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그럴듯한 결과물이 나와야한다는 강박을 못 이기고...
벌써 3월 23일이 되었다. 2월 중순 설 연휴때 연재를 하겠다며 질렀는데 한 달 넘게 절필했다. 메모장에도, 새해 들어 두 달 동안 꼬박꼬박 쓰던 일기도, 큐티도 모두 중단되었다. 나에게 무슨 변화가 있었던 걸까. 일단 살면서 해 본 게임이 열 손가락 안에 꼽는 내가, 남편의 은근한 유혹에 못 이겨 명절부터 게임을 시작했다. 아는 사람도 많이 없는 "옥토패스 트래블러"라는 RPG 게임이다. 남편이 하고 버린 1을 주워다 했는데 은근 레벨업 하면서 계속 힘세지는 캐릭터로 싸우는 게 재미있더라. 낮에는 통역, 쉬는시간에는 게임을 했다. 한 달 동안 플레이타임이 100시간이 넘었다(못하니까 시간이 오래 걸리는 관계로...).
그 사이에 미국은 이란을 기습 공격해 수뇌부를 사살했고, 전쟁이 시작됐다. 전쟁 전에 차에 주유를 가득 해두어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다행히 전쟁이 발발하고도 한동안 남아있는 기름으로 잘 다녔다. 원래 잔여주행가능거리가 100km 미만으로 떨어지면 주유하러 가곤 하는데, 이번에는 10km 남짓 남을 때까지 버티고 버티다 갔다. ㄷㄷ... 등원 시키고 근처 원래부터 저렴하기로 지역에서 유명한 주유소를 일부러 찾아갔는데 내 앞에서 계속 천천히 가던 G바겐도 그 주유소에 들어가더라. G바겐도 저렴이 찾아가는데 난 당연히 아껴야지!
절필하고 게임 세계에 잠깐 빠져 보니, 왜 히키코모리들이 게임을 하는지는 알겠더라. 일단 뉴스랑 유튜브를 덜 본다. 그러다 보니 코스피가 6천을 넘어 7천까지 질주해도 벼락 거지가 된 기분을 덜 느낀다. 삼전 5만원대일때 손절 말고 오히려 더 살걸(그때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지금 XX 지역 눈여겨보지 않으면 집 못 산다'는 빨간색 이탤릭체의 자극적인 유튜브 썸네일을 보고 한숨 쉴 필요가 없디. 그저 충실히 게임 속 캐릭터를 육성만 했다. 가끔 공략을 봐야 하면, 구글링만 했다. 유튜브 알고리즘 교란될까봐...ㅋㅋㅋ
세계가 한층 더 혼란해진 사이, WBC가 개막했고, 조별예선에서 한국은 버려야 한다는 일본전에서 오히려 선전하고(그래도 졌지만) 대만전은 연장까지 끌려가다 졌다. "특정 스코어로" 이겨야 하는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 시작한 호주전을 이기고 마이애미 기분좋게 갔다가 도미니카에 10:0 콜드패로 THE END. 그동안 야구의 인기에 너무 도취되어있던 것은 아닌지. 개인적으로 KBO의 수준은 ABL 정도라고 본다. 일본도 대만도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데 시범경기를 보면 투수력이 안습이라 한숨만 나온다.
얼마 전 대학 친구들하고 거의 7년만에 3자 회동 하고 오랜만에 너무나 재미있는 금요일 밤을 불태웠는데, 애들이 링크드인 글 좋다고 해서 너무 부끄러웠다. 사실 경력에 큰 자신이 없어서 링크드인에 글을 쓰는 게 언제부턴가 쭈글해졌다. 속으로 "이런 글도 좋아요가 몇십개씩 달리네?"라고 평가질한 글들도 있었는데, 내 글은 거의 알고리즘의 수혜를 받지 못하는 것 같았다. 재미가 없으니까 그렇겠지. 아, 그래 난 재미 없는 글을 쓰는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하다 보니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이라도 있었던 1-2월과 달리 3월에는 글을 쓸 동력을 잃어버린 것 같다. 사실 유튜브 출연 제안이나 이력서를 보낸 에이전시에서 추가 질의를 받은 적도 있어서 그런 것들에 응답하는 에너지도 썼다. 유튜브 출연은 브런치 통해서 제안 받았는데, 너무나 좋아서 선뜻 회신했지만 그 회신이 작가 본인의 이메일이 아니라 브런치에 해 버린 회신이 되어서... 회신을 기다리다 4-5일 지나서 내가 이메일을 잘못 보냈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답을 보냈지만, 끝내 연락은 오지 않았다. 인연이 아니었던 거겠지. 잠깐 굉장히 들떴었는데 결국 그렇게 됐다.
그 와중에 지난 한 달 동안 내 브런치를 구독해주시는 분이 8명으로 늘어서 조금 충격 받았다... 마지막 글에서 "제발 구독해주세요" 라고 한 게 누군데... 정말 구독까지 해주신다고요? 마음 깊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한일전을 목전에 두고 한화생명에서 운영하는 LIFEPLUS 채널에서 김태균이 세이버매트릭스 전문가와 함께 출연해서 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대충 기억나는 대로 써 본다: "불펜에서 피칭하는 투수들 보면 공이 정말 말도 안되게 좋다. 어떻게 저런 공이 있을까 싶은데 마운드에 올라가면 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투수들이 많다. 멘탈 때문이다. 안타 맞으면 어쩌지, 홈런 맞으면 어쩌지, 주저하고 불안한 심리가 반영되는 것" 바로 내가 왜 통역에 늘상 자신이 없었는지도 깨닫는 말이었달까. 혼자 할 때? 남을 가르칠 때? 스터디 할 때? 괜찮다. 실전에서? 흔들린다. 프로 선수의 자질에는 멘탈도 있다. 생각해보면 불펜에서의 공은 포수가 받아만 줄 뿐이다. 타자가 없다. 홈런 한 방 치려고 바짝 벼르고 방망이를 살살 돌리며 입맛 다시는 타자가 없다. 그런 느낌으로 마운드에서도 던질수만 있다면 좋을텐데. 내 통역 아무도 안들어! 라고 생각하면 더 잘 할 수 있으려나. 내 글 어차피 아무도 안 읽어! 라고 생각하면 글쓰기 마구마구 할 수 있으려나. 통역과 야구는 정말 비슷한 점이 많다. 3월 23일, 월간 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