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이랑 뉴질랜드 파푸아뉴기니 적도를 거쳐 온갖 풍경을 다 보고 얻은 결론이 고작 너네 동네가 예쁘다는 거냐면 할 말이 없지만-그리고 사실 6개월동안 못봐서 어떻게 생겨먹은지도 가물가물하지만-지금 느끼기엔 그렇다.
말로는 표현이 안되는 별의 별 풍경들을 다 봤고, 눈물을 찔끔 흘릴 뻔 하기도 했는데 막상 풍경을 보고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던 건 뉴질랜드 근처에서 5개월만에 야경을 봤을 때다. 뭐 드디어 문명세계로 왔구나 싶은 감동도 있었겠지만. 근데 정말 돌이켜보면 친구가 우리 대학교랑 서울의 야경을 영상통화로 보여줬을때도 꽤나 감격이었고, 지금은 철물점 강아지부터 개구리소리가 들리는 논밭이랑 조금 걸어나가면 있는 지하철역까지 모든 게 그립다.
여튼 그래서 내가 깨달은 첫 번째 명제를 다른 말로 하자면, ‘세상엔 두 종류의 풍경이 있다. 좋은(멋진) 풍경과 아주 좋은(멋진) 풍경.’ 뭐 이정도가 될텐데, 어느 곳이든 다 아름다울 수 있다는거다. 우리 동네도 내가 남극을 보듯, 뉴질랜드를 보듯 새롭고 신기하게 바라본다면 다르게 다가왔을 것처럼. 반대로 남극도 오래 있다가 보면 어느순간엔 일상이 되고 지루한 풍경이 되었던 것처럼.
현재의 행복에 대한 건 자기개발서나 얼마전 쏟아져 나왔던 긴 제목의 에세이집들에서 흔히 보이는 명제긴 한데, 나에게는 여러 단계를 거쳐 얻게 된 충격적인 깨달음이다. 예전부터 지금 당장부터 행복하자는 생각은 했는데 남극에선 ‘아 하루에 조금만 더 쉴수 있으면-아 주말에 쉴 수 있으면-아 얼른 쇄빙선 타서 일 안하고 놀기만 했으면-아 멀미만 좀 줄어들었으면-아 인터넷만 좀 잘 됐으면-아 한국에 얼른 도착만 했으면-…’으로 이어지는 끝없는 불만족의 서사로 깨닫게 된 것이다. 내가 원하는 걸 얻거나 원하는 상태에 이르러도 그건 어느새 완전히 잊고 다음을 원하고 있다. 이렇게 일하고 생활하는 게 워낙 오랜만이기도 하고, 친구들 못만나는게 좀 크긴 했지만.
그리고 이걸 지금 적용하면 맨날보는 바다도 다르게, 행복하게 보이긴 하겠지. 근데 사실 바다는 특히 노을이 질 때는 맨날 다르긴 하다. 남극이 그랬듯.
두 번째 명제랑 첫 번째 명제를 짬뽕하면 한국 그리워하지말고 그냥 지금 즐겨라긴 한데 너무 그리워
사실 여러 번 와본 분들이 그러듯 막상 와보면 별거 아니기도 하다. 다만 오기 전에는 누가 무슨말을 해도 그냥 환상속에만 존재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왜 정말 엄청나고 대단한거 같은데 막상 이뤄보니까 별거 아닌것들 다들 있지 않나. 뭐 그렇다고 남극이 아름답지 않았다는 건 절대 아니다. 벌써 다시 가고 싶을 정도니까. 안 가본 사람은 모를거다.
원래는 한국 도착하고 나서야 쓸만한 내용인데 또 한국 도착해서 불평불만 할까봐 미리 박제해놓는거다. 정신차리라고. 근데 아마 친구들 만나서 온갖 뒷이야기와 회포를 풀기 전까진 좀이 솔찬히 쑤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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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남극만 아니면 돼’ 병의 중증이었던 때 누가 “넌 쇄빙선을 타도 행복하지 못해. 그러니 지금 행복을 찾아.” 라고 말해줬다면, “그럴리 없다. 내 모든 꿈과 희망은 쇄빙선에 있다. 쇄빙선만 타면 행복해질 수 있다.” 며 믿지 않았을거다. 군대나 기타 다른 힘든 시기에도 누군가 비슷한 얘기를 했다면 코웃음치며 부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남극까지 다녀왔는데 이번엔 다르겠지.
이렇게 큰 깨달음을 얻었고 박제까지 해두었지만 한국에 와서 자가격리 일주일만에 불만이 폭발했고, 자가격리가 끝나고도 불만이 폭발했다. 이제 남극에 다녀와서 깨달은 건 이것까지 세 가지다. “만족과 감사는 참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