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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미션 Jan 17. 2022

2. 도망갔던 그 남자는 어찌 되었나

[수요일 10시, 아하하하 소희 씨]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매칭 스토리를 빼 놓을 수가 없겠다. 왜냐하면, 소희 씨는 살림은 궁핍해도 최고의 가성비로 결과물을 매칭하거나 찾아내는 눈이 있었고, 생활비가 바닥이 나도 오이 하나로 두어 가지 맛난 반찬을 뚝딱 해내는 신기술을 지녔으며, 앞으로 수없이 등장할, 아마도 이 시대 마지막 전설로 남을 '스펙타클 언익스펙팅 패밀리-인-로 월드'에서 미션을 하나씩 클리어해 나가면서도 자신의 부모에게 큰 내색을 하지 않았는데, 소희 씨의 이 모든 캐릭터가 나의 외조부모님, 그러니까 그녀 부모의 영향 아래 만들어진 것임을, 나는 확신하기 때문이다.


외할머니 김선일 양은 2남 2녀의 장녀였고, 외할아버지 박용인 군은 5남 2녀 중 둘째 아들이었는데 오랜 옛날 흔한 형태였던 연상연하 커플이었다. 이 커플은 역시 그 시절 흔한 매칭 방법인 ‘집안 어르신들의 주선’으로 부부가 되었다. 다행히 결혼식 날 서로의 얼굴을 처음 보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래서 이 둘이 부부의 연을 맺지 못할 뻔 했다는 걸 소희 씨가 말해 주었다.


홍성 할머니가 스물 네 살이었으니, 그 때 얼마나 노처녀였겠냐. 아버지는 스물 두 살이고. 두 분이 선 봤다고 하시더라고. 내 할아버지, 그러니까 네 증조할아버지가 울 엄마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하셨데. 그런데 울 아버지가 선 보고 와서, 여자가 뚱뚱하다고 싫다고 했다나봐. 아하하하하. 그랬더니 증조할아버지가 “이놈의 새끼, 뭐가 뚱뚱하냐!” 그러고 빗자루 들고 쫓아가서 아버지가 냇둑으로 도망가셨다고 하더라고. 아버지가 그 이야기하시면서 막 웃으셨어. 아버지가 젊었을 때 인물이 굉장히 좋으셨거든.


그런데 울 엄마 젊었을 때 사진 보면 이뻐. 눈도 크고 쌍커풀도 싹 지고. 얼굴도 계란형이었는데, 오나가나 뚱뚱하니까 그런 게 덜 보였을라나. 엄마 젊었을 때 사진을 봤는데, 그 때가 아마 할아버지 환갑 때였을까. 여튼 엄마가 아주 이뻐. 우리 옆집 사는 사람이 엄마 보고 사미자 닮았다고 하더라니까. 나는 어려서 아버지 닮았다는 소릴 많이 들었는데 그 사진 보니까 엄마를 닮았더라. 아빠도 그래, 장모님이랑 내가 똑같다고. 늙으니까 키도 줄지, 어깨도 사그라들지, 얼굴도 점점 더 엄마랑 똑같아지지.


학창시절, 울 엄마를 본 내 친구들은 다들 입을 모아 “와, 정말 너랑 똑같다!”라고 외쳤는데, 소희 씨는 자신의 엄마에게서 받은 신체적 유산을, 참 촘촘히도 나에게 물려주었다. 특히 시원하게 뻗은 허리 끝에 당차게 매달린 두 다리의 실루엣과 광활해 보이나 내실이 협소한 골반 페이크는 외할머니로부터 3대 째 전통을 잇고 있는 게 분명했다. 많은 이들이 남부럽지 않은 나의 엉덩이를 보고 무난한 순산을 예측했지만, 나는 소희 씨를 보며 증명된 좁고 긴 골반의 세계에 대해 익히 들어온 바, 나의 출산 과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9시간 진통 끝에 자연분만에 성공하며 얼굴과 두 눈동자, 목과 등의 실핏줄이 다 터졌는데, 첫째 치고 나쁘지 않은 기록이라는 주변의 평에 타고난 핸디캡을 극복한 나의 고군분투 끝 쾌거가 평가절하되는 것 같아 좀 억울하긴 했다.


외할머니에게 받은 지는 잘 모르겠지만, 엄마가 분명 갖고 있는 신체적 특징이 더욱 확실히 내게 전해진 것이 몇 가지 더 있다. 그 중 제일은 동그랗고 귀여운, 또는 뭉툭하고 큰 주먹코. 소희 씨는 빼도 박도 못하는 원인제공자로서 어릴 때부터 수시로 내 콧대를 주무르며 넓게 퍼진 코의 기둥을 세우려 노력했고 그런 엄마를 보며 아빠는 “괜찮아! 우리 딸 코가 얼마나 예쁜데!”라고 의연하게 말씀하셨다. 허나 나의 코가 전혀 회자되지 않던 어느 식사 시간에 불현듯 “아냐, 선아 코 괜찮아!”라고 외치신 경우가 종종 있었던 것으로 보아, 아마 딸이 운명처럼 갖고 태어난 주먹코의 삶이 아빠도 내심 걱정되셨던 게 아닐까 짐작해 본다.


엄마를 닮은 신체적 특징은 이 뿐만이 아니다. 오른쪽 발목만 유난히 자주 접질리는 것, 몸이 아플 때 마른 귀앓이를 하는 것도 똑같다. 이가 유난히 약한 엄마를 보며, 양치질을 잘 해야겠다는 생각을 철든 후부터 하고 있다.


그때 내 외할아버지가 동네 이장이셨고 손재주도 좋지, 글씨도 아주 잘 쓰셨데. 엄마도 그 옛날 초등학교 졸업하고 양성소 나와서 서부면사무소로 발령을 받았다데. 그런데 외증조할머니가, 여자가 그런데 다니면 큰일난다고 해서 데려왔다고 그러더만. 울 엄마가 한자도 잘 써서 난 엄마한테 한자 배웠어. 신문 보면서 한자 물어보면 엄마가 다 알려줬지, 역사 같은 것도 잘 알고. 내 생각에 울 엄마가 아주 부잣집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사는 집에서 큰 딸이니 귀염 받고 별 부족함 없이 살았던 것 같아.


아휴, 울아버지 집, 서부 할아버지네는 더 대단했지. 서부는 집안에 누가 결혼하거나 돌아가시거나, 그런 큰 일이 있을 때마다 전속 사진사가 와서 그 모든 걸 다 사진으로 찍어대더라고. 일 치르고 나면 사진이 한 보따리야. 우리 증조할머니하고 고조할머니가 둘이 뜻이 맞아서 재산을 일궜다데. 그러니까 시어머니랑 며느리가 쿵짝이 맞아서 재산을 일군거지. 양조장 했지, 염전 했지. 어렸을 때 서부 큰집 가면 그 옛날에 양조장 머슴, 염전 머슴, 집 머슴, 머슴 살이하는 사람도 엄청 많고. 집에 사슴도 키우고 집 연못에 원앙도 키우고.


열심히 일하셨겠지. 증조할머니 앞치마가 떨어진 데 기우고, 또 떨어지면 또 기우고 하다 보니 처음에는 앞치마가 얇포롬했는데 나중에는 두께가 한 말이 될 정도로 두꺼워졌다고. 나 어렸을 때, 여든이 넘으셨을 땐데도 할머니 집에 놀러가서 같이 일하면 우리가 할머니 손을 못 따라가. 그렇게 손이 빠르셨어.


살 만 했던 집의 맏딸과 아주 부잣집의 둘째 아들은 결혼해 2남 4녀를 낳았다. 그 시절 모두가 가난했고 사는 모습이 비슷했다지만, 교편을 잡은 아버지와 부지런한 엄마를 둔 여섯 남매들은 조금 먹고, 나눠 먹고, 기다렸다 먹었을 지언정 굶을 걱정은 없이 살았다. 그 시절에 먹는 걱정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지점인가. 이것 말고도 우리의 수요일 10시 대화 중 소희 씨는 부모님 이야기를 참으로 많이 했고, 울컥 솟아오르는 눈물에 말을 잇지 못했던 때 역시 부모 이야기를 할 때였으니, 나의 외조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담아봐야겠다.


소희 씨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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