고 했다. 가이드님의 안내로 보말보말 칼국숫집에 갔다. 김가루와 작은 시리얼 알갱이가 섞인 것 같은 거무스름한 칼국수를 참 맛나게도 먹었다. 보말전도 빼먹으면 섭섭하지. 점심을 든든히 먹고 다음 장소로 고고!
더마파크는 인터넷에서 검색해 봤던 것보다 훨씬 넓고 웅장했다. 공연 시간 전에 잠깐 여유가 있어서 아이들은 승마 체험을 했다. 500m 정도의 짧은 거리를 한 바퀴 도는 것이 전부였지만 태어나 처음 말을 타보는 삼 남매는 긴장감과 기대감으로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더마파크에서 일하는 분들은 대부분 외국인들이었다. 말을 관리하고 승마를 돕는 분들은 중앙아시아 쪽 분들 같았다. 짧은 시승에 아쉬워하며 공연장 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운동장이 무대였고 무대 안에는 언덕과 숲, 전쟁용 무기, 망대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당근 바구니였다. 공연 시작과 후에 말들에게 선물할 당근을 한가득 담아 판매하고 있었다. 한 꼬치에 1,000원. 비싼 건 아니었지만 여러 말들에게 선물하려고 하니 순식간에 몇 만 원이 날아갔다. 말들은 공연장 펜스에 쭉 둘러서서 당근을 달라고 애교를 부리고 있었고 아이들은 말들에게 당근을 먹이느라 신이 났다.
드디어 공연 시작! 20~30여 마리의 말들과 배우들이 등장했다. 스토리는 고구려 태자 담덕의 영웅담이었다. 넓은 장소에서 내달리는 말들과 배우들을 보니 광활한 몽골 땅에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가는 유목민들이 연상되었다. 멋진 사극 한편을 직관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배우들의 아크로바틱한 묘기들도 멋졌지만 말들이 상황에 맞게 연기를 제대로 해낸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몸을 구부려서 배우들의 묘기를 돕거나 결투신에서 죽은 척하거나 관객들의 호응과 함성을 이끌어내는 제스처들이 배우들 못지않았다.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을지 측은한 마음도 들었다. 말들과 배우들 모두 한국 출신은 아닌듯했다. 가이드님의 설명으로는 몽골의 극단 전체가 함께 들어왔다고 한다. 고생한 말들에게 당근을 선물해 주고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다. 다음에 또 오겠다고 약속하면서..
더마파크
금능석물원은 가장 제주다운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는 대표적 관광지다. 제주의 자연, 설화, 제주인들의 생활 모습을 돌과 바위를 이용해 익살스럽고 아름답게 표현한 곳이다. 할아버지 한 분이 평생 돌을 깎아 이 많은 작품들을 만드셨다니 그의 장인 정신에 경의를 표한다. 아기자기한 작품들과 잘 가꿔진 정원으로 아이들과 사진 찍으며 잠시 들르기 좋은 곳이었다.
금능석물원
제주 바다목장. 둘러보고 나서야 왜 목장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보통 바다라고 하면 그냥 물이 가득 찬 넓은 공간 정도로 생각되는데 이곳은 군데군데 경계가 있고 각 장소마다 다른 바다 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깊은 곳, 얕은 곳, 물 색깔도 다양하고 긴 다리와 여러 등대들이 있어 풍경도 아름다웠다. 특히 커다란 풍력발전기들이 돌아가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셋째 날: 금악오름- 박물관은 살아있다 중문- 더본호텔 탐모라 점심뷔페- 천제연 폭포- 방주교회- 산방산 유람선- 대정읍 돌고래 서식지
전날 저녁엔 비가 많이 왔는데 다행히 아침에는 부슬부슬 내리는 정도였다. 화창한 날씨면 좋겠는데. 낮에는 맑게 갤수도 있겠지. 제주 날씨는 언제나 종잡을 수 없는 변덕쟁이 같으니깐. 등산을 좋아하지 않아서 오름에는 안 가봤는데 가이드님의 추천으로 부슬대는 비를 맞으며 금악오름에 올랐다. 이효리가 자주 올라서 유명해진 오름이란다. 커다란 웅덩이처럼 움푹 팬 땅 주위로 낮은 언덕들이 둘러싸여 있고 갖가지 나무들과 꽃들도 피어 있었다. 흐리고 약한 비가 오는 날씨라 전망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산 할아버지가 구름 모자를 쓰고 있는 것처럼 신비롭게 느껴지는 광경이었다.
오늘은 비가 와서 실내 관광 쪽으로 계획을 잡았다. 중문으로 고고!
먼저 "박물관은 살아있다"에서 트릭아트를 관람하고 기념품샵에서 몇 가지 기념품을 산 뒤 탐모라 뷔페로 향했다.
오래전부터 백종원의 더본호텔이랑 연돈에 가보고 싶었는데 가이드님께서 예약을 해주셔서 더본호텔 탐모라 뷔페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20~30분 정도 웨이팅을 했지만 느긋하게 여러 가지 음식들을 즐길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가격이 15,000원이라니. 가성비가 너무 좋았다. 음식 가짓수도 꽤 많았다. 이곳의 시그니쳐 메뉴인 훈제 연어와 베트남 쌀국수를 아이들이 몇 번을 리필해 먹었다. 식당도 넓고 직원들이 깔끔하게 잘 관리를 하고 있어서 제주도에서 가장 맘에 드는 식사를 했다. 단점이라면 주차가 정말 힘들다는 점이다. 그것 빼놓고는 다 맘에 들었다.
느긋한 식사를 마치고 비가 좀 그친 후에 구름다리 너머의 천제연 폭포에 갔다. 제3폭포까지 있었는데 한 곳은 출입 금지고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힘들어서 한 곳에만 갔다. 가까이서 폭포를 볼 수 있고 경관도 아름다워서 사진 찍기 좋은 곳이었다. 시원스레 떨어지는 폭포의 소리는 습하고 더운 날씨를 한방에 날려 주었다.
천제연 폭포
다음 장소는 방주교회.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봤던 곳이라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개인 별장들, 예쁜 펜션들이 몰려있는 곳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니 넓은 공터에 독특하고 아름다운 건물이 보였다. 깔끔하고 아기자기한 정원에 핀 수국들이 우릴 반겼고 교회 건물 옆에는 예쁜 카페도 있었다. 교회 내부는 그렇게 크진 않았지만 조용한 성당 같은 분위기였다. 외부 방문객을 위해 교회를 오픈하고 관리도 잘하고 계셨다. 주차장 앞쪽에 넓은 풀밭이 있었는데 하얀 메밀꽃이 눈송이처럼 흩어져 있었다. 봉평에만 메밀이 있는 줄 알았더니 제주 여행 중 여러 곳에서 이 메밀밭을 볼 수 있었다. 초여름에 하얀 눈밭이라니. 청량하고 시원하고 귀여운 꽃밭이었다.
방주교회
산방산 유람선을 타기 위해 서둘러 항구에 도착했다. 비가 내리는 바람에 갑판에서 즐기기는 무리여서 배 안에서 영상을 시청했다. 남자 안내원이 배가 가는 길목마다 특색 있는 바위나 장소를 구수한 이야기와 함께 잘 설명해 주셨다. 가이드님이 이곳에서 돌고래를 볼 수 있다고 하셨지만 비가 와서인지 돌고래는 나타나지 않았다. 코로나 전에는 이 유람선에서 마술, 춤과 노래, 쇼도 했었다고 한다. 안내원이 그 시절을 그리워했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기엔 선정적인 쇼도 있었고 안내원의 남성 중심적인 멘트들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다음번엔 타지 말아야지.
돌고래를 만나지 못한 아이들이 많이 아쉬워하자 가이드님이 95% 확률의 고래 출몰 지역에 우리를 데려다주셨다. 비가 내리는 것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돌고래를 보기 위해 대정읍 돌고래 서식지를 따라 걸었다. 2차선 도로 왼쪽으로 쭉 연결된 해안가에 돌고래들이 떼 지어 등장했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바닷가 근처로 내려갔다. 돌고래들은 손님을 맞이하듯 떼 지어 다니며 물 위로 뛰어올랐다. 시원스레 묘기를 부리는 녀석들이 정말 예쁘고 멋졌다. 오늘 여행 중 가장 값진 수확이었다.
넷째 날: 신비의 도로(도깨비 도로)- 제주 종마 목장 -사려니 숲길- 에코랜드 -삼양해수욕장
오늘은 제주 여행 마지막 날. 편안하고 즐겁게 지냈던 고흐와 바흐 펜션을 대충 정리하고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일정이 빡빡하지 않았다면 펜션에서 느긋하게 여행을 즐겨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아쉬웠던 건 비가 오고 흐려서 천체 망원경을 사용해 보지 못했다는 거. 또 오면 되지 뭐.
애들이 도깨비 도로에 가보고 싶다고 해서 힘들게 갔는데 사실 그냥 작은 도로에 불과했다. 가이드님이 기어를 중립에 놓고 손발을 다 뗐는데 차가 움직이는 모습이 약간 신기하긴 했지만 시간 들여올만한 곳은 아니었다.
기왕 온 김에 근처에 널려 있는 푸른 목장들을 둘러보고 싶어서 종마 목장 입구로 갔다. 안에 들어가진 않았고 울타리 근처에서 말들을 구경하고 사진도 찍었다. 제주에는 푸른 초장과 말들을 아무 데서나 볼 수 있어서 신기했다.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났다.
사려니 숲길! 몇 년 전 겨울에는 너무 늦게 오는 바람에 아쉽게도 숲길을 걷지 못했다. 이번에는 기필코 숲 체험을 하리라 마음먹고 일찍 서둘렀다. 이슬비가 내리고 있어서 맨땅은 약간 질척거렸다. 장애인과 노약자가 이용하는 데크 길을 따라 걷기로 했다. 길쭉하고 오래된 삼나무들이 고요히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초록의 나라에 들어선 우리는 초록빛에 둘러싸여 제대로 눈 호강을 했다. 빗물과 섞여오는 풀냄새, 나무 냄새도 싱그러웠다. 우리는 마치 동화 속 혹은 만화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걸어서 즐기는 숲 체험을 끝내고 기차 타고 즐기는 숲 체험하러 에코랜드로 고고!
정말 넓디넓은 숲 속에 다양한 테마의 잔디 정원을 만들어 놓은 곳이었다. 낮은 산에 둘러진 기차 레일을 따라 나무와 풀을 구경하다가 원하는 역에 내려 테마에 맞는 체험이나 기념품 등을 사고 사진도 찍고, 열심히 뛰기도 했다. 가장 좋았던 건 애들이 푸른 잔디밭을 원 없이 뛰어봤다는 것이다. 시간이 여유로웠으면 좀 더 느긋하게 정원을 산책하고 사진도 많이 찍었을 텐데 마음이 급하다 보니 빨리 나와야 했다.
슬슬 배가 고팠다. 관광객이 아닌 현지인들이 많이 가는 기사식당 같은 곳에서 점심 정식을 먹었다. 구운 생선, 제육볶음, 갖가지 나물과 밑반찬들, 된장국. 1인에 10,000원 하는 가성비가 아주 좋은 곳이었다. 맛과 가격을 다 만족시킨 식당이었다. 제주가 관광지라 대체로 식당과 카페가 많이 비싸다. 그럼 제주 주민들은 그런 비싼 물가를 어떻게 감당하는 거지? 가이드님 말씀이 관광객과 현지인이 가는 식당이 다르고 하셨다. 현지인 사이에서 알려진 싸고 맛있는 집도 많다고 하셨다. 오호라! 다음번에는 그런 곳들을 집중 공략해 보리라!
이제 공항으로 가야 하는데 감사하게도 비행기가 1시간 정도 늦게 출발한다고 메시지가 떴다. 제주를 그냥 떠나기가 아쉬워 공항 근처 가까운 바다에 데려다주시길 요청했다. 삼양 해수욕장, 검은 모래 해수욕장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주택가 근처에 있는 해변이었다. 아파트 근처에 이렇게 근사한 해변이 있다니. 제주 사람들은 정말 좋겠다. 공항에 가야 하니 물에는 들어가지 말고 모래사장에서만 놀자고 당부를 했건만 해변에 들어서자마자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바다로 뛰어들었다. 에휴 젖은 몸으로 비행기를 어찌 타려구.
검고 고운 모래 위에 맨발을 올려놓으니 따뜻하고 폭신폭신했다. 모래가 약간 뜨거웠지만 돗자리를 깔고 누우면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시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귀엽고 아기자기한 삼양해수욕장을 느끼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주택가 근처라서 그런지 해수욕장 주변에 주차하기가 정말 힘들다는 것이다. 주차 공간이 협소하고 먹고 즐길 수 있는 시설이 없었다. 그냥 바다만 즐기다 가기에 좋은 장소였다. 그래도 또 오고 싶다.
삼양 해수욕장
친정 엄마와 둘째 동생, 조카가 빠진 불완전한 여행이었지만 5월의 제주는 너무 아름다웠고 한산했고 낭만적이었다. 아이들에게 정말 좋은 추억거리라 된 것 같아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