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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미션 Jan 30. 2024

초코파이가 먹고 싶어서

과자가 좋은 건 어쩔 수 없다.


과식, 폭식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데 결혼 전 엄마 표현에 의하면 "밥을 찍어 먹어 놓고"도 과자를 먹었고, 결혼 후 남편 표현에 의하면 "밥을 적게 먹으니 쓸데 없는 걸 먹게 되는 것"이라는 해설을 들으며 과자를 먹었다. 20대 때 TV에서 어느 한 여자 스타가 집에 커다란 유리 항아리에 과자를 잔뜩 채워 놓은 걸 보고 그 로망을 아직도 가슴에 품고만 있는데, 뭔가 여분의 것을 굳이 쌓아두지 않는 성격도 한 몫하지만 '군것질류'로 분류되는 것들을 대량으로 구매하는 것에 오묘한 죄책감이 드는 까닭도 있겠다.


지금은 아이 간식 상자에 든 쌀과자 같은 걸 한두 개씩 야금야금 빼 먹는 정도, 남편이 애정하는 짱구 과자를 한주먹씩 비우는 정도, 삶의 전투력을 급히 끌어올려야 할 때 편의점에서 사 먹는 초코바 정도가 전부이나 그 직전에 생기는 두근두근 기대감, 입안에 퍼지는 바삭, 뭉근, 쫄깃함이 가져다주는 찰라의 환희, 이후 비타민주사 버금가게 발휘하는 번개 파워!는 여전히 나를 일으켜 채운다, You raised me up!


그날도 별스럽지 않은 토요일 오후였다.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맞은 편 중국집에서 부부는 짬뽕을, 아이는 자장면을 한 그릇씩 먹고 나오는데 여지 없이 달콤한 과자 상자가 머릿속에 두둥실 떠올랐다. 아, 오늘은 단 게 땡기네- 와이프의 과자타령을 듣던 남편이 불현듯 읊조린다. "지금 헌혈하면 사은품 두배로 준다는데."


평소 돌이나 결혼 답례로 사무실에 떡, 쿠키가 돌면 자기 몫을 고스란히 가방에 넣어와 퇴근 후 어미새처럼 아들과 와이프 입에 넣어주는 남편. 이번에는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김가장 매혈기인가...라고는 할 수는 없지만 부인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왼팔을 내밀고자 하는구나!


스물 여섯 번째 헌혈에 살짝 스스로 고취되어 있는 남편을 독려하며, 철분 결핍으로 약을 복용 중인 만 42세 엄마인 나는 만 7세인 헌혈 불가자 동기 아들의 손을 잡고 마침! 근처에 있던 헌혈의 집을 방문한다. 가자, 그곳에 나눔과 보람과 단 것이 있을 지어다.


어쩐지 혼자 헌혈하는 건데 두 객식구를 붙여 들어가는 게 민망한 남편의 어깨를 다독이며 헌혈의 집 문을 여니 아늑하고 고요한 실내, 상냥하면서도 적당히 무심한 안내원, 그리고 저 앞 테이블에 반짝이는 초.코.파.이! 모든 것이 완벽해!


컴퓨터로 이러저러한 물음에 답변을 입력하고 상담실로 불려 들어가는 남편과 그를 따라가는 호기심꾸러기 아들에게 작게 굿바이 손을 흔들어 보인 후 어서, 급하지만 최대한 실수 없이 자연스럽게 집어 잡은 초코파이 하나. 봉투 끝을 야무지게 잡고 한쪽을 찢어내니 그 사이 퍼지는 달디 단 냄새. 커다랗게 한 입 베어 부스러기가 떨어지지 않게 야무지게 입을 오무려 다물고 입속 혀 전체로 눌러내는 초콜릿과 마시멜로우. 슬로우를 건 표현이지만 파이 한 개는 게 눈 감추듯 두 입에 꿀꺽, 잘도 넘어가네. 아빠를 헌혈 침대에 두고 나온 아이도 하나 뜯어서 암냠냠냠. 바닥에 떨어진 초코 부스러기를 치우며 하나 먹을까 말까 고뇌가 시작된다.


하나는 너무 맛있어, 그래서 두 개가 너무 간절해.

하지만 난 비헌혈자. 아들까지 벌써 두 개를 먹었다고!

남편의 피가 초코파이 세 개보다 훨씬 귀하잖아.

하지만 남편도 헌혈이 끝나면 파이를 먹어야겠지.


하는 사이 헌혈을 끝내고 온 남편의 한 손엔 도서상품권 5천원 권 두 장과 포카리스웨트 한 캔.

그리고 한껏 올라간 어깨와 초코파이를 향한 당당한 팔 뻗음.


그렇게 세 식구 초코파이를 먹고 아쉬움이 숨겨지지 않는 아이 것 하나를 내가 가방에 하나 더 챙기고 나왔는데.


이후로도 초코파이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난 그저 단 것이면 족했는데 초코파이 네가 왜 들어와서.

매주 우유를 사고 과일을 사듯 왜 초코파이는 선뜻 사지지 않는 것인가. 


전 세계적으로 한 해 20억 개 이상 팔린다는 기사를 마침 보는데 20억 개 중 하나도 내 담당이 아니었다니! 곧 마트로 튀어 나가려는 의지가 솟구치다가도,

자기관리로 유명한 한 여배우가 평생 초코파이 한 개를 한 번에 먹어본 적 없다는 기사가 발목을 잡는다.(왜?) 한 상자는 열두 개, 세 개까지는 아름답게 먹어도 네 개째부터는 부담스럽겠지. 아홉 개가 남았다는 걸 알고나서는 욕망이 50% 밖에 되지 않을 때도 그것을 먹게 될 게야, 아이도 달라고 하겠지, 아토피 증세가 심해질 수도 있어...


아이를 재워둔 밤 몰래 튀어 나가 사 올까, 장을 볼 때 당당히 너도 먹고 나도 먹고 모자 공범(?)으로 공표할까, 왜 이토록 나는 초코파이에 사로잡혀있는가.... 하다 이 주일이 지나고.


별거 아닌 것이 별 것이 되어 버린 이 상황의 끝은 역시 내가 지어야겠다 싶어

아이가 학원 간 사이 편의점으로 튀어간다.

한 상자의 부담스러움을 떨치면서 초코파이를 느낄 수 있는, 두 개들이 소량 공략.

어허, 그런데 투 플러스 원 일세.(앗싸)

마쉬멜로우가 지방 0%라고? 그럼 지구 한 바퀴는 안 돌아도 되는 것인가?

그렇게 초코파이 세 상자를 두 개 값에 품어 안고

즉시 한 상자 두 개 클리어.

그러고 나서야 물끄러미 봐지는 초코파이.

살짝 헌 것일까, 까진 것일까, 알싸한 입천장을 혀로 살펴보며

길게 점화하여 순간 화려히 불꽃 피운 초코파이를 향한 갈증을 떠올려본다.

남겨진 두 상자는, 아마도 아이의 간식 상자로 들어갈 듯.

그러고선 어느 날, 아이가 아끼고 아껴 먹으려 미뤄둔 초코파이가 혹시 남아 있다면

하나쯤 까만 밤 하나 몰래 쓱싹 먹고 혼자 씩 웃겠지, 그래, 이 맛이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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