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얘기를 하자면 작년 여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원래는 미술학과 자체 교환학생으로 영국의 Middlesex University에 합격했었다. 지원하면서 포트폴리오 사이트도 만들고 26만 원(보름치 생활비에 달하는!)인가 내고 아이엘츠 시험도 봤다. 그래서 합격하고 즐겁게 다음학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쪽 대학교에서 2학년만 받는다는, 원래는 없었던 조건을 내세우며 거절하는 것이 아닌가! 과 행정실에서는 '이 학생은 이번이 미술학과 복수전공 첫 학기라 2학년과 다름이 없다'라고 까지 얘기하며 노력해 줬지만, 결국 안 됐다. 근데 웃긴건 몇주 뒤에 합격을 축하한다며 그쪽 대학 수강신청 상트에 접속할 수 있는 아이디까지 적힌 메일이 왔다. 이게 뭔가 싶어 행정실에 문의하니 착오라고;
아무튼 이 경험이 거름이 되어 영국과 정반대인 곳을 찾기 시작했다. 날씨가 좋고, 음식이 맛있고, 물가가 저렴한 곳. 좀더 자세한 이유와 과정은 한국에 두고온 일기장에 적혀있을텐데 기억에 의존해서 적어보자면, 처음엔 예술관련 대학을 가려고 'art' 를 검색어로 모든 대학 목록을 뒤져봤다. 이상한게 걸리긴 했지만 좀 추려봤는데 딱히 마음에 들지 않았고.. 여차저차 하다가 말라가가 눈에 들어왔나보다. 사실 그때 처음 들어본 지명이었다. 스페인 남부의 휴양도시. 한겨울에도 15도인 곳. (지금도 낮기온 21도다. 한국은 영하15도라죠..? 눈이 오거나 물이 언다는건 상상도 못하는 곳) 날씨 좋고 바다 가깝고. 심지어 한국어학과가 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한달 머물때 한국어를 잘 하고, 한국에 관심 많은 친구가 타향살이에서 얼마나 큰 도움과 힘이 되는지 깨달았기에 한국어학과의 존재는 꽤나 컸다.(근제 다시 생각해보면 유럽 전역에 한국에 관심있는 학생들이 엄청 많기에 크게 중요하진 않을지도 모르겠다. 고마워요 bts손흥민블랙핑크..) 그리 좋아하진 않고, 여기가 주 활동무대도 아니었지만 여튼 알고보니 피카소의 고향이라고도 하고. 그래서 미대 수업은 영어로 열리지 않는다는걸 알고도 여길 선택했다. 실기 위주 수업을 들으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합격하고 6개월동안 듀오링고로 공부하긴 했는데.. "내 아내는 무척 예쁘다" 같이 쓸모없는거만 배웠다.
아무튼 그래서 만족하냐고? 매우. 연중 강우 일수가 40일이다. 참고로 한국이 110일정도 된다는데 감이 좀 오실런지? 심지어 비가 와도 30분 안에 그치는게 절반이다. 외식 물가는 엥간한 유럽의 절반~70%수준. 수영은 두어번밖에 못했지만 심심하면 해변에 갈 수 있다는건 꽤나 큰 메리트다. 무엇보다도 살가운 친구들이 많다. 가장 자주 보는 친구들도 수업에서 먼저 다가와준 친구들이다.(친구들에 대해서도 쓸 얘기가 무지많다!) 스페인도 지역마다 사람들 특성에 차이가 있는건지 얘길 들어보면 북부사람들에 비해 훨씬 친구가 되기 쉬운것 같다. 북부사람들은 남부사람들에 대해 게으르다는 편견이 있다던데.. 유럽 전체가 남유럽 사람들에 대해 비슷한 편견이 있지 않나..? 근데 내가 여기선 자기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굉장히 많이 봐서 큰 자극이 됐다.
인구는 50만 정도인데 항상 외국인들로 붐비고 주말 시내는 논술끝난 대학교마냥 붐빌때도 있다. 서울 뺨치는 유동인구. 아직 스페인 다른도시를 안가봐서 모르겠지만, 한국으로 치면 속초/양양과 부산 그 사이쯤 되는 느낌이다. 다만 속초/양양에 좀더 가까운.. 작정하고 관광을 밀어서 그런지 원래 유럽도시들이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거리 공연이나 행사가 엄청 자주 있는편이다.
그리고 온갖걸 줄이는 한국인 습성에 맞게 줄임말들이 많다. 단어의 맨 마지막을 발음하지 않는건 기본이고, 중간중간에도 생략하는게 많다. Hasta luego 는 ta luego, muchas gracias 는 mucha gracia, Andalucia 는 Andalu 뭐 이런식이다. 마무리 억양이 조금 달라지는건 덤. 매우 효율적인 언어사용이다. 게다가 말이 엄청나게 빨라서 마드리드쪽이랑은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원래는 말라가 선택의 이유만 쓰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말라가에 대한 생각까지 쓰게돼서 글이 길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