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직후, 수년간 대민업무를 도맡으면서 늘상 모르는 것, 헷갈리는 것, 애매한 것, 모호한 것, 희미한 것, 흐릿한 것들 투성이였지만 그렇게 업무에 숙달이 되질 않아 헤매는 와중에도 장담할 수 있었던 건 아무리 AI가 득세하고, 그 컴퓨터가 인간을 대체하는 불상사가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대민업무를 맡은 공무원은 절대 이 세상에서 사라지지는 않을 거란 확신이었다. 민원대이즈네버다이.
사람들은 진상을 받아줄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갑과 을의 관계를 규정하고 싶어하고 당연히 자신은 갑의 역할을 맡고 싶어한다. 누군가를 부리길 원하고 부린다는 행위가 갖는 의미를 누리고 싶어한다. 또, 등본이나 인감을 떼는 일을 가장하고 실제로는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고 싶어한다. 이미 관공서의 객장 바깥에는 무인민원발급기가, 인터넷과 출력이 동시에 되는 컴퓨터가 마련되어 있었다. 심지어 거기서 발급을 받으면 발급 수수료는 무료였고, 있다해도 아주 적은 금액이었으며, 대기 인원도 거의 없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많은 인원이 항시 대기중이고, 발급 수수료 또한 무시할 만한 금액이 아닌 서류(가족관계 증명서는 천 원이고, 출입국기록사실증명원은 무려 이천 원이다) 를 떼러도 꾸역 꾸역 창구를 향해 밀려들었다. 대부분은 서류를 발급하고, 각종 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하고 조용히 할 일을 마무리짓고 돌아가셨지만, 위에 나열한 모든 케이스에 해당되는 진상들이 있었다. 그들을 겪어내며 나는 민원대는 어떤 AI를 데려와도 마지막까지 샇아남는 보루가 될 것이며 결코 무너지지않는 철옹성일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렇게 끊임없이 밀어닥치고 무례하게 구는 사람들을 나는 눈을 컴퓨터 화면에 고정한 채로 맞이했고 그들은 내게 민원인1, 민원인2에 불과하게 대해야 했다. 그들에게 내가 공무원1에 불과했겠지만 하여간 나는 일절 엮이고 싶지 않아서 외면하고 모른척했고, 그건 어느정도는 무시(보지않음) 의 마음이었다. 그렇게 흐린 눈을 뜨면서도 내가 공무원이 절대 없어지지 않을 직업으로 꼽는 것만큼 또 하나 확신할 수 있는 게 있었으니 그건 바로 많은 사람들이 대동소이 미안하다, 죄송하다, 고맙다, 감사하다, 는 말에 목말라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거의 허기가 져서 아사지경에 이른 것처럼 미안하다, 죄송하다, 감사하다, 는 말들을 꿀떡꿀떡 삼켰다. 나같은 인간으로서 민원대의 업무를 처리하다보면 밥먹듯 실수를 하게 되고, 실수를 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케이스에 적용되는 수많은 경우의 수를 욀 수는 없는 노릇이다보니 서류발급이나 접수 절차에 시간이 지연되기 마련이었다. 그럴 때, 나의 무능을 비난하거나 업무의 비효율을 비판하든지, 아니면 내 존재의 무의미를 역설하는 욕지거리를 들으면 갑자기 얼굴에 열이 오르고, 피가 반대방향으로 돌기 시작하는 걸 느끼며 눈이 돌 때가 있었다. 그럴 때 몇 번을 맞선 적도 있었지만 그건 나나 우리나 그들을 번거롭고 피로하게 할 뿐이었고, 그런다고 일처리가 빨라지거나 생략되는 일은 결단코 없었다.
어느 시점부터 나는 민원인들의 허기에 대적할 만한 수준의 사과를 품고 있는 것처럼 거의 울 듯이 사과하고, 빌 듯이 감사해 했다. 그러나 진짜 울지는 않거나, 진짜 빌지는 않았고 그렇게 시늉만 했다. 이것도 배움이라면 배움이고, 내공이라면 내공일 수 있을지 나는 어느 순간 더이상 진상민원인을 상대해도 화가 나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믿었다. 그래야 일이(?) 빨리 끝났고, 늦더라도 내 선에서 마무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서 그런 것이었는데, 정말로 (안) 미안합니다, (안) 고맙습니다, 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사소한 일에 언성을 올린 자신이 오히려 면구스럽다는 듯이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민원대 위에 어질러놓은 서류며 신분증을 주섬주섬 챙겼고, 되레 자신이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사라졌다.
인간 군상은 다양한데, 전개 양상은 대체로 한결같아서 나는 내 대처가 대체로 만족스러웠고, 이제는 진상 민원인들을 대하는 게 예전처럼 파르르 떨리지도, 찌르르 소름이 끼치지도 않아서 그들의 눈을 마주치며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사실 그 눈들은 내가 민원대에서만 보아온 눈들이 아녔다. 내가 민원인의 신분으로 찾아간 관공서에서 본 공무원의 눈, 내가 고객으로 찾아간 어떤 영업점 담장자의 눈, 우리집에서 나를 바라보는 남편과 아이들의 눈, 그 눈들은 민원대에서 봤던 눈빛과 비슷하고 익숙하게 나를 보고 있었다. 정말 끝간데없이 경우없고 숨쉬듯이 무례한 독종도 있었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예의 '빈말' 에 목말라하고 있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많은 눈들을 보며 깨달았다.
평소 나는 빈말을 안하거니와, 설령 비어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참말을 남발하는 사람이 전혀 아니다. 아무때고 미안하다, 고맙다, 죄송하다, 감사하다는 말을 해대면 그 말이 진짜로 필요한 순간에는 이미 그 의미가 퇴색되어 버렸을까를 염려해서다. 무의미한 칭찬이 아이에게는 독이 된다고 믿어 칭찬을 극히 아끼는 엄마인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그러나 그 눈들은 다들 미안하다, 고맙다, 감사하다, 잘한다,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을 갈구하고 있었다. 나 역시, 민원인이 머쓱하게 되레 사과를 내놓고 사라질 때, 음식점에서 받은 사탕을 슬며시 하나 나누어줄 때, 코로나 시국에서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이 참 예쁘다는 빈 말을 해올 때 마음 한 켠이 누그러들면서 몽글몽글 따뜻해져 오는 것을 느꼈던 것도 같다. 내가 듣고 싶은 말도 그런 것들이었다.
얼마전에 <서울자가에 대기업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라는 드라마가 종영했다. 그 드라마는 직장에 몸담은 사람이 겪을 수 있는 각종 애환과 고락이 마치 일희일비의 종합 선물세트처럼 들어있어 작정하고 사람들을 울리고 웃길 속셈이었지만, 그런 장면들이 너무 뻔해서 나는 태연하게 드라마를 시청하며 그 뻔함에 지루한 척하고 있었다. 그러다다 기어이 나도 그 얕은 수에 걸려들어 오열을 하고 말았는데 그건 어린 시절에 나를 무시하고 경멸하고 없는 사람 취급했고 지금도 그렇다고 믿은 형이 김부장에게 사과와 격려의 의미로 작은 경차를 선물했을 때였다. 나를 미워하는 줄로만 알았던 형이, 나를 사랑하는 줄 몰랐던 형이, 일말의 가책도 없는 가해자인줄로만 알았던 형이 건네는 미안하다, 사랑한다, 응원한다며 보내온 뻔한 장면들보다 더 뻔한 선물을 보고 나는 엉엉 울고 말았다. 빈말을 일절 못한다 믿었던 내가 더없이 취약한 관계성이 바로 '비로소 발화된 감정' 에 관한 거였다니 희한한 아이러니다.
그러니, 복직을 앞두고 나는 앞으로 민원대에서도 민원대 밖에서도 더 울듯이 사과하고, 거의 빌듯이 고마워하련다. 표현되지 않은 마음이야 말로 마음 속에서 퇴색되어 버리고 말테니, 고마울 땐 고맙다고, 미안할 땐 미안하다고, 사랑이 차오를 땐 사랑한다고 말해주어야 겠다. 설령 '안 미안하고' 혹은 '안 고마운' 순간이 대다수일지라도 빈말을 남용하련다. 민원인들은 앞으로도 생떼를 쓸테고, 딸아이가 말도 안되는 행동으로 내 화를 돋울 때도 있겠으며, 억지를 쓰며 초등학생처럼 남편이 아양 비슷한 걸 떨면서 자신의 사소한 잘못을 덮어달랄 때도 있을 것이다. 고객으로 불합리한 대응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발끈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나의 칭찬이나 사과, 수긍의 말은 어금니를 꽉 깨문채 나오는 것이겠지마는 어금니를 물었다는 사실만 잘 숨긴다면 화를 내고 언쟁을 할 때보다 한층 분위기가 수월하게 넘어갈 것이다. 말에는 돈도 힘도 들지 않는데 안미안한들, 안고맙다한들 한마디 표현으로 넘어갈 수 있다면 아낄 이유가 무엇일까.
결국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에게 치료받고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위로받고 존재하고 의미를 갖다는다는 사실. 민원대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가장 말초적이고 낮은 곳이며 근원적이고 기초적인 곳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위로를 받을 수 있고 이야기가 흐른다는 희망이 있는 곳에 영혼없는 AI가 어찌 들어오겠는가. 그리하여, 민원대이즈네버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