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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바다

Cancun / Nice / Great Ocean Road

by LUX


나는 위로 올려다봐야 하는 산보다는 같은 선상에서 바라볼 수 있는 바다를 더 좋아한다. 바다뿐만 아니라 호수나 계곡 등 무의식적으로 물가를 선호하고, 멍하니 앉아서 물멍하는 것도 좋아한다. 세계를 여행하다 보면 정말 아름다운 곳들을 눈에 담을 수 있다. 많은 바다를 마주했었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세 곳을 복기해 보려고 한다.








Cancún, Mexico

2023 June


칸쿤은 멕시코 Yucatan 반도에 있는 휴양지로, 미국에 은퇴한 노인들이 가기 시작하면서 유명해졌고 우리나라에는 신혼여행지로 유명하다. 하지만 나는 그곳을 혼자서 다녀왔다. 23년, 서른 살이 된 기념으로.



비행기에서 바라 본 칸쿤
첫날

6월, 비성수기에 나는 칸쿤행을 감행했다. 카리브해에 해초가 해변가로 밀려와 검게 물들고 비가 자주 와서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는 시기라고 했지만 나는 오히려 좋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출발했다. 비성수기답게 초호화 리조트가 특가를 내놓았고 나는 고민도 없이 예약했다.


도착한 칸쿤의 첫 느낌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굉장히 건조한 곳에서 살다가 간 터라 오랜만에 폐부 깊숙이까지 들어오는 습한 공기가 버거웠다. 습하고 더운,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주르륵 흐르는 날씨에 내가 휴양지에 왔음을 인지했다. 살짝 흐린 하늘에 가득한 구름은 내게 바다 빛만큼 푸른 하늘을 보여주지 않았다. 예상을 하고 온 거라 실망하지 않았다. 리조트에 도착했을 때 바람이 거세게 불더니 리조트 수영장에서 칸쿤을 만연히 느끼던 사람들이 도망치듯 건물로 들어섰다. 막 건물 밖으로 나가 이 습한 공기를 즐기려던 나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으나 여전히 기뻤다. 들이마신 습한 공기 안에 내가 사랑하는 약간은 비릿한 그 바다 내음이 가득했거든.





첫날 석양

체크인할 때 예약했던 식당 가기 전, 준비를 하고 테라스로 나왔다. 바다만큼이나 내가 사랑했던 석양이 푸른 하늘을 가르고 퍼지고 있었다. 윤슬을 좋아한다. 한낮의 윤슬도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지만, 석양이 질 때 그 색을 온전히 머금은 바다도 아름답다. 테라스에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며 위로를 받았다. 이상하게 울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둘째 날, 생일 아침

아침에 눈 뜨자마자 커튼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에 단말마의 비명을 내질렀다. 세수하고 선크림을 바를 겨를도 없이 테라스 문을 박차고 나섰다. 내 생일을 축하하는 것 같은 모든 것들에 함박 미소를 지었다. 눈앞에 놓인 맑은 하늘과 온갖 푸른색을 그라데이션으로 펼쳐놓은 것 같은 카리브해, 이른 아침임에도 부서지는 강렬한 볕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둘째 날 석양

해변가에 누워 하루 종일 카리브해를 눈에 담았다. 내리쬐는 뜨거운 볕이 왜인지 나를 감싸 안아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불어오는 짠 내음을 머금은 습한 바람은 먹지 않아도 나를 배부르게 했고, 저 멀리 보이는 해안선을 바라보고 있자면 머릿속은 온통 파랑으로 물들었다 그 어떤 것도 남지 않고. 손에 잡힐 것처럼 낮게 앉은 구름을 보며 내 기분은 on Clould 9! 그 자체였다.


우연한 기회에 이곳에 놀러 온 사람들과 스몰 톡 할 기회가 있었는데, 혼자 왔다는 나를 신기해했다. 하지만 나는 전혀 외롭다는 생각을 하지도 않았고 외롭지도 않았다. 오감을 통해서 내게 닿는 카리브해 대자연이 내 친구고 내 가족이고, 내 여행 메이트였으니까.





마지막 날

오기 전까지 카리브해가 이렇게 아름다운 곳인지 몰랐다. 주변에서 북미에 왔으면 카리브해는 꼭 봐줘야 한다고, 그 시작은 칸쿤이라고 했을 때 시큰둥했지만 이날을 기점으로 나는 카리브해와 사랑에 빠졌다. 기후 때문일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웃음이 많았고 여유로운듯했다.


가지고 있던 무거운 짐도 어딘가에 내려놓고 온전히 내 눈앞에 놓인 대자연을 즐기며 감탄할 수 있는 곳. 칸쿤의 카리브해는 뜨거운 태양과 습한 공기마저도 더운 걸 싫어하는 나를 미소 짓게 하는 그런 곳이다.











Nice, France

2021 October


니스는 프랑스 남부 도시들 중에서 아름다운 석양을 가진 걸로 유명한 곳이다. 프랑스 제2의 도시인 마르세유 보다 치안도 안전하고 근처에 작고 아름다운 소도시들이 많다. 프랑스는 항상 북쪽이나 동쪽만 방문했기에 한 번쯤은 남쪽으로 가보자 싶어서 다녀왔다. 사실 바다가 보고 싶었다. 영국에 살던 시기였지만 바다는 좀 멀어서 보기 힘들었고, 가을의 지중해가 운치 있다고 해서 결정했다.



늦은 오후 니스

니스의 공항은 니스 한복판과 매우 가까이 위치해 있어서 착륙하면서 니스를 먼저 한눈에 담아 볼 수 있다. 비행기에서 먼저 맞이한 니스의 모습에 빨리 비행기에서 내리고 싶었다. 가을이라 그런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과 내가 있었던 영국보다 따뜻한 날씨,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이 비행기에서 막 내린 나를 설레게 했다.


마침내 내가 바다를 마주한 순간, 눈에 푸른색이 가득 담겼던 그 순간 당장이라도 그 근처로 달려가고 싶었다. 어린아이처럼 신이 나서 발을 동동 굴렀던 것도 같다.





마침내 도착한 해변

니스 해변은 보통의 해변과 다르게 모래가 아닌 자갈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파도가 들어와서 인사하고 다시 밀려 나가는 그 순간 파도 소리와 함께 자갈이 구르는 소리가 함께 들려서 재밌다.


아직도 여름을 보내지 못하겠는지 니스의 10월은 해 지는 늦은 오후에도 꽤 따뜻했다. 부는 바람에는 습기가 없고 건조했고 부는 바람에도 짠 내음이 없었다. 우리가 전형적으로 프랑스인 하면 생각하는 그런 성향과 굉장히 닮았다고 해야 할까. 감은 눈 사이로 들어오는 붉은빛과 들려오는 독특한 소리, 그리고 코 안을 가득 메운 특유의 바다 내음.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했다.





때 늦은 파라솔

혼자 여행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지만, 남부 프랑스의 악명을 들은 나는 동행자를 구했다. 그 언니 숙소에 있던 파라솔을 들고 아무도 없는 자갈밭 위에 파라솔을 꽂고 앉았다. 지는 노을과 다가왔다 멀어지는 파도를 보며 해변에 오는 길에 산 햄버거 세트를 먹었다. 그러면서도 쉴 새 없이 핸드폰과 카메라로 사진을 남겼다. 렌즈 안에 이곳의 풍경이 담기지 않아 어찌나 아쉽던지.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우리에게 한 여성분이 다가왔다. 저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는데 그 앞에 앉아 있는 우리가 이 풍경에 조화롭게 녹아져 있어 사진 찍지 않을 수 없었다며 에어드롭으로 보내주겠다고. 고마운 마음에 우리는 그 분과 일행을 지는 해 아래서 사진 찍어 똑같이 공유해 드렸던 기억이 있다.


이 경관 아래, 모두 감성적이었다. 그 누가 그곳에서 감성적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

황홀했다. 지는 해가 만들어내는 윤슬도 밝게 뜬 달빛이 만들어낸 윤슬도. 내려가는 해와 뜨는 달이 만들어낸 분홍빛 하늘은 아름답다는 말로 다 할 수 없었고, 그저 감탄만 내뱉게 했다. 점차 느려지는 파도도 좀 전 보다 차가워진 바람도 이 풍경에 모두 어우러져 황홀하다는 말을 절로 내뱉게 했다. 너무 좋아서 '와... 아, 진짜...' 이 말만 반복했었지. 살면서 본 가장 아름다운 장면들 중 탑 3 안에 꼽는다.





해가 진 니스

그렇게 동행 언니와 나는 밤이 새도록, 해가 완전히 사라지고 세상에 남은 빛은 달빛뿐일 때까지 앉아서 이곳을 관망했다. 분명 이곳과 어울리는 노래를 듣자며 몇 곡 들었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때의 독특한 파도 소리는 기억하면서도 말이다.





Eze
오후의 니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인 줄 모르고 짧게 일정을 잡아 개탄스러웠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이 바다의 끝은 어딜까. 해변가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 옆 도시 Eze 정원에 올라서서 바다를 바라보며 한참을 생각했다. 당장이라도 이 한 몸을 저 푸른 바다에 던지고 싶었다. 자꾸만 나를 부르는 것 같은 기분에 또다시 나는 해가 지도록 지중해 근처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른 아침부터 해가 지고 달이 뜬 그 모든 시간들이 아름다운 곳, 나는 니스를 그렇게 말하고 싶다.











Great Ocean Road, Australia

2016 February


남극해를 바라보는 곳, 호주 남동부에 길게 늘어 놓여 있는 그레이트 오션 로드. 호주에서 멜버른을 가면 꼭 방문해야 할 곳 중에 하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 도로로 늘 소개되는 곳이기도 하고. 물을 사랑하는 내가 가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는 곳이었다.




도착하자마자 나를 강타한 거센 바람에 깜짝 놀랐다. 앞으로 나아가는 게 힘겨울 정도였고 귀에는 오직 거센 바람 소리와 그 바람에 휩쓸리는 파도 소리만 가득했다. '와!' 내가 살면서 본 가장 거대한 해안이었다. 대자연이 유명한 곳이라고 익히 들었지만, 그 대자연을 몸소 맞이했을 때의 기분이란. 저 멀리까지 뻗어진 해안선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야호! 안녕!' 부끄러운 것도 없었다 모두가 그러고 있었기에. 게다가 아무리 소리쳐도 내 목소리는 바람과 파도 소리에 묻혀 다른 이에게 크게 닿지 않았다. 내게도 다른 이의 목소리가 그다지 크게 들리지 않았으니까.





데이투어

쑥쑥 빠지는 모래를 밟고 파도에 가까이 다가가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부는 바람에 몸을 가누기도 힘들었으니까. 잔잔하지 않고 정말 거세게 나를 위협하듯 쳐 오르는 파도도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모든 걸 태울 기세로 내리쬐는 아주 뜨거운 볕도. 결국 호주의 볕을 얕봤던 나는 화상을 입었다. 조금씩 따가워졌음에도 나는 이곳을 즐기는 걸 멈출 수 없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스트레스가 저 멀리 불어 가는 바람과 파도를 타고 사라지는 것 같았다.


아무런 생각도 기대로 없이 떠났던 호주, 한 달의 여행 동안 호주 여러 도시의 바다를 접했지만 멜버른에서 마주했던 그레이트 오션 로드가 최고였다. 지금도 누군가 멋진 바다라고 하면 이곳과 견주어 생각할 정도로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이고 해변이다.











카리브해, 지중해, 남극해 - 내가 손에 꼽는 바다다. 내가 아직 가보지 못한 많은 바다들이 있어서 나중에 다른 바다가 추가되거나 순위가 바뀔 수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바다는 그 순간 내가 쓰고 있던 가면을 모두 벗긴다. 그냥 있는 나를 그대로 보여달라 말한다. 그래서 그런지 바다에 가면 자꾸만 울고 싶고 소리치고 싶다. 때로는 바다가 힘겨웠던 나를 위로하는 것도 같고. 바다가 내게 보여주는 모든 것들이 내 오감을 사로잡아 다른 생각을 하지 않게 해서 그럴까. 나는 바다가 너무 좋다. 그럴 수만 있다면 항상 곁에 두고 싶을 정도로.


지나가는 소리로 여생의 끝자락은 바닷가에서 보내고 싶다 하는데 그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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