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사람들 네 번째]
[인도사람들 네 번째] Imtiaz Ali (Delhi, Samsung Electronics deputy general manager)
한국 여자와 결혼한 인도 남자라니. 델리에서 알리 씨와 아내인 수경 씨를 만나러 가기 전, 이 젊은 부부의 그림이 도저히 머릿속에 그려지질 않았다. 사람과 사람이 사랑해서 만나는 데에 국적이 무슨 상관이 있겠냐 만은 그래도 한국과 인도, 흔치 않은 조합이다. 이들이 어린 두 딸 지아, 아라와 살고 있다는 집에 발을 들였을 때는 왠지 모를 혼란스러움까지 가중됐다. 맞벌이를 하는 부부는 아직 퇴근하기 전이여서 보모가 나를 맞이했는데, 저 방 한 켠 문이 살짝 열린 틈 사이로 무슬림 의식이 진행되는 게 보였던 것이다. 알고 보니 알리 씨 집안은 이슬람교를 믿는데, 함께 사는 알리 씨의 부모님은 평소대로 저녁 식사 전 종교의식을 하신 거였다. 순간 숨이 턱 막혔다. 같은 여자로서, 문득 수경 씨가 인도의 엄격한 무슬림 집안에서 시집살이를 하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돼서 그런 걸까.
얼마 지나지 않아 수경 씨와 알리 씨가 집에 차례로 나타났고 가족 구성원 모두에 나까지 끼어든 정신없는 저녁식사가 시작되었다. 수경 씨는 한국음식을, 알리 씨는 인도식 탈리를, 그리고 부모님은 이슬람식 할랄 음식을 먹고 어린아이들은 각각 이유식과 피자를 먹었다. 모두가 식탁의 한 자리씩 차지한 채로 각자 다른 음식을 치열하게 먹는 가운데에서, 나는 홀로 불편했다. 각각 너무도 다른 음식들이 서로 조금도 양보하지 않은 채 팽팽하게 경쟁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종교적 관습이 짙은 엄한 가정에 합류한 ‘자기표현 잘하는 한국 며느리’라니. 이렇게 식사를 하게 되기까지 쉽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 긴장한 것 같았던 저녁식사가 끝나자마자 알리 씨와의 인터뷰를 시작했다. 나는 그제야 이 부부의 범상치 않은 이야기가 kbs 다큐 <인간극장>에 두 차례나 소개되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괜히 해인 씨 만의 인터뷰를 방해하게 될 까 봐 일부러 미리 말을 하지 않았어요.” 이 부부, 시작부터 단단한 내공이 느껴졌다.
해인 : 카이스트에서 생물학으로 박사과정을 했다고 들었다. 한국에서 유학을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알리 : IIT(인도공과대학, Indian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석사까지 공부를 마치고 나서 하버드 연구실의 입학 제안을 받았다. 학비와 체류비까지 다 지원해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조건이 있었다. 연구실 담당교수가 인도인이었는데 나보고 자기 딸과 정략결혼을 하라는 거였다. 나는 조건과 내 인생을 맞바꾸기 싫어서 제안을 거절했다. 물론 그 일로 우리 아버지는 내게 많이 실망하셨지만, 나는 다른 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이후 어느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할지 계속 찾다가 카이스트에서 내게 모든 비용을 다 지원해준다고 해서 한국행을 결심하게 되었다.
해인 : 외국인 유학생으로서 한국에서 거주하며 느낀 어려움이 있었나.
알리 : 많았다. 그중 언어문제가 가장 컸다. 내가 처음 한국에 갔을 당시는(2004년도) 한국에서 영어가 많이 안 통했다. 나는 한국어를 아예 못했고. 가자마자 연구실 생활을 해야 했는데 그 안에서 배우고 의사소통하는 것들이 다 한국어로 진행됐다. 그래서 처음엔 한국어가 그렇게 싫더라. 한국어를 즐기면서 배우기 시작한 건, 순전히 지금 처남과 좋은 친구가 되고 싶어서였다.
해인 : 처남이라면 지금 아내 분의 오빠라는 건가.
알리 : 맞다. 처남을 통해서 아내를 처음 만났다. 사람 때문에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거다. 좋은 사람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같은 이유로 한국 문화도 열심히 배우기 시작했다. 친구를 만나고 문화원을 다니면서, 예를 들면 왜 젓가락을 쓰는지에 대한 과학적인 이유 같은 것 까지도 자세하게 다 배웠다. 반대로 인도에 대해서 한국인들에게 알려주는 일도 했었다. 인도에 대해 고정화된 이미지를 깨 주고 싶었다.
해인 : 예를 들어 인도는 영적인 게 다가 아니라는 것?
알리 : 맞다. 인도는 엄청난 다양성을 가진 나라거든. 방금 저녁 먹을 때 우리 집 식탁만 봐도 그렇지 않았나. 한식, 힌두, 그리고 이슬람 음식이 다 함께 밥상에 올라갔다. 이렇게 많은 문화가 혼재되어 있고 공존하는 나라가 인도인데 우리나라에 대한 이미지가 인도 여행을 다녀온 한국 사람들에게 꽤나 한정되어 있다는 걸 느꼈다. 인도를 다른 관점에서도 볼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해인 : 나도 동감한다. 여행이나 다른 이유로 인도를 먼저 다녀온 사람들을 통해 한국인에게 각인된 인도의 이미지는 한쪽으로만 치우쳐 있는 게 사실이고 그러한 한계는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알리 씨는 한국과 인도 양쪽에서 생활을 오래 했으니 본인이 꽤나 균형 잡힌 시각으로 두 나라를 비교하고 있을 것 같다. 한국과 인도에서 각각 얼마나 일했나.
알리 : 박사과정을 끝내고 나서 4년 동안은 한국에 있었다. LG생명과학에서 2년, 삼성 메디슨에서 2년. 그리고 2014년에 인도로 돌아와 곧바로 삼성전자에 입사, 지금 벌써 3년 차다. 같은 삼성이라도, 한국과 인도의 회사 분위기는 엄청 다르다. 내 입장에선 두 나라에서의 경험이 계속 비교가 될 수밖에 없다. 다른 걸 발견하는 과정이 흥미롭기도 하고.
해인 : 일할 때 두 나라의 어떤 점이 가장 다르다고 느끼나. 한국 사회와 비교했을 때 인도 사회의 경쟁력이 본인에게 어떻게 다가오는 지도 궁금하다.
알리 : 경쟁력.. 글쎄, 그건 두 나라가 다른 거니까. 그럼 내가 느끼는 차이를 공평하게 얘기해 보겠다. 한국 회사에서 일할 때는 의사소통이 비교적 간단히 이뤄진다. 누가 “이거 하자”고 하면 다른 사람도 다 그걸 그대로 알아듣는 편이다. 한국어라는 단일한 언어와 공통된 문화라는 게 있으니까. 하지만 인도에서 누가 “이거 하자”고 하려면 우선 열 개 이상의 언어로 전달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언어로 끝나는 게 아니다. 각자가 가진 출신 지역, 종교, 계급에 따른 문화가 다 다르기 때문에 결국 어떤 제안이 제대로 전달되기 위해선 개개인에 맞는 전달 방법이 필요하다.
해인 : 그래서 거리에서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싸우는 건가. 인도 여행 중에 말다툼이나 몸싸움을 참 많이 봤다.
알리 : 하하. 거리에서 싸우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지금 인도는 사회경제적 발전을 겪는 과정에 있다. 아마도 대략 30년 전 한국이 이미 겪었을 상황이다. 물가나 부동산 가격은 치솟고, 그걸 뒤에서 쥐고 있는 거리의 깡패들은 많은 걸 선점하려고 하고. 거리에서 그런 풍경이 연출되는 건 이런 이유다. 어쨌든, 다시 일하는 방식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인도 회사에서는 의사소통부터가 한국보다 훨씬 복잡하게 이뤄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 가지를 진행하려면 정말 많은 힘이 필요한 거다. 인도는 마치 큰 코끼리 같다. 처음에 움직이게 하기는 어렵지만, 한번 움직이면 멈추기도 힘들다.
해인 : 지금까지 알리 씨의 얘기만 들어보면 한국 기업에서는 마치 일이 착착 진행될 것만 같다. 그렇지도 않을 것 같은데. 또 비교해 볼 만한 지점은 없나.
알리 : 한국에서 일할 때는 구성원들이 틀을 벗어나는 생각을 내는 데 한계가 있다고 느꼈던 적이 많다. 인도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너무나 다른 만큼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더 많이 나오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인도인들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잘 나가는 기업들의 CEO 자리에 많이 포진해 있는 것 같다. 경계 너머의 것들을 생각하고(think beyond box), 독창적인 의견을 내는 게 한국보다 확실히 더 많다. 같은 삼성이라도(웃음).
해인 : 창의적이지만 주장이 강한 각자의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오는 만큼, 다른 사람의 의견에 대해서도 배척하지 않는 게 중요할 것 같은데.. 인도 사람들, 다른 사람 의견에 귀를 잘 기울이는 편 인가.
알리 : 좋은 지적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태도가 인도 사회에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인도인들은 회의에서도 서로의 말을 잘 안 듣는다. 회의실에 모여 앉아있으면 자기의 생각을 공유하는 과정까지만 일단 진행이 된다. 그래도 팀장 입장에서 창의적인 생각들(out of box)이 많이 나오는 게 어딘가. 그럼 거기서 하나를 고르면 된다. 상사가 하나씩 들어보고 가장 뛰어난 아이디어를 가려낸다. 나도 내 팀원들과 그런 식으로 일한다. 내 가치관은 가장 훌륭한 아이디어 하나가 결국엔 중요하다는 거다. (one best idea is important)
해인 : 알리 씨는 리더 한 명의 역할을 굉장히 중요하게 보는 것 같다.
알리 : 맞다. 인도에선 다 자기가 낸 게 가장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는 게 너무 강하기 때문에 하나를 결정하는 게 굉장히 어렵다. 그래서 더 좋은 리더가 필요하고, 리더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해인 : 만약 한국사람들이 인도인들과 같이 일을 할 일이 생긴다면 꼭 알아두어야 할 게 있을까.
알리 : 한국인들 간에 의사소통을 할 때 상황에 따른 매뉴얼이 어느 정도 있는 편이라면 인도인들에게 매뉴얼이란 없다. 그래서 인도에서 사업을 하거나 회사를 다니게 된다면 어쩔 수 없이 처음에는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직접 인도인들과 부딪히며 경험을 쌓고 본인만의 감을 익혀야 한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사람들이 함께 일을 할 때에는 모두가 그 프로젝트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지만 인도인들은 각자가 그 목표 안에서 우선적으로 집중하고자 하는 작은 목표들을 먼저 정한다. 그래서 관리자가 경험이 없으면 이런 상황을 능숙하게 조율하기가 불가능하고 결국에는 좌절을 맛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게 내가 얘기한 거였어?’ 이렇게 되는 거지.
해인 : 인도는 정말 알 수가 없는 나라다. 감 조차 오질 않는다.
알리 : 고작 몇 달의 여행으로는 당연히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는 나라다. 그래서 내가 항상 인도의 어떤 한 면을 보고 매혹돼 인도에 짧게 정착해보려는 외국인들에게 최소한 일 년은 살아보라고 권유한다. 그때가 되어서야 진짜 일들이 일어나고 보이기 시작하거든. 쉽게 말해 연인이었다가 배우자가 되는 과정을 생각하면 된다. 처음에 연애할 때는 그 사람의 모습이 다 좋게 보인다. 그러다 배우자가 되면, 서서히 숨겨져 있던 모습이 드러나고, 상대방의 다른 면을 보게 되는 거다.
해인 : 짧게 보고 좋은 그 모습을 영원히 간직하는 것도 괜찮지 않나.
알리 :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무언가의 좋은 모습만 봤다는 건 좋지 않은 모습을 외면한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나를 무조건 좋아해 주는 사람보다 오히려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차라리 더 좋아한다. 싫어하는 감정은 진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이 나를 향해 진실된 감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싫어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천천히 시간을 들여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해인 : 현 모디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나.
알리 : 대체로는 모디를 지지하고 있는 편이다.
해인 : 모디가 어릴 때부터 기차와 거리에서 짜이를 팔며 밑바닥부터 올라와 총리가 된 정치인인데, 혹시 빈민 출신이 인도 사회를 뼛속 깊이 더 잘 이해하고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인가.
알리 : 사실 그런 스토리는 잘 믿지 않고 관심도 없다. 그 때문은 아니다. 모디의 리더십이 마음에 든다. 하지만 모디 정부가 다 잘하고 있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해인 : 다 잘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예를 들어 화폐개혁(demonetization) 말하는 건가?
알리 : 그렇다. 음지의 돈을 드러나게 하겠다는 아이디어 자체는 아주 좋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행방식은 좋지 못했다. 급하게 시행하는 바람에 평범한 사람들이 피해를 많이 입었다.
해인 : 한국은 결혼, 출산, 육아의 과정이 현실적으로 만만치 않아 아예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알리 씨와 수경 씨는 가정을 이룬 부부로서 꿈꾸는 라이프 스타일이 있나. 그리고 그걸 실현하는 데 있어 가장 큰 현실적인 어려움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알리 : 나는 내 자식들을 통해 나 자신을 다시 되돌아보고 싶다. 아이들이 실패하면 나도 실패하는 것이라는 마음으로 양육을 하고 있다.
해인 : 알리 씨가 살아온 인생을 아이들을 통해 시험한다는 건가.
알리 : 맞다. 내가 낳은 아이들을 단순히 사랑으로 기르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양육은 우리 부부만의 장기적인 투자다.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부모인 우리에게 보상을 해주길 바란다는 얘기가 아니다. 나와 아내의 가치관을 믿고 키우는 또 다른 도전 같은 것이다.
해인 :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아이들을 교육하나.
알리 : 우리 부부는 각자 전 세계에서 교육열이라면 둘째 가라면 서러울 한국인과 인도인이지만, 남들처럼 아이들을 앉혀 놓고 무슨 공부를 해라 라는 식의 일방적인 강요에는 결단코 반대한다. 아이들의 비판적인 사고를 길러주고 싶어 늘 아이들에게 반문한다. 마찬가지로 아이들도 많이 생각하고 부모에게 다시 질문을 해주기를 바란다.
해인 : 혹시 어려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알리 : 앞으로 어디서 살지는 모르지만 지금 현재는 인도에 살고 있다. 앞으로 제도가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자주 변하는 교육제도나 사회환경에 우리 부부는 흔들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다지 상관하지 않는 편이다. 그게 우리 가족의 생존 방식이랄까? 한 제도나 사회를 무조건 신봉하거나 그 틀에 갇혀있고 싶지 않다. 어디에서나 유연할 수 있는 우리 가족 이길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