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과 광

by garden

나처럼 광(미칠광)이라는 단어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또 있을까. 나는 어떤 일에 빠져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그걸 했다, 봤다, 들었다, 느꼈다, 하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매우 당황스럽다. 나는 아무리 거기에 정신과 주의를 빼앗겼다고 하더라도 시간가는 줄은 너무 잘 알겠던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집중하는 느낌이란 무엇일까.



그런 내가 하루 이틀만에 만들어졌을 리는 없고, 생각해보면 나는 어린 시절부터 '덕질'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다. 덕질이라는 게 단순히 어떠한 인물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일종의 취미생활처럼 무언가에 심취하고 그걸 탐닉한다는 뜻으로 그 의미를 넓혀본다해도 다르지 않다. 나도 유행가를 좋아했고, 1세대 아이돌들이 멋져보였고, 영화보는 것도, 라디오듣는 것도 좋아했었다. 그러나 그건 뭐랄까 어디까지나 적어도 공부하는 것보다 나를 더 신이나게 하니까, 뭐 그정도의 마음이었지 그걸 어떻게 더 파보겠다거나 더 알아보고 싶다거나 그런 마음은 절대 일지 않았다.



그런 내가 덕질이 기본값인 딸을 이해할 리가. 딸아이가 5학년 2학기가 되던 9월 상담시즌, 나는 드디어 담임선생님에게 내 오래된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건 바로 첫째가 모든 과목의 숙제를 그림으로 시작해서 완성한다는 사실이었다. 1,2학년 때는 그림일기가 숙제이기도 하고, 다들 그런식으로 표현하니까 그런줄로만 알았고, 3,4학년을 거치면서는 아직은 아기티를 벗지 못하고 마지막 자신에게 남은 유아를 짜내듯 통통한 손끝으로 주둥이를 내민채 집중한 얼굴로 그림을 그리는 게 귀여웠다. 솔직히 이 아이의 귀여운 영유아기가 끝나는 걸 인정할 수 없어서 자꾸 자꾸만 귀여움을 찾아내려고 그 버룻을 부러 바로잡지 않은 내 불찰이랄 수도 있다. 그러나 5학년, 이제는 초등학교의 우두머리. 사춘기의 초입에 선 소녀가 1학기 내내 국어도, 사회도, 과학도, 영어도, 모든 과목의 숙제를 다 그림으로 하는 걸 보고 나는 아연해서 담임선생님께 고민을 털어놓았다.



"이런 경우는 저도 사실 15년여의 교사생활에 처음이라, 고민을 살짝 해봤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00이의 숙제는 대체로 몇 인물이 등장해서 대화를 나누면서 진행되고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그럼 그건 어쩌면 글로 쓰는 것보다 더 심도있는 기획력이 필요하거든요. 기획하고, 그림 그리고, 말풍선을 채우고, 채색하고 마무리하는 과정이 글보다 훨씬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데 그걸 단순히 글의 양이 적다, 글로 숙제를 하지 않아서 문제다 라고 볼 수 없다는 결론을 저는 내렸습니다, 어머니."



이건 뭔가요? 라고 물었는데 이것의 발생원인과 발전양상, 진행과정과 향후의 결과에 대해 모든 걸 아우르는 종합적인이야기를 들은, 한마디로 우문현답같아서 나는 부끄러워졌지만, 무엇보다 나를 가장 부끄럽게 했던 말은 마지막에 덧붙이신 선생님의 한마디였다.


"어머니, 그리고 제가 나름대로 많은 아이들을 봐왔지만, 덕력있는 아이들이 성공도 하더라구요."


그건 조금 과장을 해서 나의 폐부를 찌르는 말이었다. 그래서, 내가 덕력이라고는 1도 없어서 성공하지 못했구나, 라고 생각하면 내가 지나치게 꼬인 인간이고.. 내가 그렇지 못해서 딸을 이해하지 못했구나, 싶었다.



그래도 우리 엄마는 내 엄마라서 나를 지나치게 다재다능해서 (어중간하게 이것 저것 잘해서) 그 어떤 재능도 활짝 꽃피우지는 못했다고 ( 결국에는 무능력해졌다고) 끝내 포장을 해주었지만 나는 안다. 몇몇 분야에서는 어중간한 흥미나 재능이 조금은 있었지만 푹 빠져드는 재능만큼은 나에게 없었다는 걸. 그리고 참 다행이라면 그런 미칠 광의 기질이 없었던만큼 지금의 평범하고 평균적인, 그저 보통의 일상에 그저 안주하면서 사는 걸 행복으로 여길만큼 욕심도 열정도 딱히 없었다는 점이다. 덕질, 그거에 꽂혀서는 안되는 걸 되게 하느라고 불행하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그래서 자의든 타의든 나는 워라벨을 지키면서 살고 있는 듯 하다.



며칠전, 성재 셰프가 어떤 방송에서 하는 얘기를 들었다. 요리업계도 젊은 시절, 요리 초심자들을 빡세게 굴리기도 유명한데 반면 요즘 mz들은 그와 반대로 살고 싶어한다. 그런 분위기나 문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얼추 그런 내용의 질문에 대해 안셰프는

어느 한 시절을 불태우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때가 올 수도 있다는 요지의 말을 한다. 라벨이 나쁜 건 아니지만 어느 단계, 그걸 넘어서고 싶다면 그렇게 평화롭고 안전하고 나이브해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자기전에 누웠을 때 내일에 대한 걱정이 없는 삶이 행복이라고 얘기한 누군가의 말처럼 안전하고 평온한 상태에서 행복을 찾는 내 중년의 삶이 대부분 안도감을 준 건 사실이다. 부인하지 않고 큰 불만도 없다. 그러나 안셰프처럼, 이번 올림픽에서 낙상에도 굴하지 않고 멋지다는 말로는 부족한 플레이를 보여주는 어린 선수들처럼, 내 인생에는 어떤 하이라이트나 클라이맥스가 빠져있다는 생각이 들면 나는 가끔 허탈하다.



요즘은 백세시대이기도 하고, 직업이라는 것의 개념이 어딘가에 월요일부터 금요일, 아침 9시부터 저녁6시까지 매여있는 것만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원하기만 한다면, 준비만 되어있다면 어디에라도 미칠 수 있는 환경이 아주 잘 조성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때때로 허탈함을 느끼고 아직은 어떤 분야에 아직 불쏘시개가 닿지 못한 채 타오르기만을 기다리는 연료가 남아 있다면 해볼법도 하건만, 최가온 선수와 김길리 선수의 멋진 플레이를 두 번 세 번 돌러보며


'나도 다시태어나면,,,'


이라고 의미없는 가설을 세우면서 믹스커피나 홀짝이는 나를 보면 그 허탈함은 오히려 한심함을 닮은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내 이 생에서 늦게 시작한 이상 전혀 그만둘 마음이 없는 유일한 하나가 있으니, 그게 바로 40대에 나를 빠져들게 만든 글쓰기다. 여전히 시간가는 줄은 너무 잘 알겠지만, 직업도 있고 아이도 있어 열일 제쳐두고 집착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고, 그럴 체력도 열정도 없지만,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는 이렇다... 할 사유나 여봐라.... 할 업적은 없지만! 끝내 꺼지지 않고 뜨뜻미지근하게 지속되는 화롯처럼 미약하고 미진하더라도 누구나가 거기 그곳에 있다는 걸 인식하게 되는, 딱 그정도의 존재감으로 은은하게 광나는(빛 광) 사람이고 싶다.



또 한가지, 무색 무미 무취의 아이가 아니라 확고한 취향과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 자라는 내 아이의 덕력에 감사하며 언제가는 빛날 그녀의 덕질을 응원할 것.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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