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없는 인테리어 I 디자인사의 흐름 (6)
찬란하고 끝없을 것만 같았던 로마제국도 덧없이 무너지게 되어 많은 건축과 인테리어, 가구, 작품 등이 소실되었으나,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에 도읍을 둔 비잔틴제국에서 계승되었다. 한 편 서유럽에서는 게르만 민족의 지배가 확장됨에 따라 고대의 사회조직이나 예술의 전통은 상실되고 신분제도에 기인한 봉건사회와 그리스트교 문화가 보급되었다. 이런 배경하에 5~6세기 경이되는 중세 초기에 로마적 요소가 토착문화와 혼화 되어 '로마네스크 양식'이 탄생하게 된다. 중세의 로마네스크 시기의 건축이나 인테리어는 어떠했을까?
로마네스크 시대(Romanesque art, 약 10~13세기경)
로마네스크는 중세시대의 서유럽에서 나타난 최초의 통일된 미술 양식으로, 200년 동안 번성하며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모든 예술이 절대자인 신을 위한 것으로 인식하던 시기이다. Roman(로마인)과 Esque(기법을 닮은)의 합성어로 화려한 고대 로마적인 건축양식을 계승한 '로마 스타일'이란 뜻이다. 이 양식은 당대 지중해 유역의 비잔틴 양식, 이슬람 양식에 서유럽의 기독교적 세계관에 다라 켈트나 게프만족의 추상적 미술과 고대 로마의 구상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미술의 유산들이 건축, 조각, 회화에 걸쳐 발전되었다. 시기적으로 교회가 세력을 확장하는 기간으로 기독교가 유럽 전역으로 전파되고, 더불어 수도원이 곳곳에 세워졌던 시기이다. 피사 대성당은 십자 모양으로 설계하고 그 교차점에 둥근 천정을 올렸다. 하늘에서 바라보면 신을 향한 믿음을 상징하는 십자가가 완벽하게 보인다.
초창기 로마네스크란 건축사상의 용어로 당시 잦은 전쟁으로 인한 석재 구조를 사용하고, 석조의 반원 형태의 돔, 둥근 아치, 튼튼한 기둥, 큰 탑과 장식적인 아케이드(늘어선 기둥 아래의 공간배치로 지붕이 있는 통로 모양)로 설계되어 있다. 또 가장 큰 특징은 초기 기독교회의 목조 천장을 아치를 이용하여 둥근 천장 즉 궁륭형(vault)의 석조로 개조한 점이다.
고딕 건축에 비하면 단조로워 보이고, 대부분이 규칙적이고 대칭적인 평면으로 구성된다. 중세의 대표적인 양식인 고딕 양식이 종교적인 성향이 강하다면, 로마네스크는 종교적으로 가는 중간에 인간과 이성, 자연의 신비, 신앙의 세계를 드러내는 특색이 있다. 거대한 수도원 교회 등이 이에 속한다.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은 9세기 후반에 일어나 12세기에 고딕 양식으로 발전한 유럽의 건축을 의미한다. 요즘 로마네스크 시대의 디자인과 건축으로 인테리어 콘셉트팅을 적용한다면, 신성함을 가져야 하는 공간 즉 복고풍 교회나, 성당 등은 물론이고 결혼식 등의 경건함이 필요한 공간 등이 될 수 있겠다. 물론 순수히 디자이너 및 소비자의 의도가 맞는다면 말이다.
로마네스크의 지대한 영향을 많이 받은 건축가 중에는 천재 건축가 에스파냐의 안토니 가우디(1852 ~ 1926)가 있다. 가우디는 대장장이 아들로 태어나 선천적으로 허약해 학교에 잘 가지 못했고 집 근처 개천이나 숲 속, 유적 근처에 않아서 명상하기를 좋아했다. 여기서부터 가우디 건축의 특징인 '자연'과 '금속'의 특성이 생겨난 것이라 한다. 바르셀로나에서 건축학교를 졸업하고 많은 독차적인 건축을 남겼는데 그의 건축의 특징은 모든 면에서 곡선이 지배적이며, 벽과 굴곡을 이루고 섬세한 장식과 색채가 넘쳐 야릇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 때문에 19 ~20세기 초엽의 유럽에 유행하였던 아르누보의 에스파냐판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있다. 진가를 발휘했던 후반기 작품 중 코로니아 구엘 교회의 재실, 구엘공원 등이 있으며, 카사 바트로, 필생의 대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익랑의 정면 및 탑 조각이 있다.
누가 유행은 돌고 돈다고 했던가? 예술 역시도 세상에 없던 것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은 거의 없고 옛 것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다른 것과의 조화나 재 창조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린 오늘도 옛것에서 현대의 무엇인가를 창조해 가는데 인테리어 디자인도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