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기 전이랑 똑같겠지

최강 끝장 서울살이 생존일지

by intojeong

개복치는 1톤의 몸무게와 3미터의 몸집을 지닌 바다생물로 상위 포식자의 면모를 갖추었으나 실상은 유리 멘탈의 대명사로 불릴 만큼 생존율이 낮다. 커다란 덩치와 달리 심약하기 짝이 없는 개복치는 어이없는 돌연사로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했는데, 알고 보면 풍류를 아는 낭만족이기도 하다. 깊은 심해를 누비며 헤엄치다가 곧잘 바닥에 누워 뒹굴거리고, 파도가 없는 날에는 수면 위로 올라와 둥실둥실 떠다니며 일광욕을 즐기는 친구다.


내 안에 없는 것은 나를 자극하지 않는 법.

개복치가 측은하게 느껴지는 나는 일희일비+작심삼일 닝겐이다. 세상만사 그러려니 하기에는 일희일비하는 마음이, 꾸준히 한 길을 가기에는 작심삼일하며 포기하는 나를 탓하며 살았다.


경쟁의 결과는 0 아니면 1이다. 1이 나올 때까지 버틸 수 있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공무원이 되겠다고 최악의 경쟁에 뛰어들었다가, 일 년 뒤 신림동 고시촌을 떠날 때 깨달았다. 나에게는 경쟁에서 버틸 자원이 없다는 걸. 함부로 경쟁에 뛰어들면 그나마 모아둔 자원마저 잃는다는 걸.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은 말했다. 왜 포기하냐고, 그동안 공부한 게 아깝지 않냐고.. 나를 말렸던 친구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연도만 다를 뿐 시험에 합격해서 고시촌을 떠났다. 마지막에 고시촌을 떠난 친구는 도합 7년이라는 시간을 버텼다.


나는 방황의 20대를 보내며 조급증과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용한 점집을 돌아다니기도 했고, 답을 찾기 위해 제주 올레꾼이 되어 화살표를 쫓아다니며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자기 계발서를 탐독하다가 근본적인 나를 파헤치기 위해 심리학을 전공하기에까지 이른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정보들을 주워 담고 솎아내서 맛보기를 참 많이도 시도했다.


지금까지 너무 잘해왔다. 이젠 조급해하지 말고 너무 멀리 보지도 마라. 오늘만 생각해라.


열심히 산 거 같은데 앞으로 얼마나 더 애쓰며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어서 지쳤을 때 들었던 이 말은 나에게 정말로 큰 위로가 되었다. 그동안 나에게 가장 박하게 굴었던 게 바로 나 자신임을 깨달았다. 그렇게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스스로와 화해하고 마음이 좀 더 편안해졌다.


나는 나를 가장 사랑하고 싶다.


나는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일상을 버티는 것이 아니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즐기는 여유를 가질 수 있을까?

나는 나의 부족한 면만 들추고 자책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유 없이 아껴주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내 안의 화두가 '나'로 가득 찬 30대 중반을 보내면서 정리되지 않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불쑥불쑥 떠오르는 미래에 대한 불안, 죽음에 대한 공포는 스스로에게 관대해질 수 없도록 방해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그러다 나와 마음이 잘 맞는 동료를 만나 이런저런 고민들을 터놓게 되었다. 사뭇 진지하게 듣던 동료는 내게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다. 이야기는 목숨을 걸고 우주를 비행하는 것이 직업인 우주비행사들의 대화라고 했다.


"죽으면 어떻게 될까?"
"태어나기 전이랑 똑같겠지."


이보다 명쾌한 죽음에 대한 풀이는 들어본 적 없다. 나는 한 때 종교에 나를 의탁하고 맘 편히 살아보고자 노력한 적도 있었지만 끝내 종교에 빠질 수 없었다. 이유는 사후세계에 대한 정의가 납득이 안되어 계속 의문이 생겼기 때문이다. 천국도 환생도 내 취향이 아니라 와 닿지 않았다. 그렇다고 두렵지 않은 건 아니었다. 심약한 내 마음은 조금이라도 와 닿는 믿음의 증거를 찾으면 어떤 종교로든 달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근데 옆자리 동료에게서 은혜가 충만한 진리의 말씀을 들을 줄이야! 완전 내 취향이라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30대에 50대를 걱정하고, 죽음을 두려워했던 시간들이 무색해졌다. 조금만 흐트러지거나 멈춰있는 나를 보면 불안에 떨었던 것이 덧없게 느껴졌다. 그러니 더는 미래를 쫓으며 나를 괴롭히는 짓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내 취향대로 오늘을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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