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와 시간의 관계-해체(2)
해체 2: 540분, 적분의 미학
이날 나는 540분을 걸었다. 적지 않은 시간이다. 아니 길다고 해도 무방하다. 길을 멈추고 피곤한 몸을 쉬면서 나는 이 긴 시간과 출발 전 보냈던 그 짧은 시간과 어떤 의미 차이가 있는지 되돌아보았다. 아주 현저한 다른 점이 있었다. 시간 안에서 관찰한 모든 미분이 적분 되면 결국 그 시간 해체는 관찰자를 해체한다는 것이다. 긴 시간 안에서 가장 현저한 변화 인식은 곧 자신의 해체이다.
걷기를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오전 기온이 이른 아침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날씨야말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수시로 달라진다. 아니 같은 시간 안에서도 다양하게 변한다. 이 걷기의 끝을 나는 모른다. 그저 햇빛과 더위 속에서 몸이 닿는 끝까지 걸을 것이다. 나는 곧바로 역을 빠져나왔다. 처음 걷는 길이라 당연히 새로웠다. 새롭게 건축된 역은 도심에서 완전히 비껴 나 있었다. 그래서 그나마 번화한 마을까지 가려면 한참 걸어야 했다. 힘들지 않아서 기분 좋게 풍경을 둘러보며 천천히 걸었다. 햇빛은 좋았다. 바람이 불어 기온이 선선해졌다. 이 정도면 걷기에는 최적의 날이었다.
하지만 역에서 마을로 이어지는 길에는 사람이나 흔한 강아지도 한 마리 없었다. 가끔 지나가는 차나 택시가 내 옆에서 속도를 잠깐 멈추는 듯했다. 내가 관심을 보이지 않자 가던 길을 내달렸다. 그것 말고는 모든 것이 멈춰 있었다. 나는 개의치 않았다. 낯선 길을 홀로 걷는 것은 오히려 호기심이 새록새록 솟아서 좋았다. 흔한 도시 풍경인 듯하면서 시골의 맛도 살아있어서 인상적이었다. 몸 하나로 고독하게 걷는 여행의 묘미일 것이다. 문제는 내가 이 지역의 길을 몰랐다는 점이다. 숙소 말고는 걷기의 목적지는 정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오늘 안으로 숙소에 도착해야 했다. 이제 이 초행길을 보이는 대로 감각만으로 무작정 걸어야만 했다. 호기심만 가지고는 조금 두려운 여정이긴 했다.
여러 길을 걸어본 경험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오늘도 두려움보다 조금 더 큰 평안함으로 일단 곁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문제가 있었다. 도로 곁길을 걸어야 했다는 점이다. 도로를 옆에 두고 좁게 나 있는 곁길은 걷기보다 차를 위한 길이다. 시골의 도로에는 도보가 거의 없다. 그래서 걷는 사람은 조금 위험한 이 길을 긴장하면서 걸어야 했다. 그래도 낯선 길에서는 자주 만나는 길이니 괜찮았다. 차만 다니게 만든 길, 걸을 사람이 알아서 안전하게 자기 방어를 하며 걸어야 하는 길은 어디나 있었다.
또 다른 문제도 있었다. 길이 어긋나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것이다. 살지 않은 곳의 길은 어디나 난생처음 걷는 길이다. 당연히 비슷해도 다르고, 달라져도 알아채지 못한다. 이런 위험하고 낯선 길을 멀리 오래 홀로 걸어야 한다. 길을 잃을 위험은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 내가 안식월에 이런 길 걷기를 선택한 것도 바로 이런 문제 때문이다. ‘처음, 위험한, 오래, 멀리’는 시간 해체를 사유하는 데 최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길게 말했으니 내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궁금해할 수 있다. 혹시 내가 몇 시간, 몇 걸음을 걸었을지 묻고 싶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내가 먼저 해야 할 말이 있기 때문이다.
안식월의 길 걷기는 목적지도 따로 정하지 않지만, 목표하는 숫자도 없다. 기준은 내 몸이 더 걸을 수 없는 상태에서 숙소 무사 귀가이다. 만약 몸만 괜찮다면 충분히 오래 멀리 걸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여정에서 나는 오래 걷기를 두 번 했다. 이틀 뒤에도 나는 몸 상태를 잘 유지해서 더 오래 멀리 걸었다. 내가 안식월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사람들은 “몇 시간이나 걸었냐?”라고 물었다. 나는 둘 다 9시간 이상이었다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그렇게 오래 걸었는데 괜찮냐고 재차 물었다. 나는 “몸이 안 괜찮아서 그만큼만 걸었다”라고 했다. 달리 말해, 내 몸이 더 걸을 수 없는 상태였기에 거기까지 걸었다.”라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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