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관계의 정거장에서

by 써드

회사 후배였다가 근 10년을 동생으로 알고 지내던 인연과 돌연 연락이 끊어졌다. 잘 지내냐는 나의 메시지에 답을 주지 않고 이어진 침묵이 벌써 3개월째다. 전화를 걸어볼 엄두도 못 내고 가끔 목에 걸린 가시처럼 찝찝한 기분이 되는 이유는 내가 이 친구에게 저지른 만행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관계의 단절을 결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에 저만치 가는 쪽배를 보내주듯 속수무책으로 하나의 인연이 접히는 것을 받아들이는 참이다.


나는 참 못된 선배였다. 한강공원 근처에 살던 무렵 함께 운동 삼아 강변을 걷기로 하고 약속된 시간에 맞추어 어정쩡하게 길에 서 있는데, 10분이 지나도록 가고 있다는 메시지만 보내오는 동생의 굼뜬 시간관념에 점점 화가 났다.


매사 이런 식이지. 약속을 정한다는 것에 아무런 책임감도 없는 건가? 나는 동생이 도착했을 무렵 이미 굳은 얼굴이 되었고 그날 30분 동안 한강변을 걸으며 단 한 마디의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정색을 한 얼굴 근육이 끝내 풀어지지 않은 채로 동생과 나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고, 몇 주가 지났을 때 나는 동생에게 그날 그렇게 조용하고 격렬하게 화를 내서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어떤 날은 지독한 짝사랑에 빠져 괴로운 나에게 놀러왔다가 쓸데없는 연애 얘기로 진을 빼기도 했다. 이별로 힘들어하던 나를 보러 먼 거리를 달려와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했었지. 좋았던 일, 나빴던 일, 서운한 일, 무심했던 일들이 어지럽게 뒤엉키지만 결국 나는 이 친구를 너무 만만하게 보고 이용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관계가 있다. 이상한 착취가 이루어지는 관계.


동생이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면서부터는 서로 삶의 풍경을 그리는 스타일이 달라졌다. 수채화처럼 물에 물감 탄 듯, 허랑방탕하게 사는 나를 두고 진하고 꾸덕한 유화의 세계로 떠나 버렸다고 해야 되나? 결혼한 동생이 낳은 쌍둥이를 위해 유아용 소파 2개를 선물한 뒤로 점점 소원해지더니 결국 메시지를 읽고도 답이 없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로 위안을 삼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이 친구를 친구로서 사랑하지 않았음이 명백해진다. 그렇다면 우리의 10년을 어떻게 봐야 하나. 당장 외로워서 서로가 붙들고 있었던 허수아비 같은 친교라고 해야 할까. 그러다 동생에게 남편이 생기고 아이가 생기자 동생은 고향별을 찾은 듯 훌쩍 날아가버렸다. 어찌 보면 참으로 잘된 일이다.


가끔 5만원을 빌리고 되갚는 철없는 나를 가지치기 한 것은 참 잘한 결정이다. 그런데 동생과 달리 나는 아직 내가 여생을 의탁하고 지지할 수 있는 관계를 만나지 못했다. 그런 게 꼭 필요한가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분명 같은 정거장에 있었는데 시간표도, 노선도 없는 버스 하나가 동생을 태운 채 저만치 사라진다.


여행길에서 잠시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을 뿐인 다른 모든 관계가 떠오른다. 봄 하늘의 별과 가을 하늘의 별이 배치가 달라지듯, 그렇게 또 새로운 풍경과 잠시 머물다 가는 인연이 나타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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