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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rden Aug 10. 2024

한낮의 수다

epiloge

누구라도 가지 않은 길에 대한 기회비용을 지불하며 맞이한 오늘을 보내고 있다. 가지 않았다는 그 이유 때문에 우리는 과거엔 누구라도 될 수 있었고, 그래서 그 어떤 미련도 가질 수 있고 터무니없는 후회도 허락된다. 오늘날의 우리는 과거에 될 수 있었던 그 모든 것들의 집합체로 지금 여기 남겨진 소중한 존재들이다. 그리고 내 앞의 오늘은 가보지 않은 길과 맞바꾼 한 하루다.



지금까지의 글들은 나와, 현재 혼인 중이거나 한때 결혼을 했었던 그녀들의 치열한 수다와 토론의 산물이다. 숱한 브런치 테이블과 커피 테이블를 오갔던 대화와 그를 통해 누렸던 희열, 함께 나눈 절망을 몇 자락 끌어다 옮겼다. 결혼 전, 수많은 밤과 술상 앞에 마주했던 우리들은, 결혼을 하면서 밤이 아니라 오전과 낮에 만났고, 술이 아니라 커피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눴다. 나의 결혼생활만으로 쓸 수는 없었을 것이다.


본래 이번 화는 이혼과 졸혼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이야기는 위에 얘기한 대로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더 많은 이야기들을 낳았고, 이런저런 가지치기 끝에 나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주기도 했다. 그렇지만 쓰기를 택하지 않은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가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당히 재미로 시작했던 글쓰기였고, 어중간한 열정으로 써 내려갔지만, 결코 가볍게 읽히지 않기를 바랐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적었던 대로, 실용서처럼 잔소리처럼 정말 필요하고 생각해 볼 만한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싶었다. 해보지도 않은 주제에 옳은 소리만 늘어놓는 교과서 같은 글이 되지 않았으면 했다.



"이혼은 내일도 할 수 있고, 모레도 할 수 있잖아. 그러니까 오늘일 필요는 없어."



꽤나 오래전 어느 토크쇼에서 중년의 여배우가 했던 말이다. 본인이 이혼을 해보니까, 상대방을 죽이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면 오늘당장 내가 죽을 것 같을 때, 하는 것이란 교훈을 얻었다고 했다. 하나의 예능 프로그램에 불과했을 그 날의 방송은 내 결혼생활에도 햇수와 연차가 쌓이면서 진리 중의 진리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웃으면서 이야기하던 그 여배우의 초월한 듯한 표정과 말투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결혼을 하는 것과 그걸 유지하는 일은 매우 배타적이다. 이혼상태이면서 결혼상태일 수는 없다. 비혼이면서 동시에 결혼할 수도, 결혼을 유지하면서 졸혼을 할 수도 없다. 단 하나만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런 데에 인생의 묘미가 있는 것이겠지만, 그건 잘못된 선택에 대한 책임 역시  나한테 있다는 얘기도 된다.



그러니까,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볼 수 있는 모든 최선을 다해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최선이 무엇일지, 우선순위는 어떤 것인지, 지금의 선택이 맞는 것인지 아무도 답은 내려줄 수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모르는 채로 앞으로 나아간다. 적절한 타이밍이란, 나만 선택할 수 있다. 이 글이 무책임하길 원하진 않으나 사실이 그렇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결혼을 할 것이냐, 이미 유지 중인 결혼생활을 끝낼 것이냐, 계속해서 살기를 택할 것이냐, 를 결정할 때는 해볼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들, 주변에 요청할 수 있는 모든 도움, 가능한 많은 조언들 끝에 내려야 할 결정이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는 것이다. 지금, 여기, 내 앞의 선택지에서 나는 단 한 가지만을 선택할 수 있고,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대가로 내일을 살게 될 테니까 말이다. 가 가장 중요하니까, 내 인생은 내가 살아내야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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