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꿈-과거로부터 온 미래 (2)

-꿈의 기호학 그 상징적 의미

by 푸른킴

꿈의 기호학 그 상징적 의미

꿈은 뇌를 통해 조율되는 삶의 상징어로 사용된다. 상징이라는 점에서 ‘꿈’의 파자(破字)는 꿈에 담긴 무의식과 그를 통해 창의적인 미래전망을 현재로 소급하는 데 기여한다.

꿈001.jpg <꿈 글자의 시각적 해체>


이처럼 ‘꿈’이라는 글자는 두 개의 ‘ㄱ’과 굵은 토대, 아래로 향하는 화살표로 어우러진 ‘ㅜ’, 그리고 ‘ㅁ’으로 구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두 개의 기역(ㄱ)을 어떤 의미로 풀어내는가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명제가 나올 것이다. 나는 기록과 기억으로 풀어쓴다. 이어지는 화살표와 미음(ㅁ)으로 그 의미가 체화되는 방향을 상징했다. 여기서 ㅁ은 여러 단어로 변주할 수 있다. 나는 ‘몸’과 ‘말’을 떠올렸다. 이런 파자의 의미를 종합하면, ‘꿈’은 기록과 기억이 내 몸으로 체화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어떤 현상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꿈’은 상상력과 창의력의 동의어로 쓰인다.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삶을 변화시키는 창발성에 영향을 준다. 뇌에 근거한 인지심리학은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난 이가 창발 하는 아이디어로 새로운 세계를 열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한다. 하지만, 잠만이 아니다. 삶에 대한 진지하고 깊은 사색 역시 비렘 수면의 효과를 보여준다. 이때 꾸는 꿈은 자기 현실에 대한 이상적인 변혁으로 이어지거나, 현실의 개혁에 가닿는다.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에서 허생은 이 잠을 자는 것 같은 이상 속에서 꿈을 꾼 인물이다. 아쉽게도 소설 속에서 그의 상상은 실패했다. 하지만, 그 꿈은 실학에 바탕을 둔 사회 개혁을 위한 향한 꿈의 절정체였다고 할 수 있다. 그 소설만으로도 충분히 미래 상상의 세계가 지금 여기에서 이뤄졌음을 실제로 보여준다. 이것은 꿈의 현재성이다.

박지원은 열하를 방문하고 목격한 과거를 기록하고 기억했다. 그는 지속해서 그날의 이야기를 되새겼다. 연암은 그 과거로부터 미래를 꿈꿨을 것이다. 그 미래는 이미 과거에 있었다. 청의 문명이 소설은 박지원의 실학 추구가 막연한 꿈이 아니라 현실로 실현될 가능성의 꿈이라는 의미를 강화했다. 그리고 그 미완성의 현재가 바로 허생전으로 구현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허생전 같은 소설은 전적으로 꿈같은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꿈은 잠 깨면 바람처럼 사라질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잠을 깨고 나서도 생생하게 실현되는 창의적이고 상상력 풍부한 드러나지 않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어느새 그 꿈은 얼마 가지 않아 조선 후기 사회에서 정조에 의해 문체반정의 오욕을 뒤집어쓰면서도 현실로 드러난다. 꿈의 전망성이자 현실성이다. 그렇다면 이제 나의 관심은 이 현실에서 현실 너머를 지향하는 꿈의 가리킴이 어떻게 나의 현실 속에서 구체적인 삶의 형태로 드러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꿈과 검은 안식의 상관성

꿈을 자주 꾸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꿈에 시달린다. 이유가 있다. 몸 안과 밖이 부조화 때문이다. 다시 말해 스트레스, 우울함, 불안감으로 잠의 질이 떨어질 때 꿈이 발생한다. 그런 점에서 꿈은 몸이 고통 중에 있다는 것을 반영한다.

정신적인 꿈도 다르지 않다. 꿈이 많은 사회는 그만큼 현실의 어려움이 크다는 것을 방증한다. 아니 꿈이 문제가 아니라 실현되지 않는 꿈이 너무 많으므로 쉼 없이 꿈을 교체하는 것이다. 마틴 루터 키의 저 유명한 연설 ‘나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dream.)’를 생각해 보자. 그날 킹 목사는 “정의의 왕궁으로 향하는 따뜻한 문지방 선 여러분”을 향해,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자명한 진리”를 일깨웠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의 희망입니다.”라고 연설했다. 이날 연설은 아직 그들이 자유의 몸이 되기 전이었다. 하지만, 킹 목사에게는 이 꿈은 100년 전 링컨의 노예해방이라는 과거의 기록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그 기록이 기억되고, 킹 목사의 몸에 전이되어 마침내 100년 뒤 흑인의 완전한 해방을 ‘꿈꾸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그 꿈이 이뤄지려는 순간이다. 이 꿈의 실현을 축하하기 위해 그룹 ABBA의 노래 ‘I have dream.’이 역사의 배경으로 흐른다. 또한, 시인 이육사의 청포도는 꿈의 전망성과 현재성을 반영한다. 시인은 “내 고장 칠월은/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에 “내가 바라는 손님이 고달픈 몸으로/청포를 입고 찾아온다”는 꿈을 꾼다. 미래가 머지않았다는 예견이었을까? 6년 뒤, 자유의 종이 울리고 닫힌 빗장이 풀렸다. 그의 수인번호 264가 그의 이름이 되었듯이, 그는 꿈에서도 무력의 통치가 스러지는 날을 꿈꿨다. 이들이 꾸는 꿈은 결국, 그들이 처한 시대가 검은색이었고, 그 자체로 어둠이며 닫힌 세계였음을 방증한다.


안식월 동안 나도 검은 안식 속에서 꿈의 시간성과 현재성을 경험했다. 살아있는 듯한 길과 죽은 듯한 길이 뒤섞인 길이다. 스산한 그 길을 오래 걸었다. 그 길에 끝까지 걷고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왔다. 이번에도 힘겨웠다. 43km, 57000여 걸음, 모두 9시간이 걸렸다. 산길을 걸을 때는 즐거웠지만, 죽은 길에서는 여지없이 헤맸다. 그 틈에 우연히 지름길도 찾았다. 살아있는 도시 길과 죽어버린 듯한 논길을 아울렀다. 사방에 아무도 없는 어둑한 산길로도 들어섰다. 마음이 시원해지는 호숫가 길, 지루한 숲길도 걸었다. 심지어 차만 달리고 걷는 이 하나 없는 도시 찻길로도 위험하게 들어섰다. 금계국이 하늘거리며 찔레 향 가득하고, 강아지와 고양이만 반기는 길에서는 생명의 환대를 느끼기도 했다. 마침내 이 살아있는 듯하고 죽어있는 듯한 모든 길이 하나로 이어진 듯했다. 나는 힘을 다해 꿈을 꾸었다. 이 길의 끝을 보고 싶다는 꿈이었다. 나는 출발할 때부터 이미 이 끝 모를 길을 완주하는 나를 상상했다. 그리고 그 길을 걷는 중에 이미 마침표 같은 쉼표를 찍은 나를 만났다.

이 길이 인상적인 것도 그 이유다. 내가 죽은 듯한 길에 들어섰을 때 살아있는 다른 길이 나를 불러 그들의 길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나의 발걸음이 올바르게 방향을 잡도록 하늘과 바람과 꽃과 나무와 벌레가 나를 일깨워주었다. 반복되는 경험으로 나는 죽어있는 듯 풀로 뒤덮인 옛길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무질서한 숲이 낯설어서 급한 마음에 몇 번이나 되돌아 나오긴 했다. 하지만 나는 어느 길에서도 당황하지 않았다. 죽음 같은 길에서도 생명의 길은 이어져 있었고, 끝내 내가 잘 걷도록 나를 안내했다. 그 덕분에 나는 잘 ‘걸어냈다.’ 오랜만에 물집도 잡혔고, 무뎌지는 발바닥 감각도 참아야 했다. 이른 아침 목적지를 상상만 한 채 나선 길을 저녁 무렵 바다에 물이 밀려들어 올 때 즈음, 첫 출발지로 무사히 돌아왔다. 요컨대 나는 길에서 길을 꿈꾼다. 이 꿈은 나의 의지의 총화이기도 하다. 어디나 열린 길을 걷고 싶은 의지다.


오래전 국토 종주를 하며 꿈꾸었던 걷기의 꿈은 지금 나를 그 불확정적인 길을 걷게 이끌었다. 그 길을 걷는 사람만이 꿈을 이룬다. 그 꿈은 나의 오래된 미래다. 그 미래는 길 위에서 만나는 현재 사건에서 현현한다. 걷지 않는 길이 사라지듯이 꿈이 없는 길도 소멸한다. 길이 선택하는 자에 의해서만 살아있듯, 꿈도 잠을 깬 뒤에도 부여잡은 이에게서 실현된다. 그러니 죽은 길처럼 보이는 꿈을 살리려면 그 꿈을 두 발로 걸어야 한다. 그렇게 어둠 속으로, 투쟁과 분투의 장으로 스스로 들어간다. 요컨대 검은 안식 속에서 걷기는 나를 현재에 묶어 두었지만, 동시에 그 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잇는 문이기도 했다. 그 문을 통과하는 경험이 바로 꿈이었다.

이 세 근거를 통해 나는 꿈이 검은 안식의 통로이자 장이라는 공간성을 갖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또한, 나의 과거와 미래 사이를 이어주는 현재라는 시간성이라는 것을 재확인했다. 동시에 나를 과거와 미래 어느 쪽에도 일방적으로 기울어지지 않도록 조절해 주는 현실 너머의 장치로도 이해하게 되었다. 야곱의 꿈이 광야와 어둠 속에서 길을 열었고, 허생의 상상이 현실 속 미래를 미리 비추었듯, 이제 나의 안식월과 길 위의 걸음은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꿈의 현재를 드러낸다. 이 이야기들은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방식으로 꿈을 현실과 이어준다. 꿈은 잠든 중에도, 깨어난 중에도 나를 앞으로 이끄는 이정표이며, 걸음마다 현실과 상상을 동시에 품는 살아 있는 선물이다. 길 위에서 걷는 순간, 나는 과거와 미래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지금, 과거가 놓아준 길 위를 미래의 바람을 힘입어 지금 선물처럼 걸어간다. 검은 안식 안에서 꿈은 안식의 과거-미래-현재를 이어주는 세계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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