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풀 Feb 23. 2023

날카로운 서브에도 웃으며 리시브하듯 말하기

업무 말하기·카톡 스킬 1 - 지시 대신 권유

디지털 뉴스 편집 부서에 배치받고 새로 생긴 단체 카톡방만해도 거의 열 개. 취재부서 별로 디지털뉴스팀원과 각 부서원(장)이 함께하는 단톡방이 있다. 단톡방에서는 주로 기사 제목이나 내용에 관한 수정 요청과 반영이 이뤄진다. 때때로 버그, 오류 수정 제보도 온다. 디지털 관련 문의는 거의 다 여길 통해 온다고 보면 된다. 이때 직접 처리(해결)할 수 있는 건 절반 정도다. 기술적인 건 운영팀이나 전산팀에 다시 요청해야 한다.


단톡방 속 말투는 다양하다. [수정 부탁드립니다] 명료한 어투부터 [혹시... 부탁드려도 될까요?] 어색함과 불편함 속에서 예의를 차리기 위한 말투까지. 보통 연차와 카톡의 길이는 반비례한다. 선배일수록 말이 짧고 연차가 낮은 후배일수록 말이 길어진다. 나는 보통 [넵]으로 답하는 편이다. 오는 말에 따라 가끔 물결(~)을 붙이기도 한다. 요청 사항 반영 뒤 따라오는 [감사합니다]엔 언제부터인가 대답하지 않게 됐다. 의례상 하는 말에 일일이 대답하면 단톡방 울림만 하나 더 늘릴 뿐이니까.     


단톡방 알림이 울리는 건 처리할 일이 하나 생겼다는 거다. 업무가 느는 걸 반길 직장인은 드물다. 유쾌할 수만은 없는 마음으로 카톡창을 열면, 어김없이 요청 사항이라 든지가 와 있다. 그저 업무를 하는 것일 뿐인데 괜히 싫은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일과 감정을 분리하고 싶은데 쉽지 않다. 일에 감정을 섞지 않기 위해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 업무 중 말하기(카톡) 스킬을 가다듬고 싶어졌다. 운이 좋게도 같은 팀 동료들은 이에 매우 유능하다. 아직 서툰 나는 잘 보고 따라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회사에서의 말하기(카톡) 스킬은 날카로운 서브를 부드럽게 리시브하는 모양새와 비슷하다. 불편함을 드러내지 않고 거슬림을 티 내지 않는 게 중요하다. 이때 감정을 내비치지 않을수록 우아할 수 있다. (우아하게 일하기. 이걸 또 정말 잘하는 선배가 있다. 바로 Y선배. Y선배는 전 부서에서도 몇 번 협업하면서 참 우아한 사회인이구나, 닮고 싶다 생각했는데 옮긴 이 부서에서도 여전한 나의 롤모델이다. 무튼 우아하게 일하는 법에 대해서는 나중에 또 정리해야지.)     


오늘 업무 중에는 테스트 중 잘못 게재된 모바일 페이지 오류를 제보하는 카톡이 왔다. [모바일에서 OOO 기사가 걸려있어서 말씀드립니다. 저만 그런건지;;] 잘못된 것을 알려주는 건 고마운 일이다. 알릴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품을 들여 알려주는 선의니까. 그런데 내가, 우리 팀이 한 일이 아닌데 늘 이곳으로 요청, 문의가 오다 보니 '아니 또? 이건 뭐지?' 날 선 마음이 불쑥 앞서기도 한다. 카톡을 보고 팀장에게 오류를 보고하자 팀장이 운영팀에 가서 문제를 해결하고 돌아왔다.



문제가 해결되고 Y선배는 단톡방에서 [여전히 그런가요?] 하고 넌지시 물었다.     

[지금은 바뀌었습니다!!] [넵] 그렇게 상황종료.


"여전히 그런가요?"

상황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대신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확인해 보라는 메시지를 일곱 글자로 전달하는 센스에 감탄했다. 같은 일곱 글자라도 '확인 부탁드려요'와 '여전히 그런가요?'는 다르다. 포인트를 콕 집어 뭐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내가 듣고 싶은 쪽은 '여전히 그런가요?'다. 왠지 더 부드럽고 편안하다. 확인하라고 정중하게 '지시'하는 게 아니라 확인을 '권유'하는 말투여서 그런가.


지시나 명령에는 자연적으로 반발심이 따라붙는다. 방 좀 치울래? 정돈된 방에서 지내는 게 쾌적하다는 걸 알면서도 방을 치우라는 소리를 들으면 갑자기 청소가 더 하기 싫어지는 것처럼, 아무리 선의를 품은 다정한 말이라 해도 지시나 명령이면 하기 싫은 마음이 반사적으로 먼저 솟는다. 자발적으로 행동을 추동하게 하는 말투는 노련하고 우아하다. 상대의 기분을 살피면서도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만든다. 이런 말주변이 회사에서 (업무) 실적, 평판 모두를 놓치지 않게 하는 건 아닐까.


이게 뭐라고 싶을 수도 있지만, 나는 이왕이면 어떤 서브도 부드럽게 리시브하는 우아한 업무 말투를 쓰고 싶다. 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를 뿐 아니라, 듣는 이의 감정도 말은 하는 내 마음도 거스르지 않을 때 편안하니까. 결국 우리는 '함께' 일하고, 그 과정에서 소통이란 건 작은 말 한마디, 카톡에서 시작해 결국은 그게 전부이기도 하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