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로 출근을 시작한 뒤부터 매일 자아성찰의 괴로움에 파묻혀 집에 돌아오는 나를 보며 남편이 어느날 말했다. 본인의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보면 모든 선생님들은 각자가 추구하던 ’컨셉‘이 있었다고. 요즘 말로 치환하면 ’추구미’ 정도가 될까. 남편은 미간을 구긴 채 고개를 드는 내게 말했다.
“빼미의 컨셉은 뭐가 될지 한 번 생각해봐.”
처음엔 남편의 말에 수긍하지 않았다. 컨셉이라니? 당장 아이들과 매순간 피 튀기는 영향력 싸움에 눈알의 핏줄이 다 일어설 정도인데, 팔자 좋게 컨셉을 추구할 겨를이 어딨어? 뿐만 아니라 그 단어에서 뭉근히 풍겨오는 인위적인 느낌에 거부감이 들었다. 컨셉을 잡고 젠체하다가 혹여나 삐끗해서 아이들에게 공개처형을 당하는 내 모습이 눈앞에 떠오르며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며 남편이 말한 그 컨셉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걸 왜 찾아야 하는지 나는 저절로 납득할 수 있었다.
그건 내가 처음 생각했던대로 무언가 대단한 노력을 들여야 할 것도, 인위적인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나만의 컨셉을 가진다는 건 내 말, 내 행동에 스스로가 확신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내가 진실되다 믿는 말을 하는 것, 내가 하는 말을 진실되다 믿는 것, 그것이 컨셉을 가진다는 것이었다.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이렇게 자기확신에서 비롯된 말만이 힘을 가졌다. 그리고 사춘기 아이들은 동물적인 감각으로 힘의 냄새를 맡고 쫒았다.
컨셉의 힘을 깨닫고 나는 고찰에 빠졌다. 나만의 컨셉을 가지려면 나에 대한 질문을 하고 스스로 답을 얻어야만 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그리고 이런 사람이 선생이 되면 어떤 선생이 되는가?
우선 나는 첫 번째 질문부터 시작했다. 다행히 평소 스스로에 대해 관심도 많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해 답하는데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나는 논리적이다. 나는 명료한 것을 좋아한다. 나는 뒤끝을 남기지 않는다. 최소 그러려고 노력한다. 나는 편견이 없다. 나는 무언가를 줄 때 받고자 기대하지 않는다. 나는 적절한 자극이 주어지면 사람은 변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감정 시그널을 알아 차리는데 약하다. 그래서 공감을 책으로 배웠다. 하지만 그만큼 부족한 공감 능력을 메꾸려 노력한다.
어느 정도 대답이 나오고 나서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갔다. 이런 사람이 선생이 되면 어떤 선생이 되는가? 앞의 대답들을 정리해보면 알 수 있었다. 명료하고 논리 정연하게 공부를 가르쳐주는 선생님. 아는 것을 아낌없이 주고자 하는 선생님. 학생들과 거리낌 없이 친근하게 굴지는 않지만 문제아로 찍힌 학생들에게도 편견을 가지지 않고 공평하게 대하는 선생님. 그 아이들에게도 용기와 응원의 말을 건네는 선생님.
나는 이 사고의 계단을 밟고 도달한 나의 선생님으로서 컨셉이 꽤나 맘에 들었다.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이 컨셉에서 편안함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평소 익숙한 나 자신이었다. 이 컨셉을 찾음에 어찌나 안도감이 들던지. 이 컨셉을 추구하다 삐끗한다 해도 최소 조롱을 당하거나 놀림거리가 될 것 같진 않았다.
나만의 컨셉을 정하고 난 뒤에 달라진 건 아이들이 아니었다. 나였다. 아이들과 작용을 할 때 나는 전보다 덜 흔들렸다.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이런 사람이야.'라는 메세지를 전했다. 그럼으로써 아이들이 드라마틱하게 변한 건 아니었지만, 그들은 나의 태도에서 더 확고함과 통일성을 본 것 같다. 나에 대한 그들만의 이미지를 형성해가는 듯 했다. 그게 무엇이든지 간에.
지금도 매일 아이들과의 상호작용에서 호르몬으로 가득 장전된 주먹을 정면으로 받고 마음이 시퍼렇게 멍드는 날들이 많다. 하지만 뒤끝 없고, 논리적이고, 편견 없이 응원의 말을 건네는 올빼미 선생님은 오늘도 아이들에게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