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실 바르기즈

[인도사람들 세번째 上]

by 까보뽈로니오

[인도사람들 세번째 上] Susheel Varghese(19, Mumbai, studying sociology and english)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끈 인도 영화 <세얼간이>의 주연 배우인 아미르 칸은 인도 젊은이들이 미래를 향한 갈림길에서 자유로운 선택을 하지 못한다는 점을 안타까워하며 영화에 출연했다고 한다. 우리가 인도 여행을 하며 만난 대다의 젊은이들은 여전히 <세얼간이> 속 학생들처럼 경직되어 있었다. 학업의 방향, 직업적 진로, 결혼 상대와 같은 삶의 핵심 요소들이 가족의 경제적 빈부, 종교적 신념, 가부장적 분위기에 거미줄처럼 휘감겨 있었다. 기로에 놓인 젊은이들은 슬퍼하며 숙명처럼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거나, 혹은 그들에게 삶은 당연히 그런 것이기에 그 모든 것들에 물음표를 찍지 못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우리가 만난 케랄라 출신의 수실은 특별한 친구였다. 올해 뭄바이의 한 대학에 갓 입학한 수실에게, 부모님은 단 한 번도 선택을 강요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목사인 아버지는 그저 수실에게 ‘모든 선택은 너 스스로가 하는 것이다.’라며 격려하고, 잠들기 전 수실의 베갯잇에서 세계의 역사이야기를 들려주신 것이 전부였다.


용우, 해인 – 아버지는 목사이시고, 어머니는 보팔에 있는 한 대학의 언론학부 교수시고. 아버지 따라서 3년은 뉴욕에서 학교 생활을 하기도 했고. 우리가 봤을 땐 인도에서 너의 배경이 꽤나 특별한 것 같아.
수실 – 맞아(웃음). 좀 특이해. 심지어 뉴욕에서 돌아왔을 땐 내 고향 케랄라가 아닌 보팔에서 고등학교를 다녀야 해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어. 이전에 케랄라에 있을 때는 말리얄람어만 사용했었기 때문에 나는 보팔에서 사용하는 힌디어를 하나도 몰랐거든. 힌디어가 익숙해질 때까지는 친구가 많이 없었지. 같은 반 친구들과도 한동안 어색하게 영어로 대화를 해야 했어.


용우, 해인 – 그렇구나. 인도 사회에서 소수교인 기독교도로서 겪는 어려움은 없어? 차별 같은 거 말이야.
수실 – 사실 인도에서 발생하는 종교 갈등(주로 힌두교와 이슬람)은 대부분 극단주의자들 사이에서 나타났던 거고, 일반적인 사람들 사이에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 무슬림 친구나 힌두교도 친구도 서로 집을 방문하면서 각자의 종교적인 의식을 구경하기도 하는걸. 이런 건 문화가 교류된다는 차원에서 오히려 긍정적인 거지. 그리고 사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종교를 진지하게 믿지 않는 경우가 정말 많아. 공식적으로는 다 집안부터 내려온 종교가 있지만, 자신들은 믿지 않는 거야. 집안 어른들 앞에서는 믿는 척하는데 사실은 내면에 종교적인 의식 같은 건 없는 거지(웃음)


용우, 해인 – 우리가 잘못 생각한 것도 있구나. 우린 인도 사람들이라면 전부 종교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거라는 편견 같은 게 있었거든. 종교가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하는 데에 문제를 일으키는 장애물이 아니라면, 인도 사회는 어떤 방식으로 통합되어야 할까?
수실 – 사회적 통합은 당연히 중요하고, 우린 지금까지 그 문제에 있어 꽤나 잘해오고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인도엔 29개의 주가 있고, 주마다 사용하는 언어와 문화도 아주 달라. 그러니까 자연스레 각자가 출신 주에 대한 자부심이 있고, 우리 주가 더 나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니까 거기서 종종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지. 작년에 큰 이슈가 있었는데 타밀나두 주랑 카르나타카 주가 공유하는 강을 두고 물 공급량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에 대해서 양측이 서로 물러나지 않았어. 그 과정에서 정부가 시위대에 발포를 해서 사람도 죽었고.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런 이슈는 우리처럼 큰 나라에선 자연스럽게 생길 수밖에 없는 문제야.


용우, 해인 – 그러면 방금 한 질문을 다시 할게. 인도를 인도라는 이름 아래 묶으려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수실 – 음, 우리가 가진 다양한 문화들? 1,000개가 넘는 언어, 다양한 각 지방이나 종교 음식들, 옷 입는 방식, 춤, 음악 등 모든 다른 것들이 인도에는 다 살아있어. 그래서 많은 걸 가진 우리에겐 좀 더 서로의 것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내 문화가 다른 문화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걸 없앨 수 없다면 최소한 다른 걸 인정해야 더 좋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거야.


용우, 해인 – 역시 사회학도 다워(웃음) 그럼 다른 인도 사회학과 학생들은 어때? 대학생들은 정치나 사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네.
수실 – 음, 이건 인도 대학생들의 문제이기도 한데, 대부분이 정치나 사회에 아예 무관심한 게 사실이야. 내가 사회학을 공부한다고 해서 우리 학과 학생들은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면 실망스러울 거야. 인도에서 특히 사회학이나 철학, 심리학 같은 인문사회 전공은 인기가 있는 전공도 아니어서 인기가 높은 의대나 공대에 가는 친구들에 비해 경쟁이 낮고 입학을 쉽게 할 수 있어. (참고로 인도는 대학 입학 과정에서 전공을 먼저 정한 후에 각자에 맞는 대학을 결정한다. 특히 공대나 의대는 종합대학이 아닌 한 개의 학부만으로 운영되는 대학이 많다.) 그래서 그냥 대학생이 되고 싶어서 사회학 같은 경쟁률이 낮은 전공을 선택하는 친구들이 많아. 물론, 델리에 있는 인도 제일 명문대인 자와할랄 네루 대학의 학생들은 예외야. 학생사회도 정말 발전했고 조직의 리더를 뽑는 일 하나도 학교 전체의 큰 이슈가 되는데, 그건 아주 소수 대학의 이야기지. 그 외엔 대부분 관심이 없어 보여. 수업을 같이 듣는 친구들 대부분은 나라 안에서 무슨 일이 돌아가고 있는지 잘 몰라.


용우, 해인 – 이 부분은 조금 비관적이네. 한국의 경우도 대학생들이 정치나 사회에 관심이 꾸준한 편은 아닌 것 같아. 아이러니하지만 한국에서 있었던 세월호 사고와 대통령의 부패 이슈로 인해 많은 대학생들이 사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그나마 다행이지. 그럼 너는 왜 관심이 많은 거야?
수실 – 그러니까 내가 특이한 케이스라는 거야.(웃음) 자유로운 우리 집에서 단 한 가지 규칙이 있었다면 어릴 때부터 매일 아침 신문을 읽고 사설을 요약해서 아버지께 검사를 맡아야 하는 거였어. 부모님 두 분 모두 사회에 관심이 많으시고 본인들이 관심 있는 단체에서 활동도 많이 하셨어.


용우, 해인 – 그래서 네가 겨우 1학년인데도 똑똑하구나. 근데 학생들이 사회나 정치에 관심이 없다면 큰 문제 아니야?
수실 – 맞아. 문제는 사람들이 관심은 없으면서 불평만 한다는 거야. 인도 쓰레기 처리 문제를 예로 들어볼게. 모든 사람들이 인도가 너무 더럽다고 불평을 하고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말만 하지. 그러면서도 자기들은 습관처럼 기차 밖으로 쓰레기를 던지고 길가에도 마구 버려. 정부 정책에는 관심도 없어.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이슈에 대해 자신들은 관심을 놓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이 언젠가는 해결해주고 대신 나서 줄 거라고 생각하는 분위기야.


용우, 해인 – 음, 그럼 정치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좀 더 관심을 가지니? 이전에 인디라 간디 총리가 비상조치를 발령해서 수년 간 독재를 한 적이 있었잖아. 그런 과거의 일을 계기로 국민들이 경각심을 가지고 그 이후로 정치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두게 됐다면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서 감시기능을 하고 있을 거라고도 생각하는데.
수실 – 맞아. 그때 이후로 사람들이 ‘아 이렇게 정부에 당할 수가 있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됐을 거야. 그래서 그토록 오랜 사랑을 받아온 국민회의당도 최근 선거 때 완전히 국민에게 내팽개쳐졌지. 그런데 어떻게 보면 지금은 조금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야. 인도인민당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면서 모디가 총리를 하게 됐는데, 모디라는 사람의 이미지 자체가 아주 강하거든. 난 모디가 지금까지 인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정치가라고 생각할 정도로 모디의 카리스마가 대단하다고는 생각해. 하지만 문제는 반대 정당(국민회의당)이 아주 약하다는 거야. 모디가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모디 정부는 굉장히 많은 걸 바꾸려고 하고 있는데 반대 정당이 검증의 기능을 전혀 하질 못하고 있으니 균형이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거야. 민주주의가 잘 기능하려면 균형이 중요한데 말이야. 그게 나는 지금 인도 정치에서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해. 모디 정부는 지금 모든 걸 굉장히 손쉽게 진행시키거든. 이런 상황은 내가 봤을 때는 좀 위험한 거야.


용우, 해인 – 그럼 인도인민당이 엄청난 지지를 기반으로 내각을 구성한 이후로 시간도 어느 정도 흐른 상황인데. 그럼 모디 정부의 각종 정책들에 반대하는 큰 목소리는 인도 내에서 없는 거야? 화폐개혁(demonitisation) 같은 건 지지하는 사람보다는 실패한 정책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훨씬 많이 봤거든.
수실 – 화폐개혁은 나도 지지하지 않고, 지금 불만의 목소리가 많이 나오는 상황이야. 그 외에 작년에 ‘무관용(intolerance)’에 대한 인도 저명 작가들의 저항의 움직임이 이슈가 됐었어. 민족주의적 성격이 강한 모디 정부에 들어서 종교적인 무관용이 인도 사회에 확산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작가들의 자각이었지. 이들이 항의의 의미로 정부가 준 상을 한 번에 반납한 일이 화제가 됐었어. 모디 정부가 인도 내에서 다른 것들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태도를 부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문인들의 의견이었어. 그런데 요즘은 이것도 다시 잠잠해.


용우, 해인 – 인도 같이 끝도 없이 분화된 나라에선 한 이슈가 오래 시선을 끌기가 힘들 것 같아.
수실 – 맞아. 다수인 힌두 사회 안에서도 계층이 수도 없이 많아. 그래서 특정한 다수라는 게 없다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다 분화되어 있어서 하나의 큰 의제를 큰 집단의 사람들이 함께 들고일어날 이슈라는 게 잘 드러나지 않는 거지.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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