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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한 무당 썰

가끔은 삶이 우리에게 너무 많은 질문표를 들이밀 때가 있다.
어떤 것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느낌표가 되기도 하지만,
그중 몇 개는 아무리 들여다봐도 답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 날이었다.
머리로는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데 마음은 점점 구겨지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마침 친구가 툭 던졌다.

“그 동네에 용한 무당 있대. 썰이 장난 아니래.”

흔들리는 마음엔 늘 작은 미신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있었다.
나는 결국 궁금함과 피로함 사이에서
절묘한 타협을 하고 말았다.


작은 당집, 낯선 온기

골목 끝에서 만난 당집은 생각보다 작았다.
붉은 천, 굵은 향 냄새, 그리고 벽을 가득 채운 부적들.
그 사이로 앉아 있는 무당은
나를 보자마자 마치 오래된 지인을 보는 것처럼 웃었다.

“속이 꽉 막혀있네. 누구한테 말도 못 하고 버텼구먼.”

첫 문장부터 마음이 덜컥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 웃었지만
사실은 그 말에 마음 한쪽이 얇게 뜯겨 나가는 기분이었다.


예언은 아니었다, 위로였다

무당은 내 손을 보며 이런저런 말을 이어갔다.
신기하게도 ‘미래’를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는 ‘지금의 나’를 들여다보는 말들이었다.

“네가 잘못한 게 아니라, 너무 오래 혼자서 버틴 거야.
사람은 버티는 것도 습관이 되면 놓는 법을 잊어.”

예언이라고 하기엔 지독히 현실적이었고,
미신이라고 하기엔 또 너무 따뜻했다.
나는 그 말이 내게 어떤 힘을 줄지 몰랐지만,
그 순간만큼은 묘하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점은 특별한 미래를 약속해주진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에 걸렸던 무게가
조금은 가볍게 느껴졌다.

사람이 누군가에게
‘괜찮다’는 말 한 번 듣기 위해
멀리 돌아가는 때가 있다.
그날의 나는 딱 그랬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면
용한 무당의 비밀은 신기한 점괘가 아니라
지친 마음이 쉴 수 있도록
잠깐의 틈을 열어주는 능력이 아니었을까.

그래서일까.
누군가 “요즘 어때?” 하고 묻는다면
나는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음… 그날 이후로는, 조금씩 살아지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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