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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바람 Jul 14. 2022

405호 객실

오늘의 마음 (4)

한 해의 절반, 6월의 끝자락에 내 생일이 있다. 생일이 별거 아니게 된 건 뭐 한참 됐다. 축하받고, 깜짝 이벤트에 놀라서 촛불 끄고, 우스꽝스러운 포장지에 담긴 선물을 뜯고, 이런저런 선물과 함께 온 문자에 각각 다른 답장을 제법 정성스럽게 보내며 다른 날보다는 좀 더 요란스럽게 보내는 게 언젠가부터 어색하고 민망해졌다. 카톡에 뜨는 생일 알람도 끄고, 내 생일을 기억해주는 몇몇 사람에게 아주 소소한 축하만 받으며 보내는 게 오히려 더 좋다.     

 

올해 생일은 아이를 낳고 처음 맞는 생일이었다. 남편이 받고 싶은 선물이 뭐냐고 묻는데, 정말 받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딱히 없었다. 그러다 생일을 이틀인가 앞두고 남편이 선물을 제안했다. 호텔에서 하룻밤 묵고 오라는 것이다. 남편은 벌써 집에서 가장 가까운 호텔의 숙박정보를 다 알아봤고 내가 좋다고 하면 예약만 하면 된다고 했다. 망설여졌다. 집에 있는 게 편하고 좋은데 괜히 돈만 쓰고 몸도 마음도 불편한 건 아닐까, 아이들을 두고 가도 될까... 그래 봤자 아이들이 잠들고 난 밤부터 다음 날 점심 전까지니까 그렇게 긴 시간도 아니고, 집에서도 가까운 곳이니 맘 편히 다녀와 볼까... 이런저런 생각에 망설여졌다. 일단 한 번 해 봐야 좋은지 아닌지 아니까 해보라는 남편의 말에 그러겠노라고 했다.     


간단한 세면도구와 스킨로션, 잠옷과 책 한 권을 챙겼다. 긴 여행이든 짧은 여행이든 항상 짐을 챙기는 그 순간이 가장 설렜는데, 이번엔 예전의 그 설렘에 30% 정도 되려나... 아주 살짝 설레다 말았다. 405호 객실은 도로와 건물 뷰였다. 침대와 테이블, 의자가 있는 혼자 머물기 딱 알맞은 크기의 방이었다. 일단 TV 볼륨을 적당히 크게 높이고 평소보다 오래 씻었다. 집에서 할 수 없는 일들을 ‘짧은 외출’의 시간 동안 누려야 할 것 같았다. 에어컨도 세게 틀었다. 도톰한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멍하니 누워있었다. 호텔에 묵는 것도 너무 오랜만이고, 게다가 혼자 묵는 건 생애 두 번째라 낯설었다. 내일은 최대한 늦게 일어나야지, 아이들이 깨울 일 없는 아침이니까 늦게 일어나야지 다짐하면서 나도 모르게 잠들었다.      


8시 정도에 눈이 떠졌다. 평소에는 5시에 일어났으니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다. 커튼을 열고 책을 읽었다. 침대에서 꽤 오랫동안 책장을 넘기고, 넘기고, 창밖을 보다가, 보다가... 천천히 일어났다. 아무것도 한 것 없이그냥 혼자 자고 혼자 일어난 것뿐인데 그날 하루의 분위기가 달라졌고, 잠시 동안이지만 내 마음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짐이랄 것도 없이 단출한 소지품들을 챙기고 나오면서 405호 객실을 한 번 둘러봤다. 이 낯설고 작은 공간이, 나에게 지금 위로가 되는구나, 이런 위로를 느끼는 내가 낯설었다. 이런 낯선 위로를 조만간 또 받을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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