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하는 순간부터 이미 중년의 어느 시절을 연기하고 계셨던 배우들의 별세 소식이 유난히 잦다고 느낀 지난 한 해였다. 어린 시절에도 내가 얼굴이나 이름을 모르던 유명 배우나 스타들은 꾸준히 하나, 둘 졌을 것이다. 그 많은 별들 중 이름은 없으나 내게는 소중했던 할머니 할아버지도 계셨었다. 그런 소식을 뉴스나 신문에서 가끔 보았고, 엄마 아빠에게 전해 들었지만 그때 죽음은 나에게서 너무도 멀어, 내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얘기들이었다. 이제는 아니다. 나는 죽음으로 연결되어 있는 삶의 필연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느낀다.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들며 만들어졌을 죽음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이제는 막을 수 없는 흐름에 한 세대가 저무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내 차례도 다가오고 있는건가, 하는 마음으로.
지난 한 해, 많은 큰 별들이 지는 걸 보는 한편으로 <박보검의 칸타빌레> 나 <우리들의 발라드> 같은 프로그램을 보며 나는 많이 행복했다. 자본주의의 관점으로 봤을 때, 그 프로그램들은 가장 지갑을 잘 열 세대, 구매력이 가장 풍성할 세대, 이제 막 추억의 맛을 알게 되었을 세대, 그러나 추억의 맛과 멋을 알지만 거기에 흠뻑 빠지기에는 체력이 안 따라줘 실행에 옮기는 데에는 굼뜰 세대 이후의 동생 세대, 그러다가 추억이니 나발이니 너무나 멀고 멀어져 모든 게 귀찮아지고 건강만이 당면과제이자 최종목표일 세대의 자식 세대, 그러니까 딱 잘라서 말하면 40대에서 50대로 수렴되는 이들에게 초점을 맞춰 기획되고 구상되고 실행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놓치지 않았을 그 공급을 , 우리는 애써 외면하며 낭만으로 포장하고 누릴 수 있는 수요자들이었다. 그래서인지 한껏 빠져들 수 있었다.
맥주 한 캔과 함께 앳된 소녀가 부르는 임재범의 '너를 위해' 라든가, 나만 알고 싶었으나 이미 너무 유명해져버린 델리스파이스의 '고백' 같은 노래가 흘러 나오는 걸 보면서 나는 저항없이 그 때로 돌아간다. 아무런 이벤트가 사건이 없어 평범하다 못해 지루하다고 느꼈던 일상의 깊은 밤 앞에 멈춰 버리는 것이다. 지금도 내 뇌리에 선명하게 깊게 각인된 몇 가지 일들은 처음이었거나, 너무 충격적이라서 아직도 생각나는 것들인데, 이런 노래들은 아무렇지 않았고, 아무렇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그런대로 흘려보낸 소녀의 밤들로 나를 이끈다.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면 나를 실제로 자라게 하고 키운 건 그런 평화로운 밤과 그 밤 내 앞에 놓였던 '별이 빛나는 밤에' 나 '음악도시' 가 흘러 나오던 라디오가 아니었을까.
그 시절로 소환되어 추억여행을 하는 것만이 그 프로그램이 내게 준 행복은 아니다. 나는 아직도 내가 언니나 오빠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현역 가수로 활동하는 것에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남이 깔아놓고 잔재주를 부리는 멍석 위에 무임승차해 덩달아 나도 흥에 겨운 쾌락의 느낌만이 아니라, 여전히 나도 현 시대에 손톱만큼의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연령대에 속해 있다는 묘한 소속감을 준다고 해야 할까. 딸아이나 아직 젊은 세대들이 나를 바라본다면 아마도 내가 걸그룹에 환호하고 아이돌에 꽂혀 있을 때, 우리 엄마가 한 시대를 풍미하다 못해 단물까지 다 빠졌을 최성수나 패티김의 노래를 18번으로 꼽던 것을 보는 느낌일 것이다.
나올 때마다 최고 시청률을 갱신하는 효리언니(이효리를 '언니' 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축복이다)의 예능프로그램과 간헐적으로 여는 콘서트에서 아직도 피케팅의 파워를 보여주는 시경오빠와 동률오빠를 보면 40대 이후에 기다리는 중년의 삶도 내리막만은 아니다. 많은 것이 이루어져서 더 바꿀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여기던 내 나태하고도 권태로운 태도를 반성한다. 여전히 열렬하게 타오르는 그네들의 불꽃을 보면 나도 기대할 것이 있는 중년일 수 있다는 잠깐의 위안을 준다.
얼마전 인터넷의 바다를 헤엄치다가 한 게시물을 보았다. 거기에는 박완서 작가는 40세에 등단했고, 짐 모리스는 35세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샘 월튼은 44세에 월마트 1호점을 냈으며, 헨리 포드는 45세에 포드 자동차를 설립했다, 는 등의 예시들이 나와 있었다. 그러니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는 내용. 그러나 장삼이사인 내 시선으로 보면, 전 세계의 드넓은 대륙과 다양한 인종, 그 인종들과 대륙을 관통하는 숱한 세월에 걸쳐봐도 중년에 이른 나이에 새로운 시작을 하고 주목할 만한 성과를 이룬 이들은 손에 꼽을 만큼 드문 것이다. 전 세계의 시간과 공간에 걸쳐 뽑아낸 인물이 저렇게나 적다니!!
이 나이까지 살아보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는 말은 대국민 사기급의 거짓말이라고 느끼는 순간이 많다. 어른들이 늘어놓는 제각각의 무용담들 속에서도 한결같이 녹아있는 교훈은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 는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불문율대로 10대에 공부하고 20대에 취업하고, 30대에 결혼하는 이유가 대체로 있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온 내가 맞이한 40대는 안락하고 평온할 줄만 알았으나 아니었다. 부모와 형님세대에 비해 너무도 빠르게 바뀌는 직업 환경과 생활여건, 산업의 지도와 유행에 뒤처지기에 우리 세대는 100세까지 스스로를 책임지고 살아나가야 한다. 그리고 실제로 비범한 인물들에 비견하여 얘기하기도 미진하지만 나도 서른 여섯에 공무원이 되었고, 마흔 넷에 첫 책을 내었다. 한편으로는 더 젊었다면, 딸린 식구가 없었다면, 시간의 여유가 있었더라면, 여러가지 불가능한 예전의 가능성을 곱씹으며 늦은 나이에 다른 일을 준비하고 해내는 과정이 힘들었다는 걸 떠올렸다. 그러나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이 나이가 되었기에 알게 된 것들이 그 준비과정 안에는 녹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언니와 오빠라고 부를 수 있는 인물들이 여전히, 티비 안에서 건강하고 혈색이 건강한 얼굴로 활동해주고 있다.
그러니 그들의 멋진 활약을 tv안에서 오래도록 보고 싶다. 한 세대가 저물어가는 걸 보는 일은 아주 오래된 미래를 보는 듯 슬프고 서글프며 착잡하다. 맹렬하게 불타오르며 찰나의 황홀경을 선사하는 가을노을이 아니라 오래도록 머물며 조금씩 적시듯 스며드는 봄노을같이 천천히, 꾸준하게, 오래도록 언니 오빠들을 보고싶다. 그럴 수 있는 한 나에게 중년도 기대되는 인생의 한 페이지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