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가 두려운 이유

블로그 얼리어답터에서 블린이로 다시 시작

by 캐롤

나는 블로그를 세 번 하다 접었다.


1번은 중학생 때. 네이버에서 처음 블로그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땐 블로그가 네이버에서 만든 이름인 줄 알았다.


학교와 부모님과 세상에 불만 가득하던 나는 당시 유저수가 상대적으로 카페보다 떨어지던 블로그를 시작하고 나름 포토샵으로 메인 스킨도 만들었다. 그래봤자 관심 있는 친구 얘기랑 일기랑 '신화 누구 어디 방송 나왔는데 너무 좋다 꺅 >_<'

이런... 쌉소리였는데, 온라인에서 다꾸하는 기분이라 마음에 들었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플랫폼이라는 것도 좋았다.


어느 날 복도에서 반 친구 J의 엄마를 만나 인사했더니 받아주시며 하는 말씀: "너 글을 참 재밌게 잘 쓰더구나~" 이게 대체 무슨 소리? 머리가 쭈뼛 선다는 느낌이 이런 건가. 집에 가니 엄마가 말한다. "너 인터넷에서 요즘 뭐 하니? J 엄마가 너 글 잘 쓴다던데?"


J는 내가 관심 있던 친구였다.
그날 바로 네이버 블로그를 폭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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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은 고등학생 때.


쪽팔려서 한국 뜬 건 아니고, 중학교 3학년 때 유학 가고 미국에서 하루하루 어떻게 지내는지 사진과 글로 엄마와 공유하고 싶어서 다음 블로그를 팠다.

정말 열심히 일기 썼다. 개고생 하며 육상 시즌 보낸 것, 숙제를 필기체로 해오라는 영어 선생님 때문에 죽겠다는 것, 과제 사진, 친구들과 놀러 간 사진... 10학년 전체의 기록이 거기 있었고 11학년에도 뜸하지만 유지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속으로 좀 멋있다고 생각한 선배 오빠에게 싸이월드 일촌신청을 받는다.

일촌 되더니 이 오빠 하는 말. "야 너 블로그 진짜 재밌던데?"

또 폭파엔딩. 내 일상 얘기를 아는 사람이 우연히 봤다는 게 그렇게 쪽팔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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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은 셀프 폭파는 아니고 이글루스 서비스 종료.

사람들이 많이 안 쓰기 때문에 네이버나 티스토리 대신 마이너한 이글루스로 갔는데, 결국 없어졌다.


최근 폴인의 아티클에서 '쇼코의 미소'로 알려진 최은영 작가는 "지인들이 제 글을 읽는 순간을 떠올리면 너무 부끄럽다. 물러서고 싶을 때면 '체면은 내려놓자' '용감하게 가자'는 식으로 마음을 다잡는다"라고 했는데 정말이지 크게 공감했다. 솔직히 대학생 때도, 직장인일 때도 글을 쓰고 싶은데 쓰기 싫었다. 누가 나인 것을 알아볼까 봐, 못 쓰는데 설친다고 할까 봐. 화려한 스펙의 인물들이 넘쳐나는 링크드인에서는 초라한 기분이었고, 브런치에서는 노잼글 제조기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직업 특성상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늘 어느 정도 평가를 받는 것이 익숙하다. 생각해 보면 내가 쓴 글까지 평가를 받는다는 공포가 기저에 있었던 것 같다. 글을 올리고 나면 반응을 확인하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오늘은 뭔가 써야지-라고 다짐하고 메모장에는 글감으로 쓰려고 적어놓은 키워드가 한가득인데도 현실은 일주일에 한 편도 못 쓰겠더라. 자괴감이 밀려왔다. 그런데 최은영 작가가 한 또 다른 말이 위로가 된다. "모든 걸 내려놓고 진짜 거지같이 써보자"라고 생각하신다고. "글은 나중에 고치면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독하게 못 쓰는 나를 견디는 거다."


그래서 오랜만에 글 다시 하나씩 써보기로 했다. 못쓰는 나를 견디는 것, 통역에도 정말 해당되는 말이다. 직업인 통역도 못할 때를 수용할 때가 있는데, 글쓰기를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체면은 내려놓고, 용감하게 가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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