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면서도 신기하게 남극에서도 인터넷이 된다. 2Mb/s 의 속도인 인터넷을 20~100명이 사용하기에 속도는 상상 이상으로 느리다. 이론상으론 한국에서 LTE 평균 속도가 150Mb/s 니까 대략 1500~7500배 정도 느린 거다. 인터넷 뱅킹으로 월급 확인에만 30분이 걸렸고, 말로만 듣던 모뎀시절 이미지가 한줄씩 뜨는 것도 경험해봤다. 유튜브는 꿈도 꾸지 못하고, 음악 스트리밍도 10분 기다리면 3분짜리 곡을 들을 수 있는 수준이다.
남극에 갈지 확실하지 않은 상태라 한학기만 휴학을 신청해놓고 왔었다. 다행히도 휴학 신청 기간을 놓치지 않고 신청 페이지에 들어갔는데 접속이 안됐다. 그렇게 김인태는 남극에 갔다 제적이 되고 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공적이거나 중요한 일은 양해를 구해 다른 접속들을 막고 혼자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 한국 어린이들과의 화상통화, 정부 인사와 대담, 축구중계, 연말정산 등이 그 특수한 경우였고 다행스럽게도 내 휴학 또한 그 범주에 들어갔다. 먼저 통신대원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그의 제시대로 총무님께 허락을 받고 오니 나 혼자 2Mb/s의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렇게 휴학신청을 잘 마무리지었고, 제적당하지 않았다. 그땐 몰랐다. 아직까지 휴학하게 될 줄은.
말만 들어도 답답하지만, 대한민국이 인터넷 강국인 것은 남극에서도 여전한가보다. 다른 기지에서 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휴대폰 보기에 바빴기 때문이다. 주로 뉴스를 확인하거나 고국의 가족과 연락하는 것 같았는데 저 느린 인터넷 조차 남극에선 초고속인 것이다.
유튜브도 못보고 카페도 못가고 티비도 없으면 대체 무엇을 하나? 영화나 드라마는 네이버 다운로드를 이용할 수 있긴 하지만 저 가녀린 인터넷을 영상 다운에 할애해버리면 전체 인터넷 속도가 엄청 느려질 뿐만 아니라 하루 종일 다운받아도 영화 세편도 안될거다. 어쩔 수 없이 각자 챙겨온 것을 공유하거나 쇄빙선이 올 때 그간 밀렸던 영상들을 한 번에 받을 수 있다. 드라마를 매주 봐야만 하는 사람들은 쉽지 않은 생활일 수도 있다. 웹툰도 6개월간 어쩔 수 없이 끊었는데 그래도 몇분씩 기다려서 보는 사람들도 있긴 했다.
책. 쇄빙선으로 책이 들어온다. 생각보다 다양한 분야의 신간들이 들어왔는데 아무도 읽지 않을 것 같은 책들도 껴있어서 놀랐다. 아마 분야별 베스트셀러 순위에 있는 책을 우선적으로 보내주는 것 같았다. 덕분에 예전부터 읽고싶었던 한국 현대소설들을 접할 수 있었다. 사실 생각만큼 책을 많이 읽지는 못했다. 퇴근하면 책이 도저히 펴지지가 않는데 어떡하란 말인가. 영화는 수십편을 봤지만 책은 열 두권 정도밖에 읽지 못했다. 열두권도 적지는 않아보이지만, 다른 오락거리가 별로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적은 숫자다. 게다가 일을 하지 않았던 쇄빙선에서는 40일만에 열권 가까이 읽었는데 그 세배도 넘게 있었던 장보고기지에서 읽은게 저거라고 생각하면 대체 뭘 했나 싶다.
영화는 2~3일에 한편꼴로 봤다. 얼음을 잔뜩넣은 콜라와 감자칩을 먹으며 영화를 보는 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었다. 덕분에 살이 많이 찌긴 했지만. 런닝머신 위에서도 꽤나 봤는데 역시 살은 식단이 70인가보다. 웬만한 명작들은 다 봐서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추천을 부탁했더니 타이타닉을 얘기하길래, 배타고 나가는 사람에게 꼭 그런걸 추천해야겠냐는 핀잔을 줬던 기억이 난다. 가벼운 오락영화부터 무겁고 철학적인 영화들까지 언젠가 보고 싶었거나 궁금은 한데 시간이 아까워 보지 못했던 영화들을 잔뜩 봤다.
원래 유튜브도 잘 안 보고, 드라마는 아예 안 봐서 그 둘로인해 힘들진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남극은 힘들 이유와 원인이 넘쳐나는 곳이니까... 예전에 올린 글에도 있고... 하지만 그 반대도 충분히 가능한 곳이 바로 남극.
이건 쇄빙선에서 캡쳐한거긴 한데 인타넷 속도는 장보고기지랑 큰 차이는 없는것 같다.'bit' 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