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따라 강남가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객관적으로 보는 눈도 어른의 능력이다

by 반달

신념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 쉽지 않은 요즘이다.

글쎄...

신념이 있다고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알맹이가 없거나,

신념보다는 아집과 고집에 가까운 투정이거나,

본 투 비 흘러가는 대로 살기에도 버거워

신념이 없다고 대 놓고 말하는 경우들이 있다.


나 또한 어른의 몇 년을 지나고 나 보니

타성에 젖어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이고,

그 과정에서 내 줏대를 내세우는 것은

오히려 눈치 없는 사람처럼 보이기 일쑤여서,

내가 어떤 신념과 가치를 가지고 사는지에 대해

진중하게 고민할 수 없었다.


핑계라면 핑계일 수 있겠지만

세상에는 고민할 것이 너무 많다.

그래서 내 신념과 철학 따위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정립하기에는 내가 너무 바쁘다.


이게 일반적인 생각일 것이다.

그러니 여태 신념이 뭐예요 하고 살았더라도

부끄러워하거나 자책할 필요는 없긴 하다.


최근 들어 더욱 신념을 가지는 것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최근 베스트셀러였던 '혼모노'라는 책의 일부 내용도 그렇고,

어른들의 인생 스승이라 불리는 이어령 선생님의 '마지막 수업'에서의

신념을 가진 자를 경계하라는 점도 그런 고민을 짙게 한다.


아무래도 신념이 가지고 있는 막강한 힘 때문일 것이다.

지식적 기반이나 단단한 누적된 철학과 사고가 없이

그저 이런저런 짜깁기로 인해 자신의 신념을 쌓아 올린 사람들이

'이게 맞다'라고 주장하기 시작하면,

이는 말도 안 되는 추정자들을 이끌고

마치 본인이 잔다르크가 된 양 떠들어대며 사람들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매우 격공 한다.


환자들을 상담할 때도 본인이 가지고 있는 그릇된 '프레임'에 대해

자주 이야기 나누곤 한다.

물론 직접적으로 '너의 생각이 잘못되었어'라고 직면하는 경우는

극히 치료적 계획에 의한 사항 아니면 지적하지 않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혹은 그릇된 생각들이

나 스스로를 옭아매거나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에서

더 어려움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스스로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대부분 환자들 또한

내가 어떤 상황에서 주장한 것들이

왜 다른 사람들이 반대하는지 혹은 나 혼자 왜 상처받거나 흥분하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무의식적인 이유라고 한다면 그럴 수 있지만

사고의 과정이 이미 자동적으로 굳어져 버린 것이기도 하다.


생각의 고착화는 신념이라 할 수 없다.

서로가 서로의 신념과 생각의 고착이라는 혼돈 속에서 살아가므로,

이를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생각의 고착은 나의 누적된 경험에 의한 학습된 결과물이다.

그 결과가 나쁘지 않았거나 나를 방어하기 좋은 것이었다면

그 생각은 고착화되어 일상의 나를 지배하게 된다.

이는 안타깝게도 비합리적인 신념으로 자리 잡게 될 수 있다.

우리가 길러야 할 것은 합리적인 신념이다.

생산적이고 적응적인 것, 그리고 타인에 의한 것이 아닌

나 스스로를 지탱할 수 있는 긍정적인 생각들이어야 한다.

어떠한 아집이나 고집도 아닌

건강한 방식의 나의 기둥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때로 인생의 길을 잃었을 때,

누군가에게 조언을 해주는 어른 노릇을 할 때

나의 가치가 드러날 수 있는 생각들 말이다.


어른이라고 다 합리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니 경계할 신념들을 경계하되

나의 신념은 무엇인지, 혹은 내 신념이 합리적인 것인지

제3의 눈으로 한 번씩은 들여다보는 것이 좋겠다.

시간은 없지만,

한 번씩 돌아보는 내 생각들이

조금 더 나를 성숙한 어른으로 만들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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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Joan Negrescolor / https://digitalchosun.dizzo.com/site/data/html_dir/2019/02/11/20190211801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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