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와 시간의 관계-해체(1)
시간의 양은 중요하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 시간 안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관찰’하는 태도다.
시간은 단순히 흘러가는 흐름에 그치지 않는다.
세계의 모든 피조물의 겪는 변화 양태를 숫자로 표현하는 신적 장치다.
걷기와 시간의 관계
2025년 6월 1일. 안식월 둘째 달. 주일 오전. 남도의 한 역에 내렸다. 여행의 목적은 단순하다. 안식월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매주 70분 정도 예배 시간을 반복했다. 그런데 오래전부터 ‘왜 예배는 60~70분으로 끝나는지 궁금했었다.’ 어찌 보면 짧지 않지만, 생각보다 길지도 않다. 더 큰 질문은, ‘이 정도 시간으로 예배의 의의를 깊이 경험하기에 충분하다고 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였다. 10분은 너무 짧고, 120분은 오히려 부담스러운가?
투박하게 다시 쓰자면, 어떤 사건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까? 라는 물음이기도 하다. 솔직히 사람들에게 암묵적 약속처럼 굳어진 주일 예배 시간에 익숙해졌다 해도 이 시간이 아니면 경건하거나 거룩한 시간이 불가능하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왜 나는 이 고정된 시간 구조에 익숙해져 있고, 때로는 거기에 갇혀 있는가? 정해진 시간이 넘으면 불안하고, 그보다 이르면 마음이 풀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의 경험을 토대로 내가 면밀히 되새겨보려는 것을 한 문장으로 적어보면 이렇다.
“삶의 의미는 시간의 길이에 달려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시간의 양이 아니라, 그 시간 안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관찰’하는 태도이다.”
누구나 인정할 수 있듯이, 어떤 이는 단 1초에도 경각할 사건을 마주하고, 또 어떤 이는 60년을 살아도 무덤덤하게 지나칠 수 있다. 단 1분에도 인생의 전환이 일어날 수 있지만, 하루를 통째로 소비하고도 아무 성찰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어떤 일은 10분이면 족하지만, 또 어떤 일은 평생이 걸려도 끝나지 않는다. 결국, 시간은 단순히 흘러가는 흐름만은 아니다. 그 내면의 의미는 세계의 모든 피조물이 겪는 변화의 양태를 기호로 표현해 주는 신적 장치라 할 수 있다.
이 관점에서 나는 나의 안식월에 시간이 본질적으로 변화와 관계한다는 것을 면밀히 살펴볼 수 있었다. 그리하여 모든 시간은 관찰할 때 그 의의가 더욱 도드라진다는 것을 알았다. 짧은 시간은 더욱 미시적으로 미분하여 그 틈과 조각을 현미경으로 보듯 관찰해야 하고, 긴 시간은 거시적 관점에서 그 미분 된 것들을 적분하여 축적한 다음 큰 움직임을 찾는 것이 좋다. 이렇게 나는 안식월에 시간을 숫자가 아니라 변화의 양과 질로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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