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사 강제 독립일기 1

절대 프리랜서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by 캐롤

나는 비자발적 프리랜서다. 이것이 언제 자발적 프리랜서로 내 마음속에서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아직은 비자발적 프리랜서다. 당장 다음 달 수입이 어디서 올 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프리랜서 통역사로 모 회사에 용역을 제공하고는 있지만 회사 다닐 때 받았던 대출, 가입했던 보험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신혼부부 혜택이 종료되면서 금리도 인상되었다. 소득이 줄었는데 전반적인 고정비는 직장인이던 시절보다 늘었다.


지금 버는 수준의 두 배 정도 수입을 6개월 연속으로 달성하면 그때는 나도 프리랜서의 삶이 지속가능하다고 믿게 될까? 지금 나의 수입은 회사를 다니던 시절 월급의 절반 정도다. 절대적으로 일하는 시간과 강도를 비교하면 지금이 훨씬 좋다. 시간의 자유도 있고, 남편이 야근하거나 아이가 아프다고 마음이 덜컥 내려앉을 필요도 없다. 내가 집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우리 가족 전체의 삶의 질도 올라갔다. 아이는 친구들이 다 집에 가는 시간대에 적당히 하원하고, 가끔 키즈카페를 가거나 쇼핑을 하러 가기도 했다.


사실 직전 회사를 나는 오래 다닐 줄 알았다. 정말 간절하게 입사하기도 했고, 전환이 거의 전제되어 있는 자리였기 때문에 입사 과정도 정말 절차가 복잡했다. 다니면서 마음 한편에 설마 하는 불안함 20% 정도는 있었지만 그래도 전환될 거라고 거의 믿고 있었다. 아니면 연장이라도 할 줄 알았다. 그러던 회사에서 1년 만에 짐을 쌀 줄은 몰랐다. 거기서 1년 있는 동안 지난 5년간 경험해보지 못한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일은 열심히 했지만 관계가 어려웠다. 일도 할 만한 것이 있었는가 하면 너무 어려워서 울고 싶은 적도 있었다. 멘토링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헛된 기대였다. 그래서 계약 종료 통보를 받았을 때 허무감이 크게 밀려왔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그때 팀장님께 면담을 요청하지 않았더라면 달랐을까? 내가 그때 통역을 잘 못해서 그랬을까? 이렇게 나오려고 나는 전 회사 사람들에게 굽신거리며 레퍼런스를 부탁했던가? 취업 턱을 냈던가? 2-3일 만에 회사에서 나오는 쿠폰을 주변 동료들에게 미련 없이 나눠주고 명함을 모두 파쇄했다. 가장 스스로 비참하다고 느꼈을 때는 짐을 정리할 때. 가져다 놓은 짐이 왜 이렇게 많았던 건지. 통역 노트며 펜은 물론이고 노트북 거치대, 핸드폰 거치대, 거울, 비상용 옷, 가방 거치대 등등...... 나갈 때 잔뜩 들고나가기 싫어서 점심시간에 엄마 차에 미리 실었다. 그렇게 나의 짧은 회사 생활은 끝이 났다. 동시에 나를 짓누르던 일에 대한 압박감, 긴장감도 사라졌다. 이제 그 회사가 솔루션 영업에 성공하든, 못 하든 내 알 바가 아니었다. 매출이 늘든 줄든, 카드 혜택을 줄이든 말든.


이상하게 회사를 나왔는데, 그 회사에서 롱런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이나 서운함은 들지 않았다. 아마 한순간에 면직되는 임원들을 너무 많이 봐서일지도 모른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인사 발령이 수시로 있는 회사여서 매주 내부 포털에 새로 올라오는 인사명령을 보며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저성과 임원은 가차 없이 면직되고, 부서장이 팀장으로 내려가는 경우도 흔했다. 웃자고 하는 라떼 이야기들은 내가 듣기엔 괴담에 가까웠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청춘을 모두 바쳐서, 가족과 시간은 뒤로 젖혀 두고 밤낮없이 일만 하며 어찌 저찌 상무, 전무까지 올라가도 퇴사하면 그냥 동네 아저씨라는 거였다. 상무님은 불면증과 소화 불량, 두통에 항상 시달리셨다. 20년, 30년을 회사에 열심히 돈 벌어다 주며 지내다 어느 날 소리 없이 밀려난다는 그 흔한 이야기를, 너무 흔해서 무덤덤하게 듣고 지나갔던 이야기들을, 그저 나의 부모님은 정년과 연금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직장에 평생 다니셨다는 이유로 관심도 가지지 않았었다. 1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회사를 다니며 대기업에 합격했다는 자부심과 높은 연봉을 받는다는 뿌듯함은 증발하고 고민이 깊어졌다. 회사 이름이 아니고서는 나라는 사람을 설명할 수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허무하던지. 회사 없이 내 이름으로 돈을 버는 능력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닥치는 대로 크몽과 숨고에 계정을 생성하고, 이력서를 뿌렸다. 링크드인 프로필도 새로 만들고, 명함도 스스로 디자인해서 주문했다. 프로필 사진도 난생처음 찍었다. 그제야 독립해서 자기 이름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크몽, 숨고에서 염가에 통역을 제공하겠다는 수많은 사람들... 사진을 찍어주시는 작가님, 메이크업 샵의 대표님... 언제쯤 나는 이 사람들처럼 당당하게 자기 이름으로 독립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를 안타깝게 생각하고 일을 소개해 준 동기들 덕분에 나는 아직까지 살아 있다. 생업을 위해 일하느라 시간 관리를 잘 못할 때도 있지만, 글도 가끔 쓴다. 더 자주 써야 하는데 라는 부담을 느낄 때마다 역설적으로 더욱 글을 못 쓰고 브런치를 멀리하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그래서 조언받은 대로 강제 독립일기를 연재하기로 했다. 어차피 돈은 많이 못 버는 대신 시간이 남는다면, 글이라도 남겨야 하지 않는가. 내가 왜 유학을 갔는지, 허접한 영어실력을 어떻게 A/S 해서 통대까지 갔는지, 왜 야구를 볼 때마다 통역사와 야구 선수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더 몰입하게 되는지... 뭔가 계속 써보면 글이라도 남겠지. 매주 금요일 강제 독립일기 연재를 나와 약속해 본다. 많지는 않지만 이 글을 읽어 주시는 분들께도, like를 눌러주시는 분들께도 깊이 감사드린다. 구독도 부탁드려요! 제발~

작가의 이전글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가 된다는 것의 고단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