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관계는 완벽히 망한다

by 써드

매칭이 되면 대화를 할 수 있는 어플에서 어느 오후인가 알림이 왔다. 우리는 대여섯 합의 대화를 나누었고, 나는 초기에 강한 호기심과 호감으로 지나친 오버페이스로 그를 대했고, 그는 점점 어리둥절해 하더니 결국 ‘얘 뭐야?’ 하는 뉘앙스로 매칭을 취소했다. 극히 짧은 일화지만 이런 순간이 있다. 내 매력이 통하지 않는 관계를 마주했을 때의 무력감은 수많은 거절과 보류로 점철된 수난의 인간관계사를 관통한다. 처음에는 인정할 수 없었다. 무엇을? 상대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단순히 ‘결’이 안 맞다고 보기에는 나의 결점이 너무도 크게 부각된다. 한마디로 이 사람에게 잘보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는 사람의 탈을 쓰고 있지만 결 하나로 맞고 안 맞음을 설명하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이 일어난다. 채식 식단을 고수하는 이들 가운데서도 세세하게 파고들면 열 가지가 넘는 다양한 섭식법이 있다. 때로는 몇 시간 만에 자세를 바꾸고 꿈뻑 눈을 감는 파충류 같은 사람도 있고 전력질주로 에너지를 태워버리는 표범 같은 사람도 있다. 나처럼 대도시의 한 귀퉁이에서 정해진 길로 다니며 저연봉의 그늘에 갇힌 일개미 같은 사람도 있다.


내가 만난 사람 중 나에게 호의를 보인 사람은 적어도 일개미의 세계와 감응할 수 있는 종류의 인간일 것이다. 표범은 달리다가 자신의 발에 밟힌 개미 한 마리를 감각할 수 없다. 때로는 개미핥기에게 나란 존재는 그저 한입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유니버스. 우주는 ‘넌 누구에게나 매력적인 사람이야’라는 이야기를 건네지 않는다. 사랑이 잠시 나를 베이킹소다를 넣은 빵 반죽처럼 부풀리고 세파에 거품이 꺼져갈 때쯤 이별과 씁쓸한 일개미의 원점으로 돌아온다.


이 사이클을 거부하고 싶어서 어쩐지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찾아 헤맨다. 친한 친구와의 웃음으로 누수되는 존재감을 제법 그럴싸하게 봉쇄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연애를 하게 되면 한시적이나마 내 편이 생겼다는 안도감에 마취될 것 같다. 그러나 침묵하는 휴대폰이 적막에 휩싸인 저녁이 되면 어떻게 해서든 잘해보고 싶었으나 결국 이상한 사람, 별로인 사람으로 남게 된 관계들이 떠오른다.


나는 늘 그자리에 있었다. 나는 내가 익숙하다. 그런데 태양은 운행 그 자체의 이유와 논리로 나를 지독한 음지로 몰아넣기도 하고 내 몸에는 하릴없이 곰팡내가 나기 시작한다. 그렇게 모든 걸 포기할 찰나에 광휘의 울림과 빛무더기가 찾아오면 초라한 내가 더욱 초라해지는 불상사가 생기기도 하고 갑작스러운 영광 앞에 지나간 응달의 시절이 서러워지기도 한다. 그런 빛의 시절도 긴 시간의 순환 속에서는 유한하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래도 말년은 편안했다’며 눈을 감을 수도 있겠지.


무수히 망한 관계를 돌이킬 수 없다는 아쉬움과 막막함은 대개 단 한 번의 사랑으로도 우주 저편으로 날려버릴 수 있지만 한없이 무중력을 떠도는 기분은 도무지 아무도 좋아할 수 없을 것 같다. 봄꽃처럼 의심이 피어난다. 나의 매력은 누군가의 한시적인 오해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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