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 20. 일용할 양식-시작노트

by 푸른킴

썰어두니 풍성하고

찌고 나니 먹음직해서


밥 어딨나, 찾았더니

흰 튀밥 고봉밥인 양


벌써 풍요


1. 배경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전철역을 빠져나오면 공터가 있다. 이 근처에서 매주 금요일 장터가 열린다. 우연히 시간이 맞으면 마실 하듯 둘러본다. 길게 늘어선 여러 노점 한편에 뻥튀기를 전문으로 하는 노부부가 계시다. 어느 날, 쌀 튀밥을 두 봉지 샀다. 양이 적을 줄 알았는데, 두고두고 먹어도 줄지 않았다. 풍성했다.


어느 날, 점심 식사, 평소처럼 제주 당근을 씻어 썰고, 계란을 삶아 접시에 담았다. 밥을 담으려다 문득 테이블 끝에 놓인 쌀 튀밥이 눈에 띄었다. 무심코 남은 한 봉지를 열었다. 밥공기에 담았다. 영락없는 밥이었다. 작가 김정수의 작품 <진달래-축복>(2021)을 닮았다. 옛 고봉밥 모양의 그 진달래 밥은 진달래색도 아름다웠고, 먹어보고 싶을 정도로 보기에도 좋았다. 그렇게 밥그릇에 튀밥을 담아 접시에 올렸다. 당근, 계란과 어우러져 한 끼 식사가 차려졌다. 작은 접시에 담길 정도로 소소하지만, 나로서는 또 한 끼 성찬이었다.


2. 사진

접시를 앞에 두고 습관대로 사진에 담았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었다. 식사를 차릴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다시 열어보니 각 재료를 담아 테이블에 올려 든 그 접시가 한 끼치고는 프레임을 가득 채운 모습에 괜히 넉넉해진다.


무엇보다 재료들의 색이 마음에 들었다. 길게 썬 주황색의 당근, 반으로 잘라놓은 희고 노란 삶은 계란, 꽃 모양 새겨진 전용 접시와 짙은 파랑 밥그릇, 흰 쌀 튀밥, 그리고 은빛 수저, 진갈색 테이블이 내 눈에 모두 조화롭다. 사각형과 타원형, 원형, 직선도 썩 운치 있다. 사진을 보면, 그저 단출하지만, 그 단순함이 풍성한 의미로 다가올 때가 많다.


디카시에서 사진은 그 자체로 하나의 메시지다. 디카시를 연습하면 늘 생각하는 바지만, 사진이 단순히 풍경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설 때가 있다. 그때는 시어가 필요하다.


3. 시어

이 사진 역시 굳이 시어를 쓰지 않아도 충분했다. 그런데 식사를 앞에 두고 간단한 식사 기도를 드리고 난 뒤, 문득 나의 기도를 대신 표현할 시어가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썰어두니 풍성하고/찌고 나니 먹음직해서: 말 그대로 식사를 준비하는 반복된 행동이다. 이 행동을 대구(對句)로 표현했다. 삶은 계란은 거의 빼놓지 않고, 당근과 같은 채소도 빠짐없이 올린다. 썰고 찌는 것은 은근히 귀찮은 일이다. 그러나 맛은 둘째치고 이런 과정이 없이는 식사가 준비되지 않는다. 밀키트나 손질된 채소를 사지 않는 한 손을 바삐 움직여야 한다. 당근은 반 토막을 내 길게 썰어두면 먹는 재미가 있다. 계란도 7분 삶고 7분 식히는 과정을 거친 뒤에야 내가 좋아하는 반숙과 완숙 사이가 만들어진다. 호불호가 있지만, 노른자의 부드러운 맛이 상상될 때 입맛이 싱싱하다. 그러니 이 표현은 내가 이 작은 식사 한 끼를 준비한 그 귀찮은 과정, 그 순간을 버텨낸 뒤 만족스러운 마음을 묘사한 것이다.


밥 어딨나, 찾았더니/흰 튀밥 고봉밥인 양: 당연히 밥을 찾아야 한다. 내가 먹는 밥은 주로 잡곡밥이어서 먹을 때마다 신경 쓰인다. 가끔 흰쌀밥을 먹을 때면, 꿀맛 같다. 이번에는 쌀 튀밥이 먼저 눈에 띄었다. 밥을 닮은 허구의 밥이다. 문득 어린 시절, 어머니가 기어코 차려주었던 고봉밥이 살아났다. 너무 많다면 손사래 쳐도 ‘먹고 더 먹으라’ 시며 내 손을 밀어내고 밥을 밀어주던 어머니의 밥이다.


벌써 풍요: 그 밥이 채소 옆에 올려진 모습을 보니 먹기 전에 이미 온몸이 풍요롭다. 보기에도 좋고, 먹기에도 좋아 보였다. 거기에 이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어머니의 고봉밥 추억이 얹혔으니 ‘먹기도 전에 이미 배부른 식사’ 같다. 풍요라는 말은 보이지 않는 추상이며, 손에 잡히지 않고 눈으로 들어와 마음에 닿는 상태라지만, 이미 한 끼 밥을 먹은 것처럼 행복하다.


일용할 양식: 이런 마음으로 시의 제목을 결국 종교적 의미까지 아우르는 식사 기도로 마감하기로 했다. 화려한 식사는 그 밥상 앞에 선 이의 태도로 결정될 때가 많다. 밥의 초대를 어떤 태도로 받아들이는지가 식사의 풍요를 결정한다는 말이다. ‘일용할 양식’이라는 저 익숙한 말은 그 태도를 결정짓는 키워드다. 겨우 하루 치의 양식을 앞에 두고서도 감사하는 기도는 결핍이면서도 충만이다. 나아가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할 최소한의 평등이다. 부족한 듯해도 충분한, 넘쳐 버리지 않아도 되는, 인간의 몸에 딱 맞을 정도의 행복이다.


덧붙여지는 시어는 사진을 과도하게 해석하지 않는 간결성과 응축미를 지킬 때 효과가 있다. 이번 디카시 시어의 핵심은 ‘짧은 호흡’으로 사진을 견인하는 힘이 있는지였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역으로 사진이 시어의 배경으로 잘 서 있는가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 적절한 기법이 필요하다. 이번에는 대구(對句) 법을 활용했다. 아쉬운 점이 있긴 하지만, 군더더기 없는 문장이 사진의 여백을 시적 의미로 채워주는 데 이바지했다.


4. 의도

한 끼 식사를 준비하는 일은 많은 수고가 필요하다. 나는 오늘도 자기 밥상에 한 그릇 양식을 올리기 위해 수고하는 어떤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하고 싶었다. 할 수 있다면, 그 수고를 다독여보고 싶었다. 시어의 마지막 표현 ‘벌써 풍요’와 제목인 ‘일용할 양식’은 이런 나의 마음을 나름대로 반영한 것이다.


이 한 끼 식사는 내가 선물처럼 받은 일용할 양식이다. 하여, 평소대로 별생각 없이 식사하기 위해 잠시 기도했다. 그 사이, 이 식사의 의미가 새로웠다. 올 한 해도 내가 식사를 스스로 조절하며 지내온 세월이 스쳤다. 하루 식사를 가능한 대로 내 손으로(가족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준비해서 나에게 맞는 요리를 하는 것은 매번 내가 나에게 대접하는 요리였다. 그것이 무엇이든, 내 손과 발을 움직여 식탁을 차린 것이니 더욱 그랬다.


먹는 것을 스스로 조절한다는 것이 언제나 쉽지 않다. 질병으로, 몸의 관리를 위해 음식을 스스로 결핍되게 차려야 하는 일은 어쩌면 고행일 수도 있다. 지금도 그런 일을 해야 하는 이들이 수없이 많을 텐데, 그들이 자기 앞에 놓인 일용할 양식으로도 충분히 만족한 식사가 되길 바란다.


나아가 세상 누군가는 한 끼 식사를 제대로 대접받는 일만큼은 마음껏 누리면 좋겠다는 마음이 적지 않다. 보기에는 화려한 식사는 아닐지 몰라도, 지금 내 앞에 주어진 당근 하나와 튀밥 한 그릇이 그 자체로 나에게 성찬이라는 것을 즐겁게 누렸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기도의 시어마저도 밥알에 잘 섞어두었다.


5. 총평

이 디카시는 사진이 시어를 품는다. 사진 스스로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다행히 ‘나의 소박한 밥상’을 ‘만찬’으로 받아들이고 싶은 의도가 어느 정도 반영된 것 같다. 사진 속의 튀밥 덩어리가 시어와 만나는 순간, 그것은 나에게 가벼운 간식이 아니라 마음을 든든하게 채우는 고봉밥으로 변모했다. 특히 현실의 가벼운 일상과 어머니를 추억하는 마음의 무게(고봉밥)로 자연스럽게 전환된 것도 다행이다.

이번 디카시에서 나는 나의 평범하고 일상적인 사물을 낯설게 하는 연습을 다시 해 볼 수 있었다. 내가 일상적으로 보는 사물이나 풍경을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한다면, 비록 익숙한 단어라도 생경한 울림을 준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이를 위해서는 사진의 구체성과 시어의 추상성이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는 것이 관건이다.

돌아보니 올해도 나의 한 끼 식사는 단출했지만, 이미 풍요로웠다.


디카시 20. 일용할 양식(gemini).jpg

그림. Gemini- 나의 글을 토대로 이미지로 재구성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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