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집을 지나치는 귀로

by 써드

홍대 근처에 직장이 있었을 때 출근길은 고요한 듯 참담했다. 간밤의 오색찬란한 흥취의 반대편에는 토사물과 담배꽁초, 마시다 버린 플라스틱 컵따위가 군데군데 그림자를 이루고 있었고 나는 지하철역 입구에서 파는 토스트 하나로 배를 채운 채 느기적거리며 빈 골목을 걸었다. 잊을 수 없는 어느 아침에는 자동차 바퀴에서 유명을 달리한 비둘기의 흔적으로 지진이 난 것 같은 마음을 애써 누르며 필사적으로 양지를 따라 걸음을 옮기기도 했다. 문을 닫은 옷가게가 늘어선 언덕은 꽉 접어 마음을 닫은 부채처럼 하룻저녁의 유행이 잠들어 있었는데 저녁이면 다시 촤르르 매대에서 매대로 활력이 돌겠거니 하면서도 그 시간은 나의 몫이 아니라는 생각에 스산함을 감출 길이 없었다. 하루치 노동을 마쳐야 저녁의 홍대를 걸을 수 있었으니까, 그때의 노동은 모니터 앞에서 쥐어짜낸 생각을 모아 간신히 밥값을 했다고 믿는 얼치기의 고행이었으니까.


지금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강 이남의 번화가 한 귀퉁이에 묵을 곳을 마련한 뒤로 출근길이면 낮밤이 바뀐 자유로운 영혼들이 24시 갈비집에서 잠시 나와 술에 취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종종 마주한다. 밤에 일하는 사람에게 아침은 아마도 초저녁의 홀가분한 휴식과도 같겠거니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하러 가는 발걸음은 자동차로 꽉 막힌 맛집 골목을 되짚어오는 퇴근길로 통한다. 이 많은 사람들이 저녁 약속을 하고 삼삼오오 모여서 유리문 너머로 둘러앉은 사정은 무엇일까. 아마도 내가 거쳐온 수많은 술자리처럼 그때그때의 이유는 있겠지만 그저 즐거움과 반가움이겠지. 내 인생에서 유흥의 한 철이 지나버렸음을 절감한다. 뭐하냐고 불러낼 친구도 없고 더치페이로 낸다 하더라도 호기롭게 지갑을 열 수 있는 사정도 못 된다. 가장 고독한 시기에 저녁마다 사시사철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 동네에 홀로 정착해버렸다.


불과 몇 년 전의 풍경은 고향처럼 포근했다. 프랜차이즈 베이커리 앞에 정차한 버스에서 내려 몇 걸음 가다 보면 기가 막힌 크림빵을 주력으로 파는 작은 빵집이 있었고 오픈한 지 30년은 된 듯한 낡은 호프집을 지나 돌면 빨간 벽돌로 된 낡은 빌라가 보였다. 주차장에는 작은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할아버지가 비밀스러운 사연을 퐁퐁 뿜어냈고 1층, 2층을 거쳐 3층에 다다르면 작은 고양이가 맞아주는 10평이 채 안 되는 공간이 열렸다. 베란다 너머로 지는 해를 두고 지금은 영영 남이 된 누군가와 샤브샤브나 닭강정을 놓고 술잔을 기울이곤 했다. 이케아에서 사온 조명은 리모컨을 누르면 황금색, 보라색, 자주색으로 교차해 우리를 감쌌고 작은 방에 욱여넣은 소파베드에 누워 잠을 청하곤 했다. 선물이 시간을 품고 온 것을 모르고 내것처럼 사용했다. 이제는 없다. 그래서 선물이었음을 안다.


누운 채로 하얀색 우드 블라인드가 반쯤 드리워진 창문을 멀거니 올려다 본다. 밖에서 노는 사람들이 부럽다. 부러운 사람들을 싹싹 긁어서 집 근처에 모아놓은 것 같은 이 시간이 꽤나 잔인하다. 모든 일에는 뜻이 있겠지. 나는 내 그리운 시간의 끝을 헤아리며 어떤 시작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차마 가늠하지 않은 채 잠을 청할 것이다. 지나간 시간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빛보다 느린 하루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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