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터미션 Dec 25. 2023

동심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신인류의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아이는 받고 싶은 선물이 무언지 산타할아버지께 편지를 쓴다.

글을 모를 땐 아이가 불러주는대로 내가 대필했고,

가나다라를 읽고 쓸 때 쯤 나의 대필 끝자락에 아이는 자기 이름을 꾹꾹 눌러 썼다.


올해도 편지를 썼다.

언제까지 산타할아버지를 믿을까, 초등학생이 되고 나서 슬슬 걱정이 되었는데

기어코 현실세계와 동심이 조우하기 시작하는 움직임이

초1에게 오는 듯하다.


S#1.

= 엄마, 근데 산타할아버지랑 루돌프가 하늘을 날아서 오는 게 아니라.

- (흠칫 놀란다_1) 그러면?

= 그냥 길로 오시는 거야, 날지 않고. 못날아 못날아.

- (다행_1) 아, 그런...가?


S#2.

= 굴뚝으로 들어오시는 것도 아니야.

- (흠칫 놀란다_2) 그렇겠다, 요즘엔 굴뚝있는 집이 거의 없으니까. (잠시) 그럼 어떻게 들어오실까?

= 만능키 같은 거 갖고 계시지 않을까? 애들이 그래. (자기네들끼리 뭔가 논의가 있었나보다.ㅎ)

- (다행_2) 아, 그럴 수도 있겠네.


S#3.

= (선물 앞에 요령과 게으름이 접근하기 시작했다.) 아, 쓰기 힘들어.

- (요것봐라) 그럼 선물 못 받지.

= 산타 할아버지도 컴퓨터 있으시겠지?

- 글쎄.

= 아마 CCTV 같은 걸로 어린이들 뭐 하는지 다 지켜보고 계시니까, 컴퓨터도 있으실 거야. 다음부턴 컴퓨터로 써서 USB에 저장해서 봉투에 넣어둬야지.

- 왜?

= 그게 더 편해.


S#4.

= 근데 산타할아버지가 한글로 쓴 편지를 읽으실 수 있을까?

- 산타할아버지는 전세계 말을 다 아시지.

= 하긴, 파파고로 하면 나도 다 알아들어.


S#5. 다음날 아침

= (확장된 동공) 우와, 산타할아버지가 편지 가져가셨어!!!

- (덩달아 놀라-는 척하-며) 와, 진짜? 엄마도 몰랐네.

= 내가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 진짜야!!!


S#6. 크리스마스 새벽

= (평소 새벽에 깨는 일이 거의 없는 아이인데) 엄마, 쉬아.

 (화장실 다녀오며)

= 하하아, 있네 선물. (빙그레)


그 새벽부터 나와 남편이 아침에 일어날 때까지 부스럭거리다

결국은 자기가 먼저 튀어 나와 선물이 있다며 포장을 풀러보는 아이.

아직은 다행이다.

곧, 한 세계가 붕괴하겠지만.


산타할아버지~ 선물은 여기에 두시면 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가 혼자 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