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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턴작가 Dec 18. 2022

밑바닥까지 추락할 용기가 있나요? <바닐라 스카이>

<바닐라 스카이> (2001) 리뷰

※영화 <바닐라 스카이>의 내용을 담고 있을 수 있습니다.※


'루시드 드림'이라는 단어를 중학생 때 처음 접했다. 꿈속에서라면 자신이 상상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달콤한 말들에 이끌려 인터넷에 '루시드 드림 꾸는 법'을 열심히 검색하고 실제로 이를 시도했었다. 하지만 빨리 자각몽을 꾸고 싶다는 설렘에 집중력이 약해졌던 탓인지 힌번도 성공하지 못하였고, 그때마다 굉장히 아쉬워했던 기억이 있다. 왜 루시드 드림을 꾸고 싶어 했는지는 부끄러워서 말하지 못하지만, 한 번이라도 루시드 드림을 꾸고 싶어 했던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공통된 심리가 있다고는 말할 수 있다.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것들을 꿈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욕구'. 물론 꿈속에서 자신이 바라는 대로 모두 이루어진다면 행복할 것이다. 꿈에서 깨어나 눈을 뜨기 전까지는 말이다. 과연 이 행복을 진짜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Open your eyes."

눈을 뜨라는 여성의 짧은 대사와 함께 영화가 시작된다. 자신의 섹스파트너 쥴리 옆에서 졸린 눈을 부비며 잠에서 깬 유명 출판업계 회장의 아들인 주인공 '데이빗 에임즈'는 훌륭한 부모가 물려준 유산과 훤칠한 외모 덕에 남부러울 것 없는 인생을 줄곧 살아왔다. 작중 초반에 묘사되는 그의 여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괜스레 부러워질 정도로 그는 현실에서 신과 같은 존재이다. 제일 친한 친구를 포함해 모두가 자신의 비위를 맞춰주고, 출근도 원할 때 하며(회사에 얼굴을 비추면 다행인 수준), 섹스도 내가 원한다면 아무 때나 즐길 수 있는 신과 같은 존재. 


신과 같은 남자에게 인생은 그저 목적 없는 쾌락만 제공되는 게임에 불과한 듯하다. 그에게 주변 사람들은 그저 게임 속에서 주인공을 보조해주는 NPC와 같은 가벼운 존재들일뿐이다. 이런 가벼운 존재들 사이에서 등장한 '소피아'는 데이빗에게 말한다. '1분마다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와, 데이빗'. 자신과는 다른 방식으로 인생을 바라보는 소피아의 등장으로 데이빗의 삶은 완전히 달라진다. 데이빗이 소피아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자, 사실은 데이빗을 지독히도 사랑하고 있던 쥴리는 질투와 배신감을 견디지 못하고 데이빗과 함께 동반 자살을 기도한다. 이 사고 이후, 쥴리는 사망하고 데이빗은 목숨은 건졌지만 몰골이 흉측하게 변한다. 그는 처참하게 망가지고 비굴해졌고,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가기 시작한다. 결국 소피아 마저 잃고 현실을 견딜 수 없던 데이빗은 다시 한번 신이 되기로 결심한다.


영화 중반부 이후 데이빗에게 벌어진 꿈만 같았던 일들이 정말 루시드 드림 속에서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에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었고, 나 또한 달콤한 꿈을 꾸다가 그렇지 못한 현실로 돌아온 듯했다. 꿈속에서 행복할지라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자각할 땐, 비참함과 공허함이 배가 될 뿐이다.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자각한 데이빗에게 질문이 하나 주어진다.

"당신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는 대답한다. "꿈에서 깨어나 진짜 내 인생을 살고 싶어." 

영원히 꿈속에서 거짓된 행복을 누릴 것인가, 아니면 이상적이지 않은 현실이더라도 꿈에서 깨어나 진짜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 실존주의적 선택의 기로에 놓인 데이빗은 꿈에서 깨어나기로 결심한다. 데이빗이 냉동인간이 되어 루시드 드림을 꾸기 시작한 지 150년이 지났기에 그는 예전처럼 부자도 아니고, 소피아 또한 살아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결정이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이다. 신맛을 모른다면 단맛도 느낄 수 없기에.


데이빗은 고소공포증이 있는데, 공포에 대한 원인이 높은 곳이 아니라 바닥에 부딪힐 때의 아픔이라고 영화의 초반에 언급된다. 그런데 그는 꿈에서 깨어나기 위해  높은 빌딩에서 몸을 던지는 방식을 택한다. 이는 인생의 제일 높은 곳에 있던 데이빗이 밑바닥까지 곤두박질친 자신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생겼음을 의미한다. 그동안 너무 높은 곳에 있어 소중한 것들을 사소하게 여기고, 때문에 모든 것들이 비참해지고 나서야 그러지 않을 용기가 생긴 것이다. 

"Open your eyes."라는 대사와 함께 데이빗이 눈을 뜨면서 그의 멋진 자아 각성 여행은 끝이 난다.

<바닐라 스카이>가 sf장르였다는 것에 한번 놀랐고, 이것이 20년도 더 된 작품이라는 사실에 두 번 놀랐다.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연출에 너무나도 좋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여기에 기가 막히는 ost는 덤. 현실이 버거워 도망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이 작품을 꼭 추천하고 싶다. 그들에게 아마 2시간 15분에 걸친 멋진 자아 각성 여행이 될 것이다. 뾰족한 가시 같은 현실에 아파하며 눈을 감고 있다면, 계속 눈을 감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눈을 뜨고 인생의 신맛을 제대로 느낄 용기를 가질 것인가? 바닐라 색의 하늘 같은 것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소한 것들이 인생에 넘치고 넘친다. 이제, 눈을 뜨자.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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