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 감응하는 삶(3)
안식월의 읽기, 책과 함께 걷는 존재의 길
이처럼 나의 안식월 읽기는 책과 함께 걷는 나를 이 세계에 정위 하는 노력이다. 여행을 떠날 때 나는 습관처럼 책 한 권을 챙긴다. 반드시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존재. 책은 눈앞의 활자가 아니더라도, 마음속 어딘가에서 여정을 동반하는 무형의 도반이다. 그 책은 때때로 내가 익숙한 세계를 벗어나 낯선 곳으로 천천히 스며들도록 이끌어준다. 산을 걷고, 책을 들고, 어떤 구절과 마주칠 때면 이런 일련의 과정이 ‘타자를 위한 거룩한 허비’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곧, 내 안의 신앙이 교회 담장 너머로 뻗어 나가는 순간이다. 내 안에서 교회가 다시 살아 움직인다.
그런 의식 속에서 나는 빈 책과 논문, 산책을 통해 감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환대하는 삶의 방식으로 전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읽기를 통해 세계를 느낀다. 그 느낌은 내 일상의 기도로 구현된다. 따라서 읽기에 기반한 기도는 나를 교회 바깥의 세계로 열어주는 ‘환대의 리듬’이 된다.
또한, 나는 안식월의 읽기와 공부가 나를 비우는 케노시스에 닿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저 자기 비움이 아니다. 이 비움은 글의 모호성 앞에서 나를 ‘무(無)’로 이끌어갔다. 무는 있음의 없음이다. 완전한 없음이 아니다. 없지만 곧 있음으로 나아갈 최종 단계를 함의한다. 나는 이 무가 자기 해체와 연동하는 용어라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이 해체야말로 글을 읽고 세계에 감응하는 나의 방식이다. 나는 세계와 균등해지고 마침내 없는 무의 존재가 되었고 다시 새로운 나로 전진하는 것이다. 난해함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쳐 탐구하려 했다. 나는 진리의 숨결에 최대한 가 닿으려고 노력했다. 이 세계의 흐름에 더 민감하게 감응하는 감도를 높였다. 그리하여 나는 안식이라는 멈춤의 시간 속에서 글 읽기를 통해 자연의 순리를 감응하는 법을 지속해서 연습했다.
이 읽기를 통해 나는 영원의 세계를 더 깊이 인식하고 그것을 토대로 ‘궁극적 무(=無無)'의 깨달음에 이르는 여정을 당당하게 걸었다. 다시 말해 읽기와 공부는 나를 멈춰 타인의 세계로 들어가는 동력이었다. 동시에 타인의 지적 세계 앞에서 나를 비워내는 겸손이었다. 그 겸손으로 나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 세계에 스며드는 것에 동참할 것이다.
안식월의 읽기는 낯선 세계와 감응하며 누리는 검은 안식
이처럼 이 안식월에 나의 읽기는 평소 낯선 세계와 긴밀하게 만난 것으로 귀결된다. 특히 내 삶에 흩어져있던 장자의 사유가 큰 도움이 되었다. 이번 안식월을 통해 내 사유 안으로 모였다는 것이야말로 큰 소득이다. 그의 사유는 나의 목회를 다시 성찰하게 했다. 특히 나는 자쾌(自快), 자화(自化), 찰기시(察基始)를 새겨 읽었다. 그 개념들은 각각 내게 멈춤의 가치를 일깨웠다. 또한, 목회가 단지 사람을 모으고 설교하는 것에 그치지 않음을 일러주었다. 목회란 인간의 본질로서 사람됨을 자극한다. 그리하여 한 사람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세계 안의 존재로서 자기를 깊이 관조하도록 안내하는 일이었다. 즉, 빠르게 질주하는 사람을 잠시 멈추게 하는 신호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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