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콕 중 통역사 Sep 17. 2021

새로운 장을 열다

혼란의 코로나 시대, 태국으로 가는 고생길

Isn't it nice to think that tomorrow is a new day with no mistakes in it yet?

"내일은 아직 실수를 하지 않은 새로운 날이라는 게 기쁘지 않나요?"


천방지축인 빨간 머리 앤이 마릴라 아주머니에게 한 말이다.

하루하루 의도치 않은 실수를 저지르던 앤은, 그래도 다음 날이 되면 모든 것을 만회할 수 있는 새로운 날이 온다는 것에 기뻤으리라.


딱 서른 중반, 앤처럼 천방지축도 아니고 크게 만회할 만한 잘못이 없는 나에게도 생각지 못한 새로운 날이, 아니 새로운 인생의 장이 찾아왔다.




남편의 발령은 다행히 급작스럽게 진행되지 않아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많았다.  

태국 방콕으로 해외 주재가 결정되었다는 얘기가 처음 나오고도,

몇 개월이나 지난 후에야 남편의 출국일자가 잡혔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된 딸과 내 비행기 표는  

정확히 남편이 태국으로 떠난 2개월 뒤로 끊어두었는데,

첫 한 달 동안은 다니던 직장을 잘 마무리하고

나머지 한 달은 바빠서 못 만났던 친구들과 친척들을 만나며 쉬다가 갈 생각이었다.


그런 나의 계획에 빠져있던 제일 큰 변수는 코로나 바이러스였다.

이 때는 막 한국에도 코로나가 퍼지기 시작한 2020년 1~2월이었는데,

처음 들어본 바이러스에 모두가 예민해 쉽게 만나자는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고,

결국에는 떠나온 마지막 순간까지 지인들의 얼굴을 보는 대신 전화와 메신저로 이별을 하였다.  


전 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예의 주시하는 당시,

태국 정부도 거의 매일 입국 절차를 바꾸며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보였다.

태국 현지 주재원들 사이에서도 별별 소문이 돌아,

[방콕에 도착하면 수완나품 국제공항이 아닌, 군사기지에서 내려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도 들려왔다.

 

방콕에서 날 기다리던 남편은, 이러다가 아주 오래 생이별을 할 것 같았는지

주변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일단 빨리 들어오라고 성화를 부렸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계획이 물거품이 된 상황에서, 나는 미련 없이 바로

한 달 앞당긴 3월의 첫째 주 금요일로 출국 날짜를 변경했다.


이미 배로 살림살이를 보낸 후였지만,

시어머님이 정성스럽게 만들어주신 배추김치와 마늘장아찌 등의 음식도 챙기고 보니

큰 캐리어만 6개였고, 제일 중요한 짐 더미(?) 딸아이까지 챙기며

출국 D-DAY 이른 오전 한국 도심공항 터미널에 도착하였다.


이때, 1차 날벼락이 있었는데,

나도 모르는 새에 당일 비행기가 취소되고 토요일 비행으로 표가 변경되어 있던 것이다.

중간에서 표를 끊어준 에이전시가 나한테 미처 전하지도 못할 만큼

급하게 변경되었거나, 아니면 하필 내 담당자가 신입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어쨌든 그날,

이 소식을 들은 남편은 나 대신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서 따져주었으나

그럼에도 불구 당연히 내 화는 풀리지 않았고,

심지어 누나가 출국하는 날이라고 휴가까지 내고 온 남동생까지 있어

난 허무함, 분노, 미안함이 겹친 이상한 얼굴을 하고 있던 게 기억이 난다.  


2차 날벼락은 전 날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바로 다음 날 생겼는데,

이번에는 비행기가 다행히 취소되지 않았다는 얘기에 안도하며 티켓팅을 할 때였다.

하루 만에 태국 정부가 모든 입국자에게 [코로나 증상이 보이지 않는다는 의사의 소견서]

추가하여 받기로 했다는 것이다.  

 

친절한 항공사 직원의 안내로, 짐 부치기를 잠시 멈추고

삼성역 주변 병원에 일일이 전화를 걸며 그런 소견서가 가능한지 물어보며,

동시에 눈에 보이는 병원 문을 모두 두드려가며 얼마나 뛰어다녔는지 모른다.


당시에 생소했던 소견서를 그 일대 모든 병원은 본 적도, 써본 적도 없다며 거절을 하였고,

마지막으로 뛰어 들어간 가까운 선별 진료소에서 사정사정을 하여 소견서를 겨우 받았을 때

난 아직 인천공항에 발을 딛지도 않은 상황이었는데 피로감에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그렇게 몸을 실은 비행기에서 난 녹초인 상태이지만 잠을 한 숨도 못 자는 경험을 했다.

심지어 내가 비행기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먹고, 자고를 반복할 수 있는 것인데 말이다.


'소문대로 군사기지에 내리게 되면 어떡하지?'

'군사기지에서 격리를 시키면 어떡하지?'

등등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무서움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 뒷 이야기는 정말 다행히도,

이변 없이 방콕의 수완나품 공항에 내려 무사히 짐을 찾고 남편을 만났다로 일단 끝이 난다.


그렇게 약 한 달 만에 남편을 만난 나는,

이제는 날벼락 없이 이 낯선 태국 땅에서 새로운 인생의 장을  시작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바보같이,

이번에도 또 나의, 아니 우리의 변수인 코로나 바이러스를 빼먹고 말이다.


 




철없는 나이의 빨간 머리 앤처럼 순진하게 새로운 시작을 마냥 기뻐만 할 수 없는, 

나이 서른다섯에 처음 밟아 본 태국 땅


그렇게 적어 내려가던 새로운 인생의 장에는

내가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코로나 시대의 도래라는 복병이 숨어 있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