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는 인생에서 어떤 의미였나요?“
대답을 하려는데 식도 아래쪽부터 무언가 울컥 하고 올라와 말문이 막혔다. 총 5회기의 상담을 결제한 뒤 매번 내 안의 그렁그렁한 덩어리를 꺼내는 데 조용히 혈안이 된 것 같은 심리상담사 앞에서 처음으로 눈물을 흘린 날이었다.
학창시절에 잠시 마음에 담아두고 귀한 도자기처럼 닦고 또 닦았던 꿈이긴 했다. 천부적인 재능으로 유학을 가지 않는 이상 나를 가르친 피아노 선생님처럼 평생을 아이의 손가락을 주시하며 살아야 했을텐데, 음대에 가면 무조건 드레스를 입고 순회공연을 다닐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단순해서 더 맹목적이었고 순진한 바람이었다.
포기를 선언한 날로부터 10년이라는 시간이 적어도 두번 이상은 지나갔는데 도대체 어디서 그런 뜨거운 덩어리가 가슴 속에 숨어 있었던 걸까. 나는 생각보다 나를 잘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젠가부터는 잔잔히 취한 술자리에서도 꿈을 포기한 기억을 말하지 않게 되었고, 의식하지 않는 순간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도 내 안에 피아노 선생님 앞에서 펑펑 쏟아낸 눈물의 샘이 아직 마르지 않고 있었다니.
말하지 않기 위해 간신히 꺼낸 말이 피아노다. 다이소에서 산 플라스틱 서랍장 속에는 5년의 기록이 그대로 봉인되어 있는 휴대폰이 있다. 그때 쓰던 어플과 메모, 특히 사진이 수천 장이다. 사진에 찍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나는 그 폰의 전원을 켜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 다스베이더가 자신에게 팔다리가 온전히 달려 있던 시절의 사진을 보고 싶어 할까.
<어톤먼트>라는 영화는 오로지 제임스 맥어보이의 눈빛과 사운드트랙 때문에 n차 관람을 하곤 하는데 영화가 끝날 무렵 어김없이 말하지 않은 것들에 부대끼는 시간이 찾아왔다. 가슴 저리는 감각은 언제나 직전에 거행했던 사랑에 국한되는 거라고도 생각해 본다. 전전 연애는 그렇게 애틋하지 않기 때문이다. 첫 연애는 어떤가. 죽고 못 살 것 같아 김동률의 앨범을 모르핀처럼 반복해서 들으며 버텼던 실연의 기억은 이제 중간 폰 번호가 세 자리였던 시절의 10자리 숫자로만 남았다.
말을 꺼내면 음성이 되고 잔상을 남기며 휘발될 것이 두려워 꺼내지도 없애지도 못하는 기억이 있다. 그날 이후로는 길게 사후세계가 이어지는 것 같아서, 어쩌면 사람들은 어느 선연한 시점 이후로 다들 에필로그를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길 가는 사람을 붙들고 묻고 싶다.
’당신도 에필로그 속인가요?’
짧은 본문 뒤에 한없이 늘어지는 에필로그 같은 나라는 책을 조용히 덮고 싶은 날들이 있다. 오래 아끼는 영화를 다시 볼 때, 이제는 희미해진 목소리로 부르던 음악을 우연히 들었을 때, 일주일 내내 주말만 기다리면서 막상 찾아온 주말의 무게에 눌려 모로 누워 있을 때, 말하지 않고 있는 것들을 생각할 때. 이럴 때 밀려오는 커다란 슬픔은 자고로 간단한 문장으로 지탱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