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마음 (2)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가만히 앉아서 빗소리를 듣는 것도, 비가 내리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도 참 좋다. 곰곰이 더듬어보면 비 오는 날을 좋아하던 그날이 떠오른다. 서른이 되기 전이었고 반팔 원피스를 입던 여름날이었다. 그즈음 주일이면 항상 예배와 소그룹을 마치고 화영이와 밥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그날도 우리가 자주 가던 백화점 옆 던킨에 들렀고 커피를 마시던 중 비가 내리가 시작했다. 후드득 쏟아지던 여름 비가 꽤 시원하게 느껴졌고 큰 창에 맺히는 빗방울을 이따금씩 보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던 기억이 난다.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동그란 테이블과 따뜻한 커피와 수더분한 친구의 표정과 내 눈에 담았던 비 오는 거리의 풍경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그날 그 비가 좋았고 그래서 비 오는 날을 좋아하던 ‘특별한 순간’으로 그날이 내내 기억이 난다.
오늘 비가 내리니 다시 그날이 생각난다. 그날처럼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고 큰 창을 바라볼 시간은 나지 않지만, 아이들이 낮잠에 들고 잠시 베란다 창 앞에 섰다. 장마가 온다더니 제법 많은 양의 비가 내렸고 베란다 창으로 톡톡톡-하고 빗방울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좀 더 가까이 빗소리가 듣고 싶어 문을 열었지만 바로 앞 큰 도로의 소음만 들렸다. 고층이라 빗방울이 땅에 닿는 소리도 기대하긴 어려웠다. 그래도 창에 맺힌 빗방울이 있어 비를 가까이 느낄 수 있었다.
비 오는 날은 이상하리만치 다른 감성, 다른 마음으로 바뀐다. 차분해지는 것도 같고, 뭔가 알 수 없는 것들로 충만히 채워지는 것도 같다. 그래서일까. 다섯 달 가까이 펼쳐보지 못했던 노트북을 열었고 글을 쓰고 있다. 시간적인 여유가 생겨도 마음이 늘 바빠 마음을 들여다볼 엄두가 안 났는데, 내리는 비를 보다가 마음을 적어보고 싶어 졌고, 토닥토닥 나를 다독이듯 키보드를 토닥토닥 두드리며 글을 쓰고 있다. 비가 좀 더 내렸으면, 아이들이 좀 더 길게 낮잠을 잤으면, 반대로 나는 덜 자도 덜 피곤했으면 하는 오늘의 마음이 일렁일렁 다가온다. 다른 건 모르겠고 일단 오늘은 비 오는 풍경을 좀 더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