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 끝장 서울살이 생존일지
까다롭고 인색한 사람을 깍쟁이라고 부르는데, 지역명이 붙은 건 서울이 유일하다. 서울로 깍쟁이가 모여든 것인지, 서울에 살면 깍쟁이가 된다는 것인지, 오늘은 ‘서울 깍쟁이’라 불리는 그들의 특색을 살펴보려 한다. 서울에서 조화롭게 살고 싶은 나에게는 적응 과제였던 서울 라이프! 나로서는 신기/당혹/의아한 포인트이지만 그들에겐 당연한 문화/정서가 되는 그 차이를 들여다보자.
내가 자란 경상도는 과묵이 미덕이었다. 서로가 조금씩 손해보고 양보하는 일이 흔했으며, 불만을 내비치는 사람 없이 묵묵히 자기 몫을 했다. 나도 그러했다. 하지만 서울에서는 자기 권리 못 찾는 미련한 사람이 되었다. 낯간지러운 자화자찬이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뒤처지는 불안감을 느꼈다.
내 것과 네 것이 분명한 서울은 21세기가 되어서야 공유 경제라 일컫어지는 쏘카, 에어비앤비, 따릉이 같은 서비스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경상도는 일찍이 품앗이 하며 물건을 빌려 쓰는 게 흔한 문화였다. 아직도 기억나는 일화가 있다. 20세기의 어느날이었다. 서울에서 또래 친척이 놀러 왔다. 나는 같이 자전거를 타고 놀자고 말했다. 친척은 의아해 하며 "자전거는 1대뿐인데?"라고 물었다. 나는 옆집에 자전거가 있다고 대답했지만, 친척은 '근데 어쩌라고' 같은 표정을 지었다. 나는 옆집으로 걸어갔다.
"아줌마! 전데요. 자전거 좀 쓸께요!"
"그래!"
옆집 아주머니는 문도 열어보지 않고 대답하셨고, 친척 아이는 놀라워했다. 하지만 이런 울타리 없는 공동체가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어쩌다 한 번 동네 어르신께 인사를 거르고 지나쳤다가 버르장머리 없다고 호되게 혼난 적이 있다. 누가 어디서 뭘 했는지, 말 그대로 옆집 수저 개수까지 아는 동네에서 산다는 건 답답하고 숨 막히는 노릇이다.
고향을 벗어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먼 대도시는 서울이었다. 그렇게 당도한 서울에서 만났던 서울 사람들, 특히 직장에서 만난 서울 깍쟁이들을 회고해본다.
A는 대화할 때 특이한 점이 있었다.
분명히 나를 쳐다보고 있지만 신경은 온통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나에게 말하는 척 하면서 실은 주변 사람들에게 모두 알리고 싶어서다. 내가 코앞에 있음에도 그는 목소리를 한껏 높여 확성기처럼 시끄럽게 이야기했다. 특히 자신이 한 일은 티끌만한 성과라도 태산처럼 설명했고, 만나는 사람마다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지치지도 않는 눈치였다. 매번 신나서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반복했으니 말이다. 비호감의 방식이긴 했지만 효과는 있었다. '우는 아이 젖 준다'는 속담처럼 울어대는 A에게 사람들은 ‘옜다’ 하며 칭찬을 해주었다. 원하는 리액션을 확인한 A는 그때서야 앓는 소리를 멈췄다. 하루는 A에게 물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네. 당연하죠."
"그렇다 하더라도 그렇게 일일이 말해요?"
"말 안 하면 다른 사람들은 모르니깐요."
A의 과대 포장과 반복 설명은 듣기 불편했다. 또한 내가 상대적으로 저평가 받을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건들어졌다. 하지만 시끄럽고 노골적인 피력은 내 스타일이 아니었고, 묵묵히 내 업무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너는 사업을 빛낼 줄 몰라!"
상사의 피드백은 충격이었다.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하나하나 주변에 떠들어야 하는 것인가 혼란스러웠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말씀은 어떨 때 쓰이는 건지 모르겠지만, 일터에서는 아닌 게 확실했다.
B는 자신의 목표가 분명한 사람이다.
그는 꿈이 국회의원이라고 했다. 누구를 만나건 자신의 이력과 목표를 열심히 소개했다. 어느 대학을 나왔고, 토익은 몇 점이며, 무슨 활동을 해봤다고 말했다. 그는 장기적인 로드맵 위에서 한걸음씩 나아가는 인물이었고, 과연 어디까지 그의 뜻이 닿을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때론 이글거리는 그의 욕망이 너무 뜨거워 정면으로 마주하기 힘들기도 했다.
나에게 인생은 미로와 같아 어디가 입구고 어디가 출구인지 알 수 없어서 계속 헤매고 다니는 순간들의 합이었지만, B는 모든 것이 분명해보였다. 하루는 멘토로 여기던 분께 물었다.
"행님! B는 경쟁에 특화된 거 같아요. 때론 양보가 미덕 아닌가요?"
"니는 유치원 들어갈 때부터 경쟁해야 하는 서울생활을 안 해봐서 모르는 거다. 자리는 한정돼 있고 사람은 많은데 우짜노. 유치원부터 매 순간 경쟁의 경쟁 아니겠나. 공정한 경쟁이 서울에선 미덕인 거다."
순간 머릿속에서 징소리가 울렸다. 넘치는 사람들 속에서 원하는 선택을 받기 위해 애쓰는 그들에게 정이 있네 없네, 겸양이 있네 없네, 속으로 판단했던 것들이 떠올라 얼굴이 달아올랐다. 역시 행님의 20년 넘은 서울살이 내공 클라스는 남달랐다.
시간이 한참이나 흘러 우연히 B의 소식을 듣은 적이 있다. 그는 원하던 대로 정치인이 되었고, 검색창에 이름을 치면 가장 먼저 상단에 프로필이 뜨는 인물이 되었다. 앞으로도 건투를 빈다.
마지막으로 C를 쓸까 말까 고민했는데 빼기는 아까운 인물이다. C는 한마디로 토스 전문가다.
이건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자기는 빠져야 하며, 자기가 맡은 일은 중요하니 여러 사람을 붙어야 한다는 주장을 잘 한다. 그래서 토스 전문가, TF 매니아라고 사람들은 뒤에서 수군거렸다.
사정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궂은일 맡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다들 비슷한 상황이니 적당히 돌아가며 일을 맡는 것인데, 유독 C는 토스만 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C는 임원들에게 큰 신임을 받았다.
가끔 C가 군인이 되었다면 잘 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대성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조직의 규칙(근태, 빠른 보고 등)을 잘 지키고 상명하복에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도 안다. 아부 체질 없고 아부 싫어하는 사람 없다는 걸.
내가 윗사람이었어도 남에게 토스를 하건 말건 지시한 일을 빨리 수행하고, 문제 없이 마무리 지어 재깍 보고하는 사람을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또한 끼니 때마나 식사를 챙기고 동행하는 부하직원이 있다면 싫어하기 힘들겠지.
#천태만상_인간세상
#사는법도_가지가지
#귀천이_어디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