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마음 (3)
5,6년 전이었나, 마지막으로 교토를 찾았던 게. 언제든 마음 내킬 때면 다시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코로나에, 임신, 출산, 육아에 또 이런저런 이유들로 인해 오래되고 단정한 그 골목들을 다시 걸을 날이 요원해졌다. 그러다 며칠 전에 문득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교토의 한 커피집이 생각났다. 여행 이틀째였나, 길을 걷다 우연히 비를 만났고 더 세차게 내리기 전에 피할 곳이 필요했던 우리는 길가에 있는 커피집으로 그냥 들어갔다.
열 개 남짓한 계단을 내려가야 입구에 닿는, 사람들이 다니는 길보다 조금 낮은 곳에 자리한 커피집이었다. 비도 내렸고, 길보다 낮은 곳에 자리한 커피집이니 좀 어둡지 않을까 생각하며 출입문을 열었는데 마치 다른 세상처럼 환하고 밝았다. 출입문 맞은편에는 커다란 통창이 있었고, 그 창 너머로 물기 머금은 초록 나무들이 싱그럽게 자라고 있었다. 커피집 내부는 오래됐지만 단정하고 깨끗했다. 종업원들의 움직임에는 소란스러움이나 허둥댐이 전혀 없었고, 몇 테이블에 손님이 있었는데 모두 조용했다.
우리는 아마 창가 쪽에 앉았던 것 같다. 겨울의 초입이었고, 비까지 내렸으니 따뜻한 커피를 주문했고, 비 오는 날이라 아마 커피 향이 더 진했던 것 같다. 우연히 들어온 커피집치고는 너무 괜찮다는 얘기를 나누지 않았을까. 그때 테이블 위를 오갔던 대화의 내용은 조금도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그날의 분위기, 커피집 앞의 계단, 창으로 보이던 초록 나무들, 짙은 나무 색깔의 단정한 테이블, 그 위에 조심스레 놓여있던 진한 커피 세 잔, 그리고 편안하고 따뜻했던 느낌만은 또렷이 남아있다. 사진첩 속에도 한 장 남아있지 않은 그날의 커피집이 기억 속에서 사진처럼 분명히 남아있는 게 신기하다. 그리고 며칠 전 문득 그 커피집이 떠오른 것도 신기하다.
다시 여행을 가게 된다면, 그날처럼 이름도 모르는, 길가에 보이는 아무 커피집이나 들어가 커피를 마셔보고 싶다. 여기저기 검색해서 유명하다는 공간이 아닌 그곳 사람들이 평범하게 드나들고 여유를 즐기는 평범한 일상의 공간에서 나도 일상처럼 잠시 쉬고 싶어 진다.
오늘도 그날처럼 비가 내렸다. 집 밖에서 커피를 마실 일이 거의 없는 요즘의 나는 안방 베란다에서 창을 열고 커피를 마셨다. 마음속으로는 교토의 그 커피집을 생각하면서. 언젠가 다시 그곳을 찾을 날이 올까. 막연한 공상을 하다 커피 한 잔을 채 마시기도 전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