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은 중의적이다.
절대적 고독의 상태에서도 오직 자신과 마주하며
죽음 너머 삶의 본질을 성찰하는 기회로 삼으려고
분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종말은 자신과 자신이 홀로 대면하는
신성한 고독으로 이끄는 힘이다.
종말의 개념
나는 이번 안식월에서 ‘종말’이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기존의 견해와 달리 이 용어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을 위한 최후의 매듭이며 정돈이라는 데 이르렀다. 공간의 파국이 아니며 시간의 끝도 아니다. 무엇보다 세계 피조물의 관계 단절은 더욱 아니다. 따라서 나에게 종말은 시공간의 죽음 직전 카오스모스의 정점 상황과도 같다. 나아가 종말은 죽음과 생명을 맞닿게 하는 연결고리다. 이로써 생사는 종말이라는 매듭을 통해 세계 안에서 하나처럼 유영한다.
다시 말하면, 나의 종말 개념은 파괴와 생성, 분산과 오염이 정화와 정리에 중의적으로 잇대어 있는 것이다. 안식의 개념처럼 몸을 멈추고 비워내면서 다시 새로운 창조로 나아갈 준비를 하는 것과 같다. 예를 들어 창세기 2장 1~4절의 안식 장면이나 숲이 불타는 안타까운 상황에서도 인위적 손길 없이도 곧 새싹이 돋아나는 상황이 그렇다. 현대인의 관점이라면 다운과 리셋의 동시 동작이라 할 수 있다.
재정의된 종말은 시간과 공간의 완전한 소멸 직전의 ‘과도기’와 같은 상태에 가깝다. 잘 흐르다 소용돌이치는 강물의 여울목 같은 사건이다. 끝과 시작이 맞닿아 있는 일종의 비가시적 경계선이다. 바다의 수평선, 평야의 지평선처럼 해가 지는 순간, 빛이 사라지고 이어서 밤의 시작되는 것과 같다. 낮의 마지막 선과 밤의 첫 줄이 동시에 만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처럼 종말은 끝이면서 동시에 시작하는 개념이다. 동양 철학의 장자에 의하면 거의 무(無)에 가깝다. 원처럼 시작과 끝이 이어져 있는 모양이고, 내용으로도 ‘없음의 있음이며, 있음의 없음’이다. 사라지면서 살아지는 생의 가능성이다.
끝으로 이 종말은 죽음과 생명을 맞닿게 하는 연결고리다. 다시 말해 종말은 철저히 단절된 두 세계(죽음과 생명)를 잇는다. 시간의 관점에서는 과거와 미래를 잇는 현재와 같다. 숫자의 세계에는 (+)와 (-)를 이어주는 0의 자리와 기능과 유비된다. 달리 보면, 파멸과 새싹이 동시에 일어나고 자정이 되면서 동시에 정오를 향해 출발하는 시계의 칩과 같다. 멈춤과 기동이 동시에 일어난다. 순환이면서 통합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 안식월에 기존의 선형적이고 파국적인 종말 개념을 수정할 수 있었다. 순환적 생성이며 통합의 개념으로 확장했다. 따라서, 나의 수정견해는 전통적인 종말 개념의 터에서 특히 철학으로 안식의 의미에 접근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종말은 단순히 파괴가 아니다. 더 나은 창조를 위한 필연적인 아픔이며, 고통이다. 검은 안식은 종말 개념의 외연을 극대화하는 유익한 사유의 장이 되었다.
나의 관찰에 따르면, 종말은 새로운 생으로 이끌어가는 신의 자기희생에 가깝다, 죽음과 삶을 동시에 구현한 것이다. 오직 피조물을 위해 자신부터 내던지는 자기 포기라 할 수 있다. 달리 보면 죽음으로 생명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종말은 이른바 카오스모스(kaosmos)의 실현이다. 이제 내가 사유한 ‘종말의 중의성’을 논거에 따라 탐구해 보자.
친구가 보낸 부고:죽음과 새 삶의 동시성
이에 대해 내가 안식월을 보내며 찾은 나의 논거는 무한히 많다. 그중 세 가지를 이 글에 남겨두려 한다. 친구의 부고와 욘 포세의 소설과 이지수의 그림책이다. 이 세 개의 논거는 종말의 의미가 우리 삶에 중의성을 가진 언어로 이미 깊이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이 논지와 논거는 종말에 담긴 의미를 일의적이 아니라 양의적 또는 중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토대를 제공한다.
나는 ‘종말’이 피조물의 생(生)과 사(死)를 가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경계를 허물 수 있다는 것을 재확신했다. 이 확장된 개념 아래서 나는 삶과 죽음이 더는 단절된 두 개의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더 깊이 깨달았다. 오히려 ‘종말’이라는 매듭을 통해 끊임없이 순환하고 교차하는 하나의 큰 흐름 안에 공존한다는 것도 알았다. 죽음은 종말이라는 개념 아래서 생명과 공존재(共存在)가 되는 것이다.
이런 깨달음은 어느 고요한 오후, 친구의 춘부장 부고를 받으며 시작되었다. 오랜만에 온 연락이 부고라 마음이 무거웠지만, 이렇게라도 친구의 근황을 알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철을 타고 장례식장으로 향하며 친구의 SNS에 올라온 더 긴 부고 전문을 읽었다. 흔들리는 전철 안에서도 나는 꼼짝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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