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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a Kim Apr 07. 2017

내가 옳다고 믿는 모든 것이 틀린 것이라면?

행복한 인간관계를 위한 가정법

나이가 들수록 가까웠던 친구는 어색한 지인이 되고, 약속으로 바빴던 주말은 점점 한가로워집니다.

외롭다고 느끼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젠 일상이 되어버린 혼자의 삶에 능숙해지기 시작하죠.

때때로 찾아오는 울적함은 맥주로 달래보고, 소주로 넘겨봅니다.


혹시 이 이야기가, 당신의 이야기 아니면 당신이 알고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와 비슷한가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요. 세상만사 그 무엇도 한 가지 이유만으로 설명할 순 없습니다.

생각 하나, 말 하나, 행동 하나에도 모두 다 이유가 있는데, 하물며 세월이 지나면서 변해가는 인간관계에 어찌 이유가 하나뿐이겠습니까.


멀어져 버린 상대방을 탓할 수도 있겠지요. 그 사람의 가치관이 변했다거나, 그의 인생의 목표가 나의 것과는 궁극적으로 달라져버린 것이다,라고 주장해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 인생은 내가 살아가는 것이라서 남 탓 이전에 내 탓을 하면 문제의 답을 더 빠르고 쉽게 찾을 수가 있습니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들


우리는 선택 속을 살아갑니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물건 하나에도 '좋다,' 혹은 '싫다,'라는 마음의 선택을 하지요.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이 세상. 비슷한 시간과 비슷한 환경 속에서, 모두에게 비슷한 선택이 주어집니다. 내가 '아이~ 좋아!'라고 느낄 때, 누군가는 '정말 싫다!'라고 느낄 확률이 존재하는 세상인 거죠.


이런 세상에서 최대치의 적을 만드는 아주 무서운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는 옳고 너는 옳지 않다, 입니다.


짧고 간결한 문장일 뿐인데, 이 녀석, 다이너마이트 격의 어마 무시한 파워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생각은 우선 대화를 불가능하게 합니다. 대화가 끊어진 틈 사이로 오해가 쌓이죠. 오해는 또 다른 오해를 낳고요. 그렇게 쌓여만 가는 오해 때문에 관계는 부식합니다. 단절된 소통은 인간관계를 파괴하고, 변화를 거스릅니다. 개혁도, 화해도, 양보도, 화합도 얄짤 없습니다.



아와 어가 다른 일상의 언어들


그런데요. 어떤 한 사람이 옳다고 하는 게 누가 봐도 옳은 일일 때도 있습니다. 개중에는 하루 세끼를 먹고, 이를 세 번 닦고, 저녁엔 자고 아침엔 기상하는 기본적인 삶의 양식들처럼요. 그가 주장하는 것들이 틀린 말 하나 없는데도 괜히 듣기 싫은 그런 사람. 우리 주변에 하나씩은 꼭 있잖아요?


왜일까요? 왜 올바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 사람과는 말 한마디 섞기가 싫은 걸까요?


옳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강하게 주장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성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강하게 주장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해도 될 말을 굳이 저렇게 내뱉곤 합니다. 누가 상처받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 가시 돋친 표현, 퉁명스러운 말투로 남의 마음에 흉터를 내지요.


물론, 그런 사람들에게도 그들만의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는 공감될 수 없고, 이해받기도 어렵습니다. 이미 남의 가슴에 못 박은 사람의 상처는 들여다보기 싫은 게 우리 사람 마음이거든요.


시간이 많이 지나, 혹은 인생의 어떤 어려움 속에서 질문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라고요. 하지만 뒤돌아보고, 성찰하고, 고쳐야 하는 올바른 때를 놓친 사람에게는 고독한 메아리만 돌아올 뿐입니다.



옳은 말을 틀린 방법으로 내뱉는 사람들만의 이유


친구도 없고 그만큼 대화도 없는 어떤 한 여자의 이야기를 건너 들었습니다. 함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늘 명령조로 말을 하고, 부족한 인내심에 표정은 시도 때도 없이 굳어진다고 했습니다. 외롭고 처량한 모습으로 변해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표현방법은 바꿀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자신의 지식과 방식이 옳기 때문에 그것만을 고집하면 그 옳음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증명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는지 모릅니다.

어리석고 굼뜬 누군가가 자신의 훈계를 듣고 조금만 빠릿빠릿하게 움직인다면, 진행하는 일이 술술 풀릴 거라고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윽박을 지르고 얼굴을 붉혀서 인생이 잘 풀릴 거였으면 모두가 다 고집으로 성공했겠지요. 하지만 사람의 마음, 믿음, 신뢰와 같은 것들 인생의 성공요소들은 그렇게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참을성 없는 그분, 부모님께 많은 예쁨 받으며 자랐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곱게 키워주신 부모님의 따뜻함을 조금이나마 나눌 수 있는 어른으로 자랐다면, 조금은 덜 외롭지 않았을까요.



옳다고 하는 모든 것이 사실 틀린 것이라면


머리가 커지고 살아온 날의 수가 늘어나면서, 겸손하기가 참 어려운 것이라는 걸 깨달아갑니다. 아이일 때야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으니, 정답!이라고 외치면서 손을 번쩍 드는 횟수보다 질문을 던지는 횟수가 더 많았지요. 어떤 질문에도 상냥하게 대답해주는 선생님들이 참 존경스러웠습니다. 자연스럽게 나는 겸손할 수밖에 없었고요.


어른이 되면서 누군가의 질문에 대답도 할 줄 알게 되고, 누군가의 고민에 훈수 놓는 일도 생겨납니다. '겸손함'보다는 좋은 타이밍에 나를 '내세움'이 필요한 자기 PR 시대라고도 하고, 아는 척 좀 해줘야 누가 인정도 해주는 것 같은 치열한 경쟁 시대.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시대이지요.


그러다 보면 순식간에 무엇이 옳은 것인지, 진짜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이 무엇인지 잃어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실수를 하게 되죠. 내용은 옳은데 표현방식은 완전히 틀리다거나, 내용도 표현방식도 틀린 이상한 헛소리를 지껄이기도 합니다.


이런 실수를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내가 옳다고 하는 모든 것이 사실 틀린 것이라면?이라는 가정법을 던지는 것입니다.



가정법에 숨겨진 행복 


가정법은 조심스러움을 동반한 '혹시, ' '어쩌면, ' '만약'과 같은 질문들입니다.


때때로 우리의 삶에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질러야 할 시간들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타인의 마음이 개입된 상황에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지르기보다는, 남의 마음 내 마음처럼 배려하고 위하는 것이 먼저 필요합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한 모든 것이 누군가에게는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정을 하면, 다른 이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도록 나의 마음을 열게 됩니다. 똥고집을 피우면서 몇 날 며칠 피력하려 했던 이상한 열정이 수그러들고, 독한 언어가 부드러운 언어가 됩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틀릴 수 있기 때문에 칼날 같은 비판이나 공격성이 짙은 표정들이 완화되기도 하지요.


취향과 관심이 비슷한 사람들이 더욱 돈독해지고, 서로에게서 각기 다른 시선과 해석들을 배우게 됩니다. 지인에게 소개하여주고픈 사람, 의견을 물어보고 싶은 사람, 생각을 나누고 싶은 사람... 그런 사람이 되어갑니다.



눈이 뇌보다 재빨라서 남의 허점을 빨리 찾게 되고, 성격이 급해서 지적질을 하지 않으면 못 견디고, 말이라도 한마디 더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 마음. 이해합니다. 저도 그런 모습을 가진 사람들 중 한 명입니다.


다만, 어차피 이렇게 살든 저렇게 살든 가는 세월. 외롭게 사는 것이 행복이라면 말릴 생각은 없지만, 저는 나이가 들면서 더 외롭게 살게 되는 사람들 중 한 명이 되고 싶진 않습니다. 특히, 비싼 해외전화 걸어서 이러쿵저러쿵 삶의 훈수를 두고, 불편한 마음 잔뜩 남긴 채 전화를 끊는 저의 친척 어르신과 같은 사람, 그리고 자신의 삶의 방식이 옳기 때문에 너의 선택은 다 잘못된 것이라며 밥상머리를 어둡게 하는 아재들과 같은 사람처럼 나이 들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정을 해봅니다. 내 기준, 내 수준, 내 표준은 내려놓고, 다른 것을 선택합니다. 다른 길을 걸어봅니다. 다른 대화를 시도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봅니다. 다른 일을 해보고 다른 글을 써봅니다.


어려워 보이지만 사실은 무척 쉬운 질문,

혹시...?

어쩌면...?

만약...?


이 질문을 통해서 오늘, 한 뼘 더 행복해지시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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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image by Emily Morter

Caption image by Jonathan Simc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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