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가 된다는 것의 고단함

그 원료는 허무하게도 꾸준함이 아닐까

by 캐롤

지난주 폴인의 아티클 중에서는 잔나비의 앨범 아트로 알려진 콰야 작가의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다. 콰야 작가는 하고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 사이에서의 간극을 느끼고 결국 자기가 원하는 아트를 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둔다. 다행히 9년째 연명중이라고 스스로 표현했지만, 그 비결은 꾸준함 같았다. 매일 하나씩 그림을 그리고 업로드를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고 한다. 역시 다들 부지런하다.


소비는 사실 정말 쉽다. 원하는 것을 바로 바로 찾아서 구입하는 즐거움도 크지만,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려주는 콘텐츠를 볼 때의 흥분도 분명히 크다. 사실 이 부분은 좀 민감하게 알아차려야 하는 것 같은데, 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콘텐츠를 열심히 보면서 다짐을 하지만, 결국 실천으로 옮기지는 않은 채 하루 이틀이 또 흐르고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은 사람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난 콰야 작가가 "영감 모으기는 그만두었다"고 표현한 부분이 눈에 띄었다. 끊임없이 레퍼런스를 보고 수집하면서 내가 존재하는 모든 트렌드와 동향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심리가 무엇인지 너무 이해가 되었다. 그는 영감 파악과 수집에 열을 올렸던 그 시절을 회고하면서 "결핍 때문"이었던 것 같다고 한다. 남보다 학력도 경험도 실력도 부족한 것 같으니, 계속해서 채워 넣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사실 나도 그런 결핍이 있다. 통대 다닐 때, 꽤 유명하신 교수님이었는데, 나같이 영문학 전공하고 통대 온 녀석들이 가장 업계에서 쓸모가 없다고 하셨다. 보통 전문 통역사의 수요는 산업계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금융, 제조업, 테크... 그 분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거시경제니 화공학이니... 학문을 최소 학부에서라도 전공한 친구들과 나는 말귀를 이해하는 수준부터 차이가 났다. 그래서 회사에 취직하고 조금 여유 있을 때마다 미친듯이 다트 보고, 연차보고서 읽어보고, 한국은행 홈페이지 들어가서 온갖 자료를 다 읽어보곤 했다. 조금이라도 더 알아놓아야 할 것 같아서. 불안해서.


그렇지만 정신없이 인풋을 집어넣는 동안 "메타인지"를 계발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솔직히 그 때 오타니가 학생 때 했다는 만다라트를 알았더라면?

오타니 만다라트.png 오타니가 고등학생 때 작성했다는 만다라트 계획표
오타니 만다라트 번역.jpg


콰야 작가가 말한 대로 레퍼런스를 찾고 창작의 영감을 구하는 것은 지름길, 그러나 내 안에서 길어올리는 것은 더디고 지난한 일이다. 솔직히 나에게도 자문해본다. "정말 아직도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 맞아?"

맞다고 고개는 끄덕이지만, 왜 열심히 꾸준히 하지 못하냐는 반문에는 할 말이 없다.

게으르고 열정이 부족한 것 아닐까.

솔직히 나는 부끄러웠다. 내가 통역사로 일하면서 얻는 수입은 안정적일지 몰라도, 내가 글쓰기로는 전혀 수입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 당분간 사실일 것이다. 그러는 사이 나의 하루는 나도 모르게 "수익을 창출하는 시간" 중심으로 우선순위가 조정되어 있었다. 아침에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 등원을 시키면 집에 돌아와 책상 앞에 앉고 바로 그날 배정된 회의 통역을 시작한다. 중간에 비는 시간에는 다음 통역을 준비하는 공부를 하고, 점심을 챙겨 먹는다. 그렇게 하루에 2-3건 정도 통역을 하면 다시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 시간이 된다. 아이 간식과 저녁을 챙겨 주고, 뒷정리를 하고, 아이를 씻기고, 재우고 나면 비로소 기다리던 육퇴시간인데. 나는 너무 쉬고 싶은 것이다. 솔직히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멍하니 콘텐츠만 소비하다가 잠에 들고 싶다. 그러니 글을 쓸 수가 있냐고.


더 솔직히 말하자면,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이 두려웠다. 꾸준함으로 어마어마한 양의 글을 계속해서 쓰시는 분들도 있고, 구독자가 몇천에 이르는 엄청난 파워 작가들도 많고, 멤버십 작가가 되어 수익을 창출하시는 분들도 많은 이 곳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뭘 해야 개성과 시장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다다르니 머리가 지끈거리면서 한동안 이 문제를 외면하고 있었다. 나는 그냥... 남들처럼 글 쓸 자신이 없었다. 쓰레드에서는 자기가 얼마만에 출간 작가가 됐다는 사람들 천지였다. 나는 그냥 통역만 근근히 하다가 결국 글을 한 자도 안 쓴 채로 넘어가는 하루가 많아지면서 더 불안해졌다. 나는 작가가 되기엔 너무 게으르고 자존감이 없어-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그럼에도 나를 챙기면서, 나를 지속하면서 믿는 수밖에.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는 영감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정보를 줄 수 있다고 믿어 볼 수밖에.


그래도 낙관적인 사실 하나 있다. 몰스킨에 매일 일기를 꾸준히 쓰고 있다. 인터넷에 업로드하지는 않지만, 누가 보지 않는다고 해서 아예 아무것도 안 쓰는 것은 아니라는 것. 글 마무리할 때 생각이 나다니, 나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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