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걷기, 시간 해체의 미학(3)

걷기와 시간의 관계-예배의 해체(3)

by 푸른킴

시간 해체의 ‘철학적 영성’

예배자가 드리는 전통적인 예배 시간은 그 자체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굳은 채로 있다는 것을 냉정하게 성찰해야 한다. 미적분되지 않는 시간, 즉 변화와 만남의 사건으로 전환되지 않는 시간을 반성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찰나와 영원은 구분될 수 없다. 이 둘은 모두 ‘하나님의 통치를 인식하는 시간’으로 기능한다. 그렇다면, 경건한 삶이란, 시간을 얼마나 길게 들이느냐가 아니다. 그 시간을 얼마나 깊이 들여다보고 끝내 자기 자신을 해체할 수 있느냐의 문제라 할 수 있다. 끝내 자신을 철학의 대상과 잇대려는 자기 분투가 관건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일반적으로 고수하는 60분의 예배가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그 자체로 미분에 어울리는 시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겉으로 봐서는 어떤 변화를 감지하기에는 아직 미숙성 될 수 있지만, 인간의 인식 한계로는 충분하다. 그 안에서도 이미 무한한 변화가 있다는 것을 쉽게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예배의 끝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시간의 적분이 필요하다.


예배에서 적분은 예배 시간 밖으로 나서야 가능해진다. 길과 광장으로 나가 몸이 스스로 멈춰야 할 때까지 움직여야 한다. 그 길에서 다양한 경험과 나눔, 대화, 열정, 수고가 어우러질 것이다. 미시적 관찰이 거시적 예배로 확장되는 것이다. 이 확장된 시간이 포함될 때 비로소 예배는 예배가 된다. 요컨대 예배의 처음은 내가 역에서 보냈던 그 짧은 시간과 같다. 예배자 자신이 자기를 보기보다는 주변 사물과 상황을 관찰하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예배 공간 밖으로 나와서 이어지는 예배는 이 미시적 변화가 축적되는 시간이다. 몸이 피곤해서 더는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은 시간까지 세계의 여러 길을 걷는다. 마침내 그의 예배는 세계를 아우르며 넓혀진다. 예배자는 자기 세계에만 몰두하던 습속을 버리고, 야훼의 시선이 닿는 세계까지 함께 주목한다. 하나님 통치의 시민 의식으로 자신을 새롭게 정위 한 것이다.


이제 시간은 갇히지 않는다. 해체된다. 그 해체를 경험한 나는 나의 견고한 자아를 비워낸다. 그 몸의 광장에 하나님의 거룩한 시선을 채운다. 시간 해체가 나의 해체와 연동한 사건이다. 이로써 나는 나의 예배드림을 각성한다.

나의 예배와 새로운 삶의 방식

나의 예배는 걷기처럼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존재의 변화’를 담는 그릇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 변화는 예배라는 행위 안에서 항상 반복되어야 할 존재론적 성찰과 밀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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