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 22. 동백벽화-시작노트

by 푸른킴

꽃진다고 삶이 질까―

떨어져도 올곧게 붉은 열정 선언


배경

해가 바뀌면 나는 동백꽃이 궁금해진다. 이 제철 꽃이 어떻게 피어 있는가가 아니라, 어떤 모습으로 지고 있는지 알고 싶어진다. 시간을 내어 꽃을 찾았다. 한 농부의 오랜 수고 끝에 마을 한편을 붉게 물든 군락지에 들어서니 길과 꽃이 생각보다 잘 어울려 장관이다. 천천히 정원을 걸었다. 걷는 동안, 곳곳에서 피어 있는 동백과 빠르게 져버린 동백, 이제 막 피기 시작한 어린 동백의 운명이 엇갈린다.


동백은 몸통째 똑바로 떨어진다고들 말한다. 그 떨어짐마저도 숭고한 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런 동백이, 어떤 나무 아래에서는 잎들이 산만하게 흩어져 있는 의외의 모습도 보인다. 새롭다. 그렇게 길을 따라 이리저리 순례하듯 걷다가 어느 구석진 곳 담벼락 아래에 이르렀다. 마침 동백꽃 두 송이가 나무에 기대어 붙어 있는 듯한 모습을 만났다. 찾아오는 이 없는 한 켠에서 마치 “나는 동백이다”라고 선언하는 듯하다. 나는 우연히 그 동백을 만났고, 그 앞에 한참 서 있었다. 무언의 호소가 귀에 닿는 듯하다. 작고 낮은 그 소리를 듣는다.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라고.


사진

굵은 나무를 사진 한가운데에 두었다. 진갈색 나무껍질이 벽처럼 곧게 서 있다. 그 벽에 동백이 붙어 있다. 누군가 일부러 ‘그려 넣은’ 듯하다. 꽃 두 송이를 위아래로 나란히 세워 화면 중심에 담았다. 나무의 결도 선명하게 근접 촬영했다. 많은 세월을 겪어온 나무의 시간 주름이 세로로 깊게 파여 있고, 그 틈을 뚫고 겨울의 위협을 견딘 붉은 꽃이 막 피어 있다.


구도를 보면, 화면 중심에 동백 두 송이가 자리하고 주변의 몇 개 봉오리가 ‘아직’이면서도 ‘곧’을 예고한다. 가지는 가로로 뻗어 있고, 내 시선은 아래에서 조금 위로 향한다. 벽 같은 나무와 그 위에 붙은 생생한 꽃의 대비가 한 장면에 들어있다.


사진 속 색의 대비를 보자면, 거칠고 마른 듯한 갈색의 ‘벽’ 위로, 매끈하고 윤기 있는 잎이 겹친다. 그 사이에서 붉은 꽃잎이 부드럽게 번진다. 서로 다른 질감과 세계가 한 자리에 포개진다. 색과 함께 빛도 선명하다. 맑은 날, 햇빛 덕분인지, 진분홍을 머금은 붉음은 과장되지 않고 오히려 도도해 보인다. 나무 뒤에서 스며드는 그 빛이 꽃을 더 선명하게 밀어 올리고, 노란 꽃술은 붉음의 한가운데에서 심지처럼 화사하게 살아 있다.


시어

사진에 담긴 장면이 너무 선명해서 시어는 오히려 짧게 구성했다. 우선 제목을 먼저 정했다.


동백벽화: 동백은 ‘꽃’이지만 이 디카시에서는 ‘벽화’처럼 묘사했다. 벽화라고 부르는 순간, 이 사진은 자연의 기록에 그치지 않고, 삶을 상징하는 소리로 들린다. 담벼락의 벽화라는 표현은 그 꽃이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말없이도 말을 한다. 내 앞의 동백은 ‘피어 있음’으로 자기 존재를 드러낸다. ‘떨어지려는’ 순간에도 자기 삶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결국, 동백벽화는 두 송이 벽화가 오래된 나무 기둥에 그림처럼 붙어 자신의 마음을 세계에 드러낸다.


꽃진다고 삶이 질까ㅡ: 이 시어는 일반적으로 동백을 상징하는 표현을 빌려온 것이다. 동백은 피어 있을 때보다 떨어질 때 그 의미가 더 또렷해진다고 알려진 꽃이기도 하다. 이 꽃이 ‘진다(落)’는 말은 ‘진다(敗)’가 아니라, 새로운 삶을 ‘짊어진다(負)’는 뜻에 가깝다고 해석한다. 떨어져도 용기를 일깨우는 꽃이라는 말이다. 꽃이 진다고 해서 결코 삶의 끝을 상징하지 않는다는 해석이다. 아무리 여러 번 흔들려도 결국 패배가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꽃이 진다는 사실은 피할 수 없는 절대적인 운명이다. 그러나 동백에서는 그 사실이 삶 전체의 최종 종말이 아니다. 이 시어 끝에 사용한 대시(ㅡ)는 스러지지 않는 생존의 여운, 긴 생의 호흡이 지속된다는 철학을 남기는 기호다.


떨어져도 올곧게 붉은 열정 선언: 이 시어는 두 가지 의미를 하나에 담았다. 하나는 동백이 떨어질 때 보여주는 형상이고, 다른 하나는 동백의 전통적인 꽃말이다. 이 꽃말을 통해 특히 붉은 동백이 가진 ‘사랑의 열정’을 끄집어내려는 것이다. 동백은 떨어진 자리에서도 붉음을 흐트러뜨리지 않는다. 끝까지 한 덩어리로 유지한다. 열정을 품은 붉은 동백은 떨어지는 순간 차가운 세계를 직감하지만, 그런데도 자기 열정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 열정은 흐물한 감정을 겨우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삶과 죽음 앞에서 꿋꿋하게 버티는 태도에 가깝다. 내가 선택한 ‘올곧게’는 바로 이 정신을 압축한다. 떨어짐 이후에도 자세가 무너지지 않는 붉음, 사라짐 속에서도 계속되는 삶에 대한 열정 말이다. 나무에 붙어 있는 듯한 저 동백에서, 나는 그 떨어짐의 역설이 들려주는 소리를 듣는다.


결국, 이 시어는 동백의 꽃말과 색상, 그리고 ‘붙어 있음’의 형상을 종합해, 디카시의 사진을 세계 속 선언문으로 더욱 도드라지게 하려는 표현이다.


의도

모처럼 1월의 동백꽃을 볼 기회를 가졌다. 2월만 되어도 동백은 많이 져버린다. 올해는 기회가 좋았다. 나는 이 좋은 기회에 의미 있는 생생한 동백꽃을 만났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디카시에 담아두려 했다. 하여, 이 디카시는 동백 하면 떠오르는 ‘낙화=꿋꿋한 생존’이라는 의미를 다시 일깨우고 싶었다. ‘낙화는 패배’라는 일반적인 꽃의 해석을 끊어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동백은 피었다가 지는 꽃이 아니다. 떨어진 뒤에도 색과 자세, 의미로 살아 있는 꽃이다. 이 디카시에서 나는 나에게 이렇게 다시 선언하고 싶었다.

사라짐은 패배가 아니다.

끝남은 무의미하지 않다.


다시 말해, 이 말은 떨어짐 이후에도 동백이 살아 있듯, 인간의 열정이 어떤 자세로 남을 수 있는지를 나에게 되묻는 것이다. 사진은 이런 확신과 새로운 질문에 잘 어울렸다고 생각한다. 하여, 나무 기둥에서 상상하는 거친 벽 같은 세계 한가운데, 당당하게 붙어 있는 저 붉음이 ‘아직 말할 것이 있다’고 버티는 것을 내 몸에 새겨두고 싶었다.


총평

사진을 찍을 때 너른 정원 곳곳에 피어 있는 동백꽃이 쉼 없이 바다처럼 출렁이고 있었다. 그 사이에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나는 정원의 끝에 있는 담까지 걸어가다 우연히 이 나무에 붙은 듯한 동백을 만났다. 숲을 헤치고 꽃에 다가갔다. 사진으로 담았다.


시어는 저녁 무렵 남겼다. 사진의 감동이 어느 정도 식은 뒤에 남긴 시어가 오히려 생동감 있게 들린다. 건조하긴 해도 사진의 의미를 더 잘 드러나게 했다. 문득 ‘벽,’ ‘선언’이라는 말을 쓰고 보니 이 말이 나에게 오래전 대자보(大字報)를 연상시켰다. 잠시 ‘붉음’에 담긴 ‘열정’, 떨어져도 ‘살아 있는’ 생의 의지를 다시 떠올렸다. 그렇게 이 붉은 꽃은 지나가는 시절, 잠깐 누리는 계절 장식이 아니라 생의 의지를 유지하는 생존의 표식으로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나의 시어는 그 장면을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데 적절해 보인다. 수사적 질문으로 시작해, 내적 선언으로 끝내는 리듬이 어느 정도 살아난 것도 다행이다. 이 작품의 힘이 있다면 바로 이런 점일지 모른다. 지는 것에 낙망하지 않고, 지는 것으로 삶을 판단하지 않는다는 꽃의 정신 말이다. 이처럼 이 디카시에서 동백의 붉음은 그저 낭만의 색이 아니다. 떨어짐 이후에도 꺾이지 않는 생의 의지를 한 줄기 윤곽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올해 이른 시기, 겨울의 한복판에서 동백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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