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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명의 관객 Jul 12. 2024

비포 선라이즈(Before sunrise)

애프터 선라이즈, 사랑의 시작이다.


셀린은 기차 옆자리 부부의 대화가 시끄러워 조용히 뒷좌석으로 자리를 옮긴다. 옮긴 자리 옆에서 제시가 책을 보고 있다. 어리둥절한 제시는 셀린을 슬쩍 보더니 이내 앞좌석 부부를 한 번 쳐다보고는 그녀가 자리를 옮긴 이유를 깨닫는다. 둘은 눈빛을 주고받고는 슬쩍 미소 짓는다. 그러고는 제시가 입을 연다. 
“저 두 사람 왜 저러는지 알아요?”
“오랜 부부일수록 서로 말이 안 통한다잖아요.”
부싯돌 두 개가 서로 부딪히는 순간이다. 그들의 대화는 불이 붙는 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서 발생한 불꽃은 꺼질 듯 꺼지지 않는다. 인간관계, 사랑, 교육, 성적 가치관, 철학 등 다채로운 주제로 대화의 풀을 계속 교체해가며 불꽃을 태운다. <비포 선라이즈>는 이 불꽃을 관찰하는 영화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제목을 통해 언제까지 지속되는 불꽃인지 알고 있다. 비포 선라이즈,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기 충분한 시간이다.



사랑은 지금 옆에 없는 상대방의 시간을 절실히 상상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사랑에 빠져야 한다. <비포 선라이즈>는 ‘사랑 영화’가 아니라 ‘사랑에 빠지는 과정의 영화’다. 함께 보내는 타오르는 시간은 사랑이 아니다. 이 시간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다.


<비포 선라이즈>는 리얼리즘 영화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판타지 같은 로맨스다. 리얼리즘과 판타지. 성격이 정반대일 것 같은 두 단어가 영화에 공존한다. 영화 문법에서 흔한 플래시백 하나 등장하지 않고 평면적으로 흘러간다는 점에서 리얼리즘적이고 계획 없이 여정을 떠난 두 남녀가 우연히 기차에서 만나 낭만적인 하루를 보낸다는 점에서 판타지스럽다. 또, 그시대와 지역을 살아본 적 없는 관객들에게 근원 없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노스탤지어다.



<비포 선라이즈>를 보다 보면 평화로운 휴가지의 풍경에 감탄하다 어느 순간 뒷배경은 보이지 않고 두 사람의 대화에만 집중하게 된다. 성향이 비슷한 듯하면서도 전혀 다른 두 사람의 정서적 온도가 부딪히는 대화들은 사건이랄 것이 없는 영화에 흐름을 만들어 낸다. 시간과 공간이 굉장히 집약되어 있는 비포 시리즈 특성상 무수한 대사들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 동력이다. 두 사람은 너무 잘 맞기보다는 서로 다른 관점을 지니고 들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기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 둘의 차이점은 논쟁이 되지 않고 되려 하룻밤 여행을 이어 나가는 동력이 된다.



기차에서 시작된 대화는 카페, 술집, 서점, 유람선, 공원으로 이동하면서도 끊임없이 이어진다. 새벽 즈음 두 사람은 골목에 걸터 앉는다. 그리고 셀린이 이야기한다. “만약 신이 있다면 내 안이나 당신 안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사이의 공간에 존재할 거야.” 그런데 이후 곧바로 이어져야할 제시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셀린의 말을 듣고도 제시는 셀린을 지긋이 쳐다볼 뿐 말을 덧붙이지 않는다. 침묵이 흐른다. 말이 잘 통하는 두 사람의 여정에서 사랑에 빠지는 눈빛을 발견한 순간은 침묵의 시간이었다.



하루를 즐기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자신만만했던 둘은 떠나는 기차 앞에서 결국 6개월 후에 다시 만나자 기약한다. 불꽃이 꺼지면 사랑도 끝난다고 생각했던 둘이지만, 사실 사랑은 꺼진 불꽃이다. 상대방과 타오르는 시간을 보냈던 사람은 필연적으로 지금 옆에 없는 상대의 시간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니까 <비포 선라이즈>는 이 사실을 몰랐던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프레임 안에 정성스레 담아내는 영화다. 영화의 마지막, 셀린은 기차를 타고 떠나고, 제시는 버스에 탑승한다. 셀린은 벽에 기대어 창밖을 바라본다. 제시는 앞좌석을 멍하니 쳐다본다. 그리고 이내 두사람은 눈을 감는다. 서로의 시간을 마음속에 그리는 듯하다. 애프터 선라이즈, 사랑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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