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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들의 도시; NYC

22 Winter / 23 Summer

by LUX



IMG_4535.JPG LGA 공항

많은 미드와 영화의 배경이 되고 자본주의가 어떤 건지 숨 쉬듯 느낄 수 있는, 지구촌에 존재하는 모든 도시들의 도시로 통하는 곳, 뉴욕. 내게는 환상의 나라 같은 그곳을 나는 가장 춥고 더울 때 다녀왔다.








Dec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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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

북미에 한파가 찾아왔던 날 나는 해가 뜨지 않은 이른 새벽부터 토론토 공항으로 향했다. 언젠가 크리스마스 연휴를 뉴욕에서 보내고 말겠다는 내 버킷리스트를 실현하기 위해서. 날도 춥고 위험하게 '나 여행 왔음!'을 티 내며 캐리어를 끌고 대중교통을 타고 싶지 않아서 뉴욕 공항에 도착한 나는 우버를 불렀다. 비싼 금액이었지만 따뜻하고 안전하게 나를 호텔 앞에 내려줬다. 택시에 내리자마자 폐부에 들어차는 공기는 캐나다와 다를 바가 없었다. 뉴스에는 100년 만의 한파로 돌아가신 분들이 꽤 발생하였다는 소식을 대서특필했을 정도로 뉴욕은 너무 추웠다. 가방을 끌고 나는 다급하게 호텔 안으로 들어섰다. 알록달록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나를 반겼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창문을 통해 보이는 풍경이 멋지다는 말에 고른 호텔이었다. 근처에 UN 건물이 있어 치안도 꽤 좋다고 했고. 호텔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풍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왼쪽은 이스트강이, 오른쪽으로는 뉴욕에서 유명한 고층 건물들이 모두 보였다. 그 순간 내가 정말 크리스마스 연휴에 뉴욕에 있음을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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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스러운 표지판과 노란 택시 / 그랜드 스테이션

나가자마자 온 피부가 빨갛게 변하고 찢어질 것 같은 통증에 인상을 찌푸리다가도 주변을 둘러보면 웃음이 나왔다. 하늘을 너무도 맑았다. Crystal clear라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입을 수 있는 모든 옷들을 껴입고 근처 역으로 향했다. 워낙 교통비가 비싼 탓에, 나 같은 뚜벅이는 웬만하면 7일권을 사는 게 좋다고 했다. 그랜드 스테이션은 꽤 큰 역이라 기계가 여러 언어를 지원했는데 한국어도 있었다. 모국어가 없다면 영어가 모국어가 되지만, 한국어가 있는데 영어로 굳이 살 필요 없지 싶었다.


7일권을 사고 근처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같은 구역에 세 개의 다른 버스 정류장이 있어서 당황했지만, 표시가 잘 되어있어서 무사히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아마 2024년 내년부터는 우리가 모두 아는, 기계에 가져다 대는 버스 카드로 바뀌는 것 같은데, 그 당시 7일권은 기계 안에 빨려 내려갔다가 마그네틱 읽히고 다시 올라오는 그런 카드였다. 그래서 기계에 카드를 올바른 방향으로 넣어야 하는데 인터넷에서 다 알아보고 갔음에도 세 번 만에 성공했다. 자리에 앉아서 카드를 핸드폰 뒤에 수납하려는데, 옆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가 그렇게 넣으면 카드가 손상된다며 반대로 뒤집어 넣으라고 하셨다. 감사하다는 내 말에 웃으시면서 Stay warm! 하시고는 다음 정류장에 내리셨는데 뉴욕에서의 시작이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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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탄

멧 갈라가 열리는 그 MET에 드디어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서 걸어오는 그 짧은 길이 너무도 추웠지만 가는 그 길에 너무 설레서 추위 따위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유명세도 있고 날씨도 춥고 게다가 크리스마스 연휴가 길기도 해서 그런지 내부에 사람이 정말로 많았다. 사람들을 뚫고 팸플릿을 보며 차근차근 작품들을 마주했다. 팸플릿 속 지도를 보니 도무지 오늘 하루 만에 볼 수 없겠다 싶었다.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 프랑스 루브르, 그리고 영국 대영박물관만큼 소장 작품이 많고 규모도 상당했다. 시간 여유를 가지고 왔다면 하루 종일 있어도 좋을 것 같은 곳이었다. 아무래도 아쉬움을 남겨야 또 오게 될 테니 아쉽지만 보지 못한 작품들을 뒤로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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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스퀘어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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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호

아무래도 미국이라 동행을 구했다. MET에서 만나서 우리는 각자 먹고 싶은 게 달랐기도 했고 날이 너무 추워서 밥을 먹고 저녁에 크리스마스 장식이 유명한 다이커헤이츠를 가기로 했다. 추울 땐 국물 있는 게 최고지, 하는 마음으로 나는 쌀국수를 먹었다. 너무 추워서 호텔에 들어갔다 나올까도 고민했지만, 그럴 시간에 구경을 더 하고 싶어서 무리해서 걸어 다녔다. 뉴욕이 배경인 영화나 드라마에 꼭 나오는 워싱턴 스퀘어와 소호를 걸어 다니며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그러다 정말 못 참을 정도로 춥고 힘들어서 르뱅쿠키에 들어가 갓 나온 따뜻한 쿠키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커피로 추위를 떨쳐냈다.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이상하게 낯익은 미디어를 통해 이미 여러 번 경험한 모습들이 시야에 잡히니 내가 마치 영화나 드라마 속 한 장명에 있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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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 마주한 내가 좋아하는 힙한 스타일의 가게들

소호에서 만나기로 한 동행은 결국 사실 뉴욕에 오기 전부터 문제가 많았다. 원래 나와 24일 호텔방을 쉐어하기로 했었다. 왜냐면 밴쿠버에서 친구가 그다음 날에 도착할 예정이었어서. 하지만 24일 일주일 전에 갑자기 본인과 전체 기간을 쉐어할 사람이 생겼다며 연락해 왔고, 덕분에 아주 급하게 나는 호텔을 찾아야 했다. 물론 엄청 비쌌고.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기려고 했는데, 기다리는 내게 그분은 본인과 방을 같이 쓰는 분과 다이커 헤이츠까지 호텔에서 바로 우버를 타고 갈 거라면서 알아서 오라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날도 추운데 기다려 달라고 그래서 기다려줬더니만. 이런 식으로 할 거면 약속을 왜 하냐고 할 말을 하고 차단해 버렸다. 혼자 가기에는 무리가 있는 거리에 위험하기도 해서 나는 그대로 호텔로 향했다.


지하철은 절대 혼자 타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오기도 했고, 어두운 밤 혼자는 도무지 타기가 두려워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버스 정류장이라고 나와 있는 곳에 정류장 표시가 없어서 한참 헤매다가 탔다. 노상방뇨하는 사람, 마약 하는 사람, 구걸하는 사람들 투성이인 길에서 나는 너무도 무서웠다. 부디 무사히 호텔에 도착하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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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야경

무사히 호텔에 도착했다. 얼음장처럼 차가웠던 몸을 녹이며 커튼을 걷어냈을 때 시야에 가득 찬 야경이 나를 위로했다. 반짝이는 불빛들이 모두 내 곁에 내려앉아 나를 다독이는 것 같은 느낌. 씻고 나서 스마트 티비로 캐럴을 틀고 한참을 창가에 앉아 구경했다. 크리스마스이브가 그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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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오늘 오기로 했던 친구가 못 오게 되었다. 밴쿠버에 폭설이 내렸고 공항 운행이 중단되어서. 나는 그래서 또 급하게 동행을 구했다. 남는 건 사진뿐인데 사진을 못 남긴다면 너무 속상할 것도 같고 도무지 혼자는 다닐 수 없겠다 싶어서. 동행과 오전에 만나기로 하고 나는 베이글과 커피를 사러 잠시 나갔다 왔다. 코트에 롱패딩까지 입었는데도 왜 이리 추운 건지. 오늘 과연 이 추위를 뚫고 크리스마스를 즐길 수 있을까 걱정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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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ble Collegiate Church

내 예상보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미국은 화려하지 않았다. 유럽의 크리스마스를 기대해서 그런 걸까. 하지만 이렇게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면 보이는 작은 장식들이 마음을 설레게 했다. 뉴욕에서의 크리스마스, 딱히 특별한 이벤트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한 걸음 한 걸음 내디 때마다 로맨틱함이 나를 에워싸는지 구름 위를 걷는 느낌이었다. 아마 버킷리스트를 실현 중이었기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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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트 공원 / 뉴욕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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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펠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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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스퀘어

크리스마스에는 정말 큰 체인점이나 유대인들이 운영하는 가게가 아니고는 모두 문을 닫는다. 그래서 이 추위에서 길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꼭 정말 한 번쯤은 록펠러 센터에서 스케이트를 타보고 싶었는데, 사람이 너무 많고 추워서 타지는 못했지만, 눈에 담으니 울컥 눈물이 차오르며 지난 몇 개월간의 고생을 보상받는 것 같기도 했다.


뉴욕 하면 제일 먼저 나오는 곳, 타임스퀘어. 생각보다 별로였다. 그냥 수많은 전광판과 수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차로 가득한 곳. 곳곳에 소매치기도 많고. 그곳에 들어섰을 때, 나는 그저 '이게 다야...?'라는 말만 내뱉었던 것 같다. 타임스퀘어만큼은 영상으로 보는 게 더 낫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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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여신상

자유의 여신상이 엄청 거대하니 멀리서 보는 편이 훨씬 낫다는 블로그 포스팅의 조언을 받아 나는 페리 위에서 보기로 마음먹었다. 뉴욕에는 무료 통근 페리가 있는데 왕복 40분 정도 된다. 날이 워낙 추워서 강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기가 조금 두려웠지만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 페리 위에서 보는 맨해튼의 고층 빌딩과 그 아래에 놓인 푸른 강물이 그리고 그 위로는 아주 맑은 하늘이 내 근심 걱정을 모두 덜어가 바람 위에 실어 날려 보내주었다. 다시 생각해도 정말 추웠지만 페리 위에서 찍은 영상과 사진에는 내 웃음이 가득했다. 그것들이 내가 추위를 잊을 정도로 정말 행복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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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지하철 / 차이나타운

페리를 타고 다시 맨해튼으로 돌아온 우리는 그제야 느껴지는 추위에 몸을 녹이러 갈 곳을 찾아 헤맸다. 우리의 선택은 쌀국수. 원래는 훠궈를 먹을 생각이었으나 여느 차이나타운 혹은 아시안 음식점처럼 현금만 받는다고 하여 근처에 카드를 받는 쌀국수 집으로 향했다. 문제는 차이나타운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오려면 한참 남았다는 것이었고, 더는 이 추위에 버틸 자신이 없어 둘은 큰 맘을 먹고 지하철에 올랐다. 지하철에는 이상한 사람이 대자로 좌석에 누워 있어 당황스러웠지만 큰 문제없이 지하철과 역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덤보

꼭 정말 내가 꼭 방문하고 싶던 곳이 덤보였다. 무한도전에서 처음 본 이후로 언젠가 꼭 방문하고 싶었다. 이 앞에서 나도 사진을 찍고 싶었다. 모든 여행객들이 그러하듯 이곳에서 사진을 남겨야 뉴욕에 다녀왔음을 증명할 수 있게 되니까. 이제 이 덤보는 뉴욕 여행을 다녀왔음을 보여주는 지표 같은 느낌이랄까. 일부러 해가 떨어질 무렵에 방문하였는데, 그 모습이 정말 장관이었다. 노을의 색이 변할 때마다 다리의 색도 바뀌었다. 가을에 방문하면 정말 멋있겠다 싶었다. 지는 해를 맞이하는 그 모습이 쓸쓸하게 느껴졌다. 거대한 저 다리가 왜 난 겉으로는 씩씩하지만 속은 물러터진 나 같다고 느꼈을까.








브루클린교

춥지만 이 노을을 더 즐기고 싶었다. 브루클린교에 올랐다. 양옆 아래로 차가 지나고 그 위로 가운데 길로 사람이 걸어 다니는 다리. 강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 시끄러운 차 경적소리, 저 멀리 빛을 내기 시작하는 고층 빌딩들, 그리고 주황빛에서 보랏빛으로 바뀌는 하늘. 이 모든 것들을 어떻게 내가 거부할 수 있겠는가. 스위스의 너른 들판을 뛰어다니는 소녀처럼 나는 그렇게 다리 위를 뛰어다녔다. 찬 바람에 날려 시야를 가리는 머리카락도 나를 막을 수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물 그리고 노을, 완벽한 크리스마스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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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스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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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펠러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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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분위기 가득

어둠이 내린 타임스퀘어는 낮에 본모습 보다 훨씬 좋았다. 그 수많은 인파 사이에 서서 나는 주변을 계속해서 바라봤다. 시시각각 바뀌는 알록달록한 광고들 사이에서 한국 기업 광고를 찾기도 하고, 한국의 배우나 가수들을 찾기도 하고. 그러다 내가 좋아하는 외국 배우도 찾고. 이곳에서 새해 카운트다운을 하지 못하는 게 아쉬웠다. 다음엔 꼭 새해를 껴서 방문하고 싶어졌다.


록펠러 센터에 있던 큰 트리, 라디오 시티에 있던 트리, 그리고 길에 밝게 켜진 많은 불빛들이 100년 만에 찾아온 한파와 홀로 크리스마스 밤을 보내는 나를 위로하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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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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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타운이 있는 32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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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로 돌아가는 길

짧은 뉴욕에서의 여행이 끝나는 날 아침, 나는 캐나다에서는 접할 수 없는 맛있는 커피를 모두 마셔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오전 내내 많은 카페들을 돌아다녔다. 사이사이 샵들도 구경했고. 어찌나 떠나기 싫던지 맡겨 두었던 짐을 찾고 공항으로 가는 길에 미련을 잔뜩 흘려두었다. 꼭 다시 오겠다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Jul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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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우 맨해튼

북미를 떠나기 전, 폭염이 찾아온 어느 날, 나는 마지막 여행지로 뉴욕을 다시 한번 방문했다. 여전했다. 시린 바람이 사라진 그 자리는 후덥지근한 공기가 가득 채우고 있었고, 여기저기 관광객들이 인산인해였다. 고층 건물 숲을 가로질러 친구와 나는 내가 너무나도 좋아했던 브루클린교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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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보

세찬 바람에 걷기도 힘들었던 다리에서 뛰듯이 다녔던 지난 추억에 나는 미소 지었다. 추위는 어떻게 견뎌보겠는데 더위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나라, 뛰는 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천천히 다리를 건너 우리는 덤보에 도착했다. 분명 나는 덤보를 짙은 갈색으로 기억하는데 놀랍게도 덤보는 푸른색이었다. 왜인지 덤보는 하늘의 색을 흡수해 매번 색이 변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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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 브릿지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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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5th Street Pier and Park

강변을 따라 좀 걷기로 했다. 내리쬐는 해가 너무도 버거웠지만, 여름에만 느낄 수 있는 이 청량한 풍경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나를 추위에 떨게 했던 강바람과 하늘에 떠 해를 종종 가려주는 구름들은 더위를 잊게 해 줬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파란색을 가득 머금은 세상은 더위에 허덕이는 내 발걸음에 리듬을 얹어주었다. 공원을 산책하는 강아지들과 시선을 맞춰 인사를 하기도 하고 페리 타고 멀어지는 사람들과도 손을 들어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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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

더위를 피해 브루클린에 있던 카페를 찾아 나섰다. 영화 인턴에 나왔던 카페도 가보고, 녹차가 맛있다는 카페도 가보고, 유명한 아이스크림 가게도 방문했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무섭기도 했고 시간이 너무 없어 구경할 수 없었는데, 이번에는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브루클린을 구경했다. 단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계속 걸어 다니다 보니 너무 더워서 많은 사진을 남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아쉬움을 두고 왔으니 언젠가 다시 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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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호

필요한 게 있다는 말에 소호로 향했다. 이미 꽤 많은 체력을 소모한 우리는 소호를 마지막으로 일찍 들어가 쉬기로 했다. 근처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더위를 먹은 건지 땀을 너무 흘려서 수분이 부족한 건지, 조금은 어지러운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최대한 많은 것들을 눈에 담고 구경하려고 했었다. 글쎄, 소호는 타임스퀘어만큼 내게 큰 임팩트가 없는, 생각했던 것보다 별거 없는 장소이다. 무언가 많아서 들리기야 하겠지만, 바쁘고 쇼핑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굳이 여행 계획표에 넣을 필요는 없는 곳이랄까.


우리 숙소는 웨스트사이드에 있었는데 할렘과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이었다. 에어비앤비 호스트는 뮤지션 아저씨. 우리가 숙소에 있을 때 거실에 놓인 그랜드 피아노로 재즈를 연주해 주셨는데 그 음악에 심취해 내가 있는 곳이 재즈바인지 아니면 숙소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덕분에 좋은 공연을 무료로 본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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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트럴 파크

브루클린과 함께 지난번에 보지 못했던 곳이 바로 이 센트럴 파크다. 한 겨울에 방문한지라 볼 게 없다며 다음을 기약하라는 말에 아껴두었던 곳. 드넓은 이곳을 아침 일찍 방문했다. 어찌나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하고 있는지, 뭔가 내 환상 그 자체였다. 커피와 베이글을 들고 산책하는 사람들도 있고 노래를 들으며 운동하는 사람들도 있고. 내가 생각했던 센트럴 파크의 모습 그 자체였다. 나한테는 매체를 통해 알려진 뉴욕의 장소들 중에 가장 괴리감이 없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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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겐하임 미술관 / 시카고 뮤지컬

센트럴 파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에 다녀왔다. 그 무렵 나는 건축에 관심이 생겼고 독특한 외관을 보기 위해서라도 꼭 방문하고 싶었다. 지난겨울에 MET과 MoMA를 방문했었지만 시간이 부족해서 구겐하임은 방문할 수 없었기도 했고. 내가 방문했을 당시 전시했던 작품들은 내 눈길을 끌거나 호기심을 자극하진 못했지만 가지고 있는 소장품이 전시되어 있는 가장 아래층은 꽤 흥미로웠다. 물론 MoMA에 비한다면 가짓수는 적지만 방문하기에는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공원에 앉아 멍 때리기도 하고 카페나 식당에 들어가서 더위를 식히기도 하고. 그러다 시간에 맞춰 뮤지컬 공연장으로 향했다. 생각해 보니 뮤지컬 역시 지난겨울에 보지 못해서 꼭 보고 싶었다. 그 유명한 브로드웨이가 있는 곳이니까. 그중에서도 무더운 여름밤을 시원하게 해 줄 노래가 가득한 시카고를 선택했고, 내 선택은 탁월했다. 공연 보는 내내 귀에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나는 소름까지 돋았었으니까. 공연을 보고 나오는 길, 도 지고 더위도 한풀 가셔서 신나기 딱 좋은 환경이었다. 들리는 모든 경적소리가 유행하는 음악 같았고 마치 내가 공연 배우라도 된 것처럼 길 한복판에서 흥을 주체하지 못했었다. 숙소에 돌아가서도 한참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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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 밤의 타임스퀘어

뉴욕에 오면 꼭 가봐야 한다는 우드버리 아웃렛에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내고 돌아와 우리는 마지막 야경을 감상했다. 그곳은 바로 타임스퀘어. 친구 역시도 타임스퀘어에 대한 환상이 있었는데, 나만큼은 아니지만 꽤 충격을 먹은듯했다. '겨우 이게...?'라고 했으니까. 무엇보다 겨울에 비해 관광객이 더 많아서 혹시 소매치기라도 당할까 가방 지키기에 여념이 없었기도 했고.


그토록 방문해 보고 싶었던 뉴욕을 6개월 텀을 두고 두 번이나 방문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도시 여행을 좋아하는 내게는 꽤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북미 치고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으며, 문화생활을 쉽게 할 수 있고, 맛있는 커피를 즐길 수도 있으며, 강이 있어 언제든 물가로 나가 물멍을 할 수도 있으니. 물가가 비싸다는 게 큰 함정이지만 말이다. 같은 곳을 여러 번 방문하는 걸 선호하지는 않지만 왜인지 뉴욕은 내게 있어서 유럽의 파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가보고 또 가보았는데 이상하게 자꾸만 방문하게 되는 곳 말이다. 지난여름에도 아쉬움을 뚝뚝 흘려두고 왔으니 5년 이내에 한 번은 더 가지 않을까 싶다.




도시들의 도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아주 많은 뉴욕

곧 다시 만나도록 해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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