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공부, 읽기(1)

세계에 감응하는 앎 (1)

by 푸른킴


“밖으로는 조용하고
안으로는 여유로운 안식월을 통해,
나는 방향 없는 광장에서
길을 잃어보는 즐거움을 깨닫고
내면의 성찰을 시작한다.”



철학으로서 안식월 책 읽기- '감응하는 앎'을 향한 여정

살아오면서 책을 열심히 읽었다.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내세울 만큼은 아니다. 읽은 책은 아낌없이 다른 이에게 주기도 했다. 그리고 필요하면 다시 사들이는 일도 자주 있었다. 주제도 다양하게 읽었다. 모르는 분야도 열심히 관심을 넓혀가며 공부했다. 한때 나는 단편소설을 즐겨 읽었다. 딱히 좋아하는 작가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다. 특히 문학 계간 잡지에 성글 성글란 소설들이 좋았다. 이렇게 문학 읽기를 심화하게 된 계기는 소설가 윤대녕의 「말발굽 소리를 듣다」와 소설가 故 이청준의「잔인한 도시」였다. 이 두 소설은 두고두고 되새김질할만한 글이었다. 그 소설가들의 치밀한 글 구성과 수사적 표현이 당시의 나를 경이롭게 했다.


그런데 나의 서재에는 특별한 책이 하나 더 있다. 이 책은 글이 빈 책이다. 글 없이 종이만 제본되어 있다. 이 책은 내가 발품을 팔아 사들인 책은 아니다. 지인이 멀리 여행을 다녀올 때 나를 생각해서 특별히 발품을 팔아 구해온 것이었다. 외형이 아주 화사하다. 붉은 외양과 황금 도장으로 한껏 멋을 낸 책이다. 노란색 안종이도 세련되었다. 꼭 경전처럼 보이는 책이다. 첫 장을 열면,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다. 처음에 낯설었다. 하지만, 볼수록 그 빈 페이지가 맘에 들었다. 어떤 것을 상상하든 무엇을 그려보든 가득 찼다 바로 사라지는 것이 신선했다. 그 책은 비어 있으면서 여백의 미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여백 있는 글 읽기의 감응

안식월 읽기의 첫 번째 책은 바로 글 없는 책, 여백 있는 빈 책이다. 저자와 내용이 없어 내가 곧 저자이고 책의 본문이 될 수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읽기 효과가 있다. 바로 책 자체를 넘어서는 사유를 자극해 준다는 점이다. 글씨에 함몰된 독서로부터 해방해 준다. 글과 글 사이에 저자가 새겨둔 사고 흐름을 적확하게 파악하고 추적하듯 뒤따라갈 이유도 당장에 없다. 아무 데나 펼치고 읽으면 된다. 이런 하나하나가 곧 ‘지금 쓰이는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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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사람 틈에서 오래 걷길 즐기고, 특히 한 산의 모든 길을 걷습니다. 매일 글쓰기를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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